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생생하게 말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더 완벽하게 증언해낼 자신이 있었다. 개똥의 어머니는 기침으로 달포 넘게 쿨룩거렸고, 약도 못썼고, 밥도 잘 먹지 못했다. 개똥의 아버지는 인력거꾼으로 일했으나 열흘 동안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즈음에도 그랬다.
개똥의 아버지, 김첨지는 어쩌다가 약간의 돈이 생기자 그것으로 좁쌀 한 되와 나무 한 단을 겨우 샀고 덕분에 어머니는 조밥을 지어먹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고 개똥은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 집안 이야기의 시작 말이다.
개똥이 자라면서 들은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그 좁쌀을 너무 급하게 끓여 먹었고 그래서 탈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 음식이란 것이 아무리 급하게 먹는다 해도 단지 속도 때문에 탈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는 것, 탈이 날 음식이라면 애초에 그 음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 개똥의 의견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개똥이가 믿는 보험 자문의 의견이기도 했다.
“아버지 말씀이 그 조를 끓여 먹은 날부터 어머니가 가슴이 땅기고 배가 켕기고 눈을 홉뜨고 지랄을 하셨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못 먹어서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냐, 하고 화를 내셨다는데 그걸 두고두고 후회하셨다는 거지요.”
개똥은 아버지가 그 말끝에 어머니의 뺨을 때린 건 쏙 빼놓았다. 아버지가 결과적으로 어머니가 죽은 건 바로 자신 때문이라고, 입방정을 떨었기 때문이라고, 술만 마시면 자책했던 것도 지금은 불필요했다. 그런 걸 말하는 건 이 일에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외려 본질만 흐릴 거라고 그의 보험 자문이 말했기 때문에. 대신 어머니가 그 조밥을 먹은 뒤에 얼마나 아프셨는지, 배를 움켜잡고 얼마나 뒹굴뒹굴했는지를 전달하는 데 공을 들였다. 개똥은 어머니와 한 방에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개똥을 보며 눈을 맞춰주려고 했으니까. 그리고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개똥의 입에 젖꼭지를 물려주었던 사실을 개똥은 여전히 기억하니까. 익숙하고도 안온하던 어머니의 품을 개똥은 잊을 수 없었으니까.
거의 95년 전, 그러니까 1924년 어느 오후의 일이었다. 지금 그의 이름은 개똥이가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날을 떠올리면 세 살배기 개똥이가 되곤 했다. 지금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그를 바라보는, 네 명의 손주들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였다. 손주 중에 가장 어린 아이가 아홉 살이었는데, 그 아이는 세 살짜리의 기억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말했다가 주변 식구들의 눈총을 받았다. 휴대폰 계산기까지 두드려가면서 95년 전이라니, 1924년이라니, 세 살이라니, 요란을 떨던 모양새가 아까부터 개똥의 눈에도 꽤 거슬리고 있었다. 개똥은 요란한 손주에게 “나는 아흔여덟 살이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알던 사실이었는데(분명 그 손주도) 손주는 입을 굳이 동그랗게 벌려가면서까지 놀랐다.
“아흔여덟이면 누가 봐도 노인인 나이지, 아흔여덟 살이 되면 말이다, 내가 진짜 그 일을 겪었는지 아니면 자꾸 생각해서 겪은 것으로 착각하는 건지 그런 건 중요하지가 않아. 그냥 그 기억이 얼마나 선명한가, 그것만이 중요하지.”
말하다 보니 진짜 그랬다. 더욱이 개똥처럼 어떤 일의 유일한 생존 증인이 되어 있는 경우에는 더 그랬다. 개똥은 어머니가 사망한 그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고,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까지 모든 것을 독점한 사람이었다. 그때 개똥이 너무 어렸다는 것, 너무 어려서 뭔가를 증언하기엔 부족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일 자체가 이미 한 세기 전의 이야기라는 것, 그런 말이 따라붙을수록 개똥은 더 또렷하게 말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와 그 말을 누가 하는가, 였다. 개똥은 아직 살아있었다. 그게 중요했다.
당시에 개똥은 세 살이었지만 지금은 아흔여덟 살이었다. 비교적 장수하는 편이었지만 평생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개똥의 아버지, 김첨지도 아흔 살에 죽었다. 개똥이 어릴 때 잔병치레를 하긴 했어도 아직까지 또렷하게 말하고 듣고 조금 속도가 느리긴 해도 걸을 수 있는 건 아버지 쪽 유전일 것 같았다. 아버지는 술과 담배, 스트레스와 밤샘을 달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들보다 오래 살았다.
아버지 친구 중에 치삼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너무 일찍 죽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까, 하고 개똥은 생각했다. 개똥이 그를 기억할 만한 시간도 주지 않고 치삼은 연락이 끊겼다. 치삼은 아버지와 개똥이 식구의 죽음을 겪었을 때 물심양면으로 도운 사람이었지만, 치삼이 죽었을 때 개똥의 아버지는 그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치삼은 억울한 일에 휘말려 죽었는데 그때는 그런 일이 너무 많은 시절이었다. 개똥의 아버지인 김첨지는 치삼이 죽은 것을 한참 후에야, 그것이 이미 많은 이들에게서 잊히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듣게 됐다. 치삼의 자식들을 통해서였는데, 그들 중 하나는 개똥과 적당히 알고 지낸 사이이기도 했다. 개똥의 친구이자 치삼의 막내였던 그는 여든 살이 되기 전에 죽었고, 그들은 사실 아버지 세대만큼 막역한 사이가 되진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개똥은 그 친구를, 아버지 친구의 자식인 그 친구를 평생의 절친으로 기억하게 됐다. 기억이란 그런 거였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 친구의 딸, 번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보험 전문가의 역할이 컸다. 번영은 치삼의 막내아들이 낳은 첫째 딸이었다. 나이는 쉰둘인가 그랬고, 일본에서 보험사의 언더라이터로 일한 경력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살고 있었는데 특정 보험사에 소속된 건 아니고, 보험 관련 개인 콘텐츠를 꾸리고 있었다. 유튜브 같은 것, 그런 쪽에서는 꽤 유명하다고 개똥의 자식들이 말했다. 번영은 개똥이네 사연을 오래전부터 들어 알았다면서 돕고 싶다고 했다. 뭘 어떻게 돕고 싶다는 것인지 개똥은 얼른 파악하지 못했지만 번영의 입에서 “아버지가 그 아버지로부터 들었다던, 세상에서 가장 기가 막힌 얘기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오자 정말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개똥은 너무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니까. 그걸 어디에도 털어놓고 살지 못했으니까.
개똥으로서는 왜 그 친구가 친구 부모의 이야기를 자기 자식에게 들려준 것인지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게 연결고리가 된 셈이었다. 번영은 재산이나 마음이나 어떤 식으로든 형편이 어렵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보험금을 받아주는 일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개똥이가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었던, 그 사건을 풀어보겠다고 했다.
개똥이네 자식들은 번영을 믿지 못했다기보다는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어 했다. 아버지가 원해서 협조하고는 있지만, 상식적으로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그러니까 95년 전의 음식 불량에 대해 누가 보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지금 개똥이네 가족들 앞에 보험 자문으로 서 있는 그 여자, 번영은 이렇게 말했다.
“그 좁쌀을 팔았던 주수상회, 물론 당시엔 주수상회가 아니었지만요, 지금 주수상회의 뿌리가 바로 그 가게였다는 거 아닙니까. 당시에도 그 가게는 꽤 컸어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이지만 그 가게에서 파는 식재료의 품질이 당시에도 월등히 좋았고요. 신선도를 위해 날짜가 약간 지난 것은 지체 없이 싸게 팔곤 했지요. 이건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에요. 중요한 건 설령 그 가게에서 팔던 제일 저렴한 좁쌀이었다해도! 그렇게 큰 가제의 식재료를 먹고 탈이 났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지요.”
번영의 말에 개똥의 자식 중 하나가 조금 자신이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구십오 년 전에 말입니다.”
“구십오 년 아니라 구백오 년도 가능한 얘기예요. 왜냐, 당시 사건의 당사자가, 현장에 있었던 이가 살아있지 않습니까? 이건 할아버님 부부 얘기가 아닙니다. 아버님 이름으로 접수할 사건이지요.”
좁쌀 아니면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이 문제일 텐데, 나무를 산 곳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남은 곳은 좁쌀뿐이라고 번영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개똥이네 자식들은 조금 덜 찜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번영은 좁쌀집이 이렇게 번성해서 다행이라는 투로 상황을 설명했고, 그 가게가 당시에 이미 어떤 보험에 가입된 상태였다는 점을 알아낸 후에는 그 집 좁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주수상회의 전신이었던 그 가게는 당시에 이미 ‘식품 안전 보상’을 내걸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보험회사에서 팔던 초창기 상품이었는데, 지금 그 보장내역을 보면 허울 좋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단지 일본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효력을 다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 시절에 보험사에 뭔가를 청구한 이도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번영은 개똥에게 다행스럽게도 그 보험사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전달하며, 이게 운명 같은 것 아니겠냐고 했다. 번영은 그 가게가 60년대에 이르러 주수상회로 변신하며 식품 관리 문제로 몇 차례 피해 보상을 해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모든 자료를 모았다. 대부분은 그 주수상회가 직접 펴낸 사사에 실린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어떤 극복기처럼 말이다.
번영이 이 건에 대해 맨 처음 얘기했던 것은 1년 전이었는데 그때는 개똥도 번영의 제안을 거절했다. 개똥의 자식들처럼 괜한 일에 휘말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번영이 개똥을 찾아왔을 때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번영은 개똥을 설득해냈다. 개똥은 무슨 사기를 당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치삼이 아저씨네 집과 우리 집은 보증은 못 서줘도 보험은 해줄 수 있는 사이”라고 말했다. 물론 개똥이 번영을 통해 어떤 보험에 가입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보험 관련 유튜버로 도전을 시작한 친구 딸을 돕는 일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기업체를 상대로 어떤 보험금을 타내는 일은, 95년 전의 일로 보험금을 타내는 일은, 개똥 입장에서는 보험보다도 모험 같은 일이었다. 개똥의 과거를 까발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번영이 좁쌀집의 보험을 가리키며 그것이 아직 살아있다고 말했고, 개똥은 다른 것보다도 ‘그것이 아직 살아있다’는 말이 좋아서 번영을 한 번 더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지금에 이른 거였다. ‘아직 살아있는’ 것은 보험뿐만이 아니었다. 개똥 역시 아직 살아있었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에 필요로 하는 기본 조건 두 가지, 직계가족이라는 것과 또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 충족시켰다. 번영은 동영상 증언 자료와 약간의 서류들을 모아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개똥은 이 과정이 좋았다. 식구들 모두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얘기하고,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고, 당시의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 모르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온전히 개똥에게 의지하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자신이 오래 살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번영이 고마웠다.
오래전 그 좁쌀에 문제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 사실은 이미 번영의 유튜브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주수상회는 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한 건지 친절하기까지 했고, 개똥은 번잡한 자료의 준비 과정에 비하면 너무나 쉽게 보상을 받게 됐다. 다만 금액이 너무 적었다. 물가 상승분 같은 건 고려되지 않았다. 그 허울 좋은 보험은 당시의 기준대로, 개똥에게 고작 십삼만 원을 지급했다. 자료 준비 과정에서 들어간 금액을 헤아리면 삼만 원 정도를 더 덜어내야 했고, 일이 이리 될 줄 모르고 번영을 만날 때마다 밥을 사준 금액을 헤아리면, 그런 산술 계산을 다 마치면 이건 분명 마이너스에 가까운 일이었다. 보험금을 받아 이리저리 쓰려던 개똥의 계획은 모두 엎질러졌다. 식구들은 개똥에게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했지만 번영을 욕했다. 설마 그녀가 이런 계산을 못했을까, 하는 말이었다. 어찌 되었건 번영의 유튜브는 더 유명해졌으니까.
개똥이 생각하지 못한 일들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모든 것이 개똥의 손을 떠난 이후에 말이다. 번영의 유튜브에 올라온 개똥의 동영상은 이 보험 청구 건이 모두 마무리된 후에도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곳까지 흘러갔고, ‘가정에서 데워먹을 수 있는, 따뜻하고 저렴한’ 설렁탕 업체 하나가 개똥네 식구들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들은 생활 곳곳에서 광고모델을 찾고 있었다. ‘어머님이 원하신 설렁탕’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에 개똥만 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개똥만 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 작가소개 〃
윤고은 소설가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