디쉬인사이드

장례식과 음식

디쉬인사이드 떠난 사람과 위로하는 사람의 음식 IN <축제 /><아수라>
디쉬인사이드 떠난 사람과 위로하는 사람의 음식 IN <축제 /><아수라>

어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자주 입에 담는 말 가운데
신뢰가 가지 않는 말 하나가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는 말이라고 한다.
‘밥 먹자’가 됐던 ‘언제 식사나 한번 하시죠’가 됐던
요새 말로 영혼이 실리지 않은
의례적인 표현이라는 뜻일게다.

함께 밥 먹는다는 것

이렇게 ‘언제 식사나 한번 하자’는 말이 크게 무게감이 실리지 않는 현실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식사를 함께 한다는게 그만큼 예우를 갖추거나 친근함을 나타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행에 옮기지 않을 약속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식사를 함께 한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로가 가까운 사이임을 확인하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말로는 가족의 구성원을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의미로 ‘식구’라고 하니 가족의 본질을 드러내는 단어라 하겠다.

지난 2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기간 중에 홍콩에서 함께 훠궈를 먹은 일가 9명이 집단으로 감염되어 충격을 주었다.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서 가운데 펄펄 끓는 국물에 고기다, 야채다, 각종 재료를 넣어 익혀 각자 취향껏 건져먹는 훠궈는 즐겁고 화목한 음식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훠궈의 특성이 집단 감염의 원인이 되었으니 중화권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한국인의 식습관을 생각해 낸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찌개를 식탁 가운데 놓고 여럿이 함께 먹는 식습관이 남아 있다. 공동으로 먹는 그릇에 개인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외국사람들 눈에 비위생적으로 비쳐서, 좀 그럴듯한 음식점에서는 개인의 앞접시나 그릇에 담아가는 용도로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구비한지도 꽤 되었지만 여전히 무시하고 개인의 수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행여 위생을 우선하는 것이 거리감을 두는 것처럼 오해를 사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이제 없어져 간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으니 위생을 우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류가 공동체로 살면서 다같이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는 경우는 대체로 각종 제례행사를 치를 때이다. 축제가 그렇고 하늘이나 모시는 신에게 비는 종교행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가장 보편적이고 자주 돌아오는 것이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음식이 따른다. 결혼은 상서롭고 축하할 일이니 먹고 즐기게 당연한 것이고, 장례식도 어둡고 경건하지만은 않다. 망자를 보낸 뒤 남겨진 유족들을 위안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음식을 나눠먹고 축제같이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건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고인을 위한 음식, 고인을 애도하는 사람을 위한 음식

한국의 고유 문화를 영화로 잘 다뤄낸 임권택 감독의 <축제>라는 영화가 있다. 소설가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데 이제는 이미 사라져버린 상갓집 풍경을 아주 잘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앞으로 영화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문화사적인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극영화라는 픽션이지만 90년대 시골 지방에 남은 전통 장례풍습을 아주 섬세히 그려냈기 때문이다. 원작자 이청준과 연출자 임권택의 기억과 체험, 그리고 고증을 위해 조사 연구한 내용이 영화 속에 잘 녹아 있는데, 이 영화가 나온 시점에 맞물려 한국의 장례문화는 급속히 변해 버렸기 때문에 이 영화의 문화사적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40대 작가로 문단에서 활약중인 이준섭(안성기)이 시골에 계신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그가 도착하고 장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영화는 집안의 구석구석을 비추며 얽힌 인간관계와 의식의 집행과정을 보여준다. 고향에 남은 형님과 시어머니를 평생 모시며 자신도 늙어버린 형수의 설움, 도시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내려와 반가운 인사만 받고 일도 별로 안하는 것으로 비치는 아내(형수의 시각에서 동서), 가출한지 십수년만에 갑자기 나타나 분위기를 위태위태하게 하는 이복 조카 용순(오정해)과 조카 형자 등이 벌이는 드라마는 요즘 관객에게 한국에서 대가족으로 얽혀 산다는 것이 참으로 신경 쓰이고 에너지를 소모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짧은 시간에 잘 묘사한다.

이 영화를 다루는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음식에 중점을 두고 싶어서이기에 드라마의 내용은 이 정도로 하고 음식에 관한 대목으로 넘어가 보자. 전통적으로 초상을 치르게 되면 음식은 두 종류를 준비해야 한다. 고인을 모시는 젯상에 올려야 하는 음식이 있고, 초상을 치르는 사람들과 문상객들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 그것인데, 후자가 실제로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단 고인이 돌아가신 시각부터 장례 준비에 들어가는데, 이내 마당에는 장막이 쳐지고 마을의 부녀자들이 모여 음식의 밑준비를 시작한다. 대개 두레라고 하여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풍습이 남아서 지방에는 면단위, 읍단위로 이런 장막과 멍석 그릇 등을 공동 소유 보관하고, 관혼상제에 돌려가며 사용하는 제도가 있었다. <축제>에서도 마당 수돗가에서 배추 등 야채를 씻고 준비하며 부녀자들이 둘러앉아 일하는 모습이 자세하게 나온다. 손은 음식장만으로 바쁘고 입은 이런저런 정보와 가십 교환에 바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우물가 빨래터는 뉴스와 풍문의 전달처였는데,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 공통이었다. 일본어에는 ‘우물가회의 (이도바타카이기)’라는 단어도 있다.

장례식과 음식

장례가 둘째날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상갓집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정신없이 상을 당한 유족들도 좀 침착해지고 문상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의식으로는 염습과 성복이 있다. 영화 제목이 <축제>라는 것에서도 금세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고인이 천수를 누리고 가신 경우에는 호상이라고 하여 지나치게 비통한 애도를 금하고, 문상객들은 오히려 떠들썩하게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옳은 거라고들 했다. 이게 술 있겠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안주도 있겠다, 이곳저곳 거나한 술판을 만드는 ‘정당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노름판이 벌어지는 것도 늘 따르는 습관이었다. 삼일장이면 셋째날 발인하여 상여가 나가고 장지에서 거기에 맞는 의식을 행한 뒤 매장을 한다. 영화에서는 그때그때 차린 젯상도 친절하게 자막을 달아 보여준다. 5일장이면 이틀째와 같은 셋째날 넷째날이 반복된다.

다양한 전 그리고 돼지고기

상갓집 음식은 주식으로는 밥과 탕이 우선이고 김치 장아찌 등 밑반찬이 기본으로 깔린다. 그리고 이런 날에 먹게 되는 음식 일순위로 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전이라는 말은 기름으로 지진(煎)다는 요리법에서 나온 말로, 평소에는 손이 많이 가서 잘 해먹게 안되는 음식이기도 해서 행사음식으로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게 요샌 명절음식의 대표격이 되어서 고향이나 큰 집에 가서 ‘전을 지지는’게 남녀불평등 사회에서 여성이 강요받는 불합리한 역할의 대명사처럼 되기도 했다. 하기야 남자들은 안방 거실에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거나 화투판에 몰입하면서 ‘전 더 가져와요’를 연발하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쉴 새 없이 전을 부쳐내기 바쁜 모습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연상하면 이는 타파해야 할 풍습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전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이라 일단 고소하고 맛이 좋다. 과식만 하지 않는다면 야채전, 고기전, 생선전 등 영양소도 고루 갖춘 훌륭한 음식이다. 상갓집에서는 생선전이나 고기전 등을 골고루 내다가 문상객이 너무 많다던가 하면 배추전, 파전, 두부전 등 쉽게 만들 수 있는 걸로 대치할 수도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전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만들수 있는 음식이다. 옛날 농번기 때면 늘 하루 종일 일손이 달렸고, 해지고 논밭일에서 돌아와서 저녁을 해 먹으면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기 바빴다. 그런데 어쩌다 비가 오는 날은 쉴 수 있는 날이다. 그러면 낮에 식구들이 마루에 모여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전을 부쳐먹을 수 있었다. 비가 내려 온도도 낮고 방도 눅눅하니 군불을 때니까 숯불도 넉넉히 생겼겠다, 녹두전이든 파전 배추전이든 있는 재료로 전을 부 쳐 먹는데, 남자들은 거기에 더하여 막걸리까지 한잔 걸치니 마음이 평안하고 풍요로워진다. 그래서 그 풍습이 사회적 DNA로 스며들었는지 요새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도 비가 오면 이유없이 파전에 막걸리를 찾는 경우가 많아 보기에 흐뭇하다

장례식과 음식

전 말고 상갓집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또 하나 유명한 것이 돼지고기 수육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손님들을 맞아야 하니 양념을 재우고 숙성하거나 조리과정이 복잡한 메뉴는 장만하기가 쉽지가 않다. 고기도 그래서 물에다 삶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 수육(水肉)이 안성맞춤이다. 고기를 많이 사다가 삶아서 필요한 만큼씩 썰어 내놓으면 새우젓에 찍어먹는다. 상가집에서 간편하지만 빠질 수 없는 메뉴이다. 물론 수육도 노하우가 있어서 삶는 물에 생강 마늘을 넣어 잡내를 뺀다던가, 된장이나 묵은 간장을 넣어 살짝 간이 배게 한다던가 하는 만드는 이의 레시피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문제는 어디나 위생시설이 잘 되어 있고 식재료의 유통과 보관이 발달된 요새와 달리, 가정에 냉장고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돼지고기 수육은 상가집 음식이나 혼사 음식에서 빠지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한국의 각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한건 70년대 초반이었다. 지금 LG전자의 전신인 금성 골드스타 브랜드가 60년대 말에 국산 냉장고 제조 판매를 시작한 뒤에 냉장고가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기에는 십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래서 70년대에도 간간이 보이기도 하지만 60년대까지는 신문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게 집단 식중독 사고였다. 특히 지방에서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집단으로 식중독에 걸렸다, 상갓집에 간 문상객들이 식중독으로 집단으로 입원을 했다 등의 뉴스가 자주 나왔고, 초상집에서 상한 돼지고기를 잘못 먹어 초상집에서 줄초상이 났다는 식의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뉴스들이 많았던 것이다. 오죽하면 여름 돼지고기는 아무리 잘 먹어도 본전이라는 말도 생겨났을까.

육개장 한 술 뜨자고 사는 세상

외국으로 출장을 자주 다니는 편이라 더욱 느끼게 되는데, 모든 면에서 한국만큼 빨리 변하는 나라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하긴 이렇게 짧은 세월 동안에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 정보화사회로 탈바꿈하고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으니 뭔들 변하지 않고 남아있을까 싶기도 한데, 장례문화라고 어찌 이 변화의 광풍을 피해갈 수 있었겠는가. 이제는 예기치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이 아니라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병원에 부속으로 달린 장례식장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장례는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행하여 진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거대 재벌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에서 이루어낸 공적 가운데 하나로 이 장례식장의 문화를 드는데 망설임이 없다. 국내외에서 우수한 의료진을 초빙해오고 비싼 고가장비 등을 들여와 의료수준을 높였다고 하는데 이건 막상 신세를 진 적이 없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례식은 옛날의 폐단을 많이 보아왔기에 그런 악습이 일소된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갈채를 보내고 싶다.

`옛날에는 상을 당하여 유족들이 황망한 틈을 이용해 상복이니 관이니 모든 장례용품에 바가지를 씌우는 악덕상혼이 횡행하였다.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같은 점잖은 레토릭에서부터 ‘죽은이한테 돈 몇푼 아껴서 부자될 것도 아니면서’ 같은 식의 상말까지 동원하며 돈을 울궈내며 유족을 괴롭히는 장사치들이 많았다. 이런 갈취에 가까운 행위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 장지에서도 상여꾼들이 몇발짝 떼고 금품을 요구하고 또 몇발짝 가서 멈추고 그랬다. 이런 악습이 한 번에 사라지고 수순에 따라 착착 진행되니 커다란 발전이며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긴다. 옛날에는 형제도 많고 친척도 많아서 각자 역할분담에 따라 복잡한 의례를 다 처리할 수가 있었지만, 요즘같이 식구가 적은 현실에서는 장례식장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일단 한국인의 대다수가 널찍한 마당이 있는 전통가옥이 아니라 아파트, 빌라등 집단 주거 형태에서 살고 있어 집에서 초상을 치르는게 불가능하니 임종을 자택에서 맞이하더라도 병원 장례식장으로 모신다. 연락하면 구급차가 오고 병원에서 사망확인 등 필요한 서류를 진행하고 고인은 영안실에 안치하고 식장측과 상의하여 빈소를 정하고 음식장만, 발인 장지 선정 등을 한군데에서 처리할 수 있으니 참으로 편리하게 되었다. 이 글의 주제와 다른 이야기는 이쯤에서 건너뛰고 음식이야기를 해보자.

장례식과 음식

언제부터인지 상갓집 음식이라 하면 누구나 쉽게 연상할 만큼 육개장은 가장 많이 나오는 음식이 되었다. 사실 육개장은 잘 물리지 않는 음식이라 여러 끼를 계속 먹어야 하는 유족들에게도 부담가지 않는 메뉴이기도 하다. 소고기무국처럼 계속 먹기에 너무 담백하지도 않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처럼 계속 먹기에 맛이 너무 강하지도 않아서 안성맞춤인 것 같다. 적당량의 소고기와 파, 토란대, 고사리, 숙주 등이 잘 어울려 영양으로나 맛으로나 상갓집의 접대 음식에서 절대 강자로 살아남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한국영화 가운데 장례식을 다룬 작품이 여럿 있지만, 나는 장례음식에 관한 한 가장 잘 다룬 영화로 <아수라>를 꼽고 싶다.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등 명배우들이 열연하는 이 영화는 삼겹살 이야기 때 잠깐 다루기도 했는데,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장례식장에서 벌어진다. 스포일러가 될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는데, 클라이막스의 도입부에서 상갓집 음식이 나온다. 거악의 상징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는 자신이 연루된 죽음인데도 태연하게 문상을 와서 슬픔을 연기한다. 여기에 찾아온 ‘또라이’ 형사 한도경(정우성)과 그 속내를 뻔히 아는, 왕년의 후배이자 지금은 박성배의 보디가드가 된 문선모(주지훈) 사이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이때 박성배의 대인배 같은 한마디. “뭘 그렇게 속삭여. 이왕에 왔으면 제삿밥이라도 먹고 가야지.” 옛날에는 지나가는 행인에서 걸인까지도 챙겨 먹이던 상갓집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한도경은 이렇게 해서 빈소의 식탁에 앉을 수가 있게 된다. 훌훌 거리며 육개장을 맛있게 한술 뜨던 박성배가 한마디 한다.

“이 육개장 말이야. 수원 광교쪽 한군데에서 경기도 전체에 납품을 하는데 맛이 아주 별미야.내가 이거 먹을라고 문상하러 다닌다면 믿겠니?”

그러면서, 이방원이 술자리에서 정몽주에게 ‘이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는 노래로 회유를 시도하듯 타협을 암시하는 명대사를 한다.

“다 이거 한술 뜨자고 사람이 사는 거야.”

상갓집의 맛있는 육개장 한그릇을 빌어 청렴이니 부패니 윤리니 나발이니 없으니, 내 말 듣고 편하게 살자는 이야기가 대단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장례식과 음식

<아수라>의 장례식 장면에는 빈소 음식도 잘 묘사되어 있다. 요즘은 어딜 가나 비슷한 것이 마치 전국의 업자들이 회의를 하여 통일이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데, 이 영화에서도 그게 잘 재현되어 있다. 육개장에 밥이 주식이고 반찬과 다른 음식들이 함께 식탁에 올라오는데 대개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배추김치, 오이, 도라지무침 아니면 홍어무침, 마늘쫑조림이나 멸치꽈리, 고추볶음, 코다리조림, 돼지고기 수육에 새우젓, 동그랑땡이 들어간 모듬전, 절편이나 바람떡 아니면 콩떡 또는 인절미, 땅콩오징어채 같은 마른 안주 정도면 다 망라한 것 같다. 술은 소주와 맥주가 대부분인데 재미있는 것은 청량음료로는 콜라보다는 사이다가 대세이고, 캔에 담긴 설탕물이기는 사이다나 마찬가지인데 식혜음료가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전통 장례에서 남은 이미지에 부합해서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영화에서 보는 한국의 상갓집 음식은 <축제>가 마지막으로 시골에서 마당에 장막을 치고 문상객을 받는 전통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아수라>가 메뉴마저 정형화된 오늘날 상갓집 음식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떠나는 사람을 위한 마음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장례식과 음식 장례식과 음식

일본에서 장례식과 관련하여 몇 년 전에 제작되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이 있으니 한국 개봉시 제목은 <굿바이>였다. 원제는 보내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례식에서 전문적으로 시신을 염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 음식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장례식과 관련하여 가장 뛰어난 작품은 귀재 이타미 주조 감독의 <장례식(お葬式)>을 꼽고 싶다. 시종일관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장례식을 다룬 이 영화에서는 지나치게 이것저것 간섭을 하는 친척 노인네, 장례식을 자칫 아수라장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 무심한 사람, 경건한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갖가지 풍경을 그려낸다. 도시락 문화가 발달하여 찬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식문화를 가진 일본에서는 장례음식도 배달 음식이 많다. 특히 여럿이 간편히 먹을 수도 있고 예의에 어긋나지도 않아서 스시 즉 생선초밥이 인기가 있다. 영화 <장례식>에서도 초밥을 시켜다 여럿이 나누어 먹는 장면이 자세하게 나온다.

미국의 경우에는 워낙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나라라서 에스닉그룹에 따라 장례문화도 다양한데, 대개 공통적인 것은 장례식이 끝나고 참석한 조문객들을 대접하는 음식을 친척이나 이웃이 마련하여 가져오는 풍습이다. 각자 요리 하나씩 만들어 지참하는 팟럭(pot luck) 파티 같은 개념으로 보면 맞을 것 같다. 비슷한 장면은 헐리우드의 이런저런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데 딱 하니 떠오르는 영화가 없어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물론 공동체가 깨어진 요즈음에는 케이터링을 많이 사용한다고도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하고 병들어 이세상에 작별을 고할 때까지 누구나 많은 이의 신세를 지고 또 축하받고 위안받는다. 생일을 축하하고, 결혼을 축하하고, 부모의 상을 당하면 위안받고, 마지막에 본인도 이승을 하직하며 사람들의 애도를 받는다. 그리고 경사가 되었든 조사가 되었든 여기에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친지, 이웃과 나누어 먹는 음식과 술이 따른다.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기 시작한 이래 계승되어온 전통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서는 오늘날 일회용 용기에 담긴 육개장 한 그릇으로 남아있다.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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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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