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를 향한 시부모님의 기대치와 대한민국의 며느리라면 해내야 한다는 각종의 책무들. 자신의 내면은 돌보지 않은 채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은 결코 행복과 자존에 닿을 수 없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시부모님을 업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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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혼집 구하는 데 경제적인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신혼 초부터 시부모님과 집 현관 번호를 공유해야만 했다. 며느리로서 거절할 수가 없었고, 이후 점점 시부모님의 노골적인 요구가 이어진다. 남편이 장남이니 주기적으로 용돈을 보내 달라, 시동생이 결혼하는데 돈 좀 보태 달라, 남편이 장남이니 제사와 명절은 전적으로 맡아 달라는 등 끝없는 요구가 많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모든 연락을 남편이 아닌 며느리에게만 한다는 점이다. 남편의 경우는 단칼에 거절해 버리기 때문이다. 답답한 며느리 입장에서 남편과 상의하자니 자칫 남편과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시월드’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상당히 어렵다. 사랑하는 남편은 자신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이지만, 남편의 부모님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100% 만족하기 힘든 관계이다. 남편은 사랑하나 그의 부모님은 아직 사랑하지 않은 이중적인 감정에서 며느리의 인생은 시작된다. 여기에 며느리를 향한 시부모님의 기대치와 대한민국의 며느리라면 응당 해내야 할 각종 책무가 더해지면서 며느리는 갖가지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정작 며느리로서 고통 받는 자신의 내면은 돌보지 않은 채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은 결코 행복과 자존에 닿을 수 없을뿐더러 스스로가 괴로워지는 길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건 착한 며느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왜 시부모님은 요구하는 쪽이고 며느리는 들어 줘야 하는 쪽인가?', '왜 부모를 봉양하는 의무는 아들보다 며느리가 더 무겁게 짊어져야 하는가?'. 만약 세상이 정해진 정답을 강요한다면 자신은 그 이유를 당당히 물어야 한다. 합당하지 않은 정답에 굴복하지 말아야 하며 그 정답에 주눅 들어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 좋은 며느리에 여러 정의가 있고, 좋은 아내로 사는 것에도 여러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각자의 답을 가질 권리가 있다. 시댁의 부당한 요구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면 아들의 거절이 두려워 며느리를 방패 삼는 시부모님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든 튕겨나오든 상관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온전한 일 인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장담소의 카운슬링 쪽지
“미워하는 것이 답이었다면
세상이 이처럼 고요할 수 있을까?”
- 시인 장담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