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그날의 심증 - 최진영

기획특집 운수 좋은 날 그 후 이야기 02 운수 좋은 날, 이어쓰기 기획특집 운수 좋은 날 그 후 이야기 02 운수 좋은 날, 이어쓰기
1924년 『개벽』 48호에 발표된 그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은 인력거꾼의 비애를 그린 작품으로 도시 하층민의 운명을 추적하며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95년이 지난 오늘 김종광, 최진영, 정찬, 윤고은,강석경, 조경란 등 여섯 작가가 다양한 상상력으로 운수 좋은 날을 새롭게 그려냅니다. 현진건 소설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시점과 가까운 순서대로 작품을 배치하였습니다. 현진건 소설의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 하니. 왜 먹지를 못 하니…….”

죽은 아내 얼굴에 제 얼굴을 비비며 김첨지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마당에서 집주인이 개똥이를 여러 번 불러댔다. 김첨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을 구기며 울기만 했다. 행랑방까지 오는 동안 집주인은 단단히 다짐했다. 오늘은 못된 소리를 해서라도 밀린 집세를 꼭 받아 내리라. 이번에도 돈이 없다면서 우는소리를 한다면 인력거를 팔아서 충당해내라고 쏘아붙이고 말리라. 한 달에 일 원이라는 싼 가격에도 방을 내준 이유는 김첨지가 물을 길어준다는 조건을 붙여서인데, 김첨지는 집세도 제때 내지 않으면서 물을 재깍재깍 길어주지도 않았다. 집세를 내라 물을 길어놓아라 청하려고 들러보면 김첨지가 아내를 때리고 있거나 김첨지가 큰 소리로 아내에게 욕을 하고 있거나 김첨지가 술주정을 하고 있거나 김첨지가 없거나 해서 집주인도 잔뜩 약이 올라 있던 참이었다. 며칠 전 아쉬운 소리를 하러 행랑방에 들렀을 때도 역시 김첨지는 없었고, 김첨지의 아내만 등을 구부리고 누워 끙끙 앓던 중이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거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먹으면 낫는 병이요, 먹어야 낫는 병이오” 하고 중얼거렸다. 의원에는 가보았느냐 약은 먹은 것이냐 물었더니 아내는 서럽게 울며 개똥 아범이 약을 못 먹게 한다고 원통해 했다.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나 해댄다고, 자기 배 속에 들어갈 술값은 아깝지 않아도 나 살릴 약 한 첩에 들어갈 돈은 아까워서 그러는 거 아니겠느냐고, 아파서 끙끙대는 사람에게 위로는 못 줄망정 눈을 바로 뜨지 못한다고 따귀를 때리지 않나, 이러다 내가 죽어 귀신이 되면 그 인간에게 어떤 복수를 하는지 당신이 똑똑히 봐두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눈빛과 말투가 워낙 섬뜩하고 서늘해서 집세 내놓으라는 소리는 꺼내지도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날의 심증 � 최진영-1

어둡고 냄새나는 방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김첨지의 뒷모습을 본 집주인은 오늘은 반드시 집세를 받아내겠다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낮에 보니 인력거가 없던데 오늘은 돈을 좀 벌었소?”

물으며 방을 살피던 집주인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김첨지 지금 우는 거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요?”

집주인은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서며 김첨지를 살폈다. 눈물 콧물을 빼며 우는 김첨지에게서는 역한 술 냄새가 났고, 김첨지가 안고 있는 김첨지의 아내는 죽은 사람처럼 뻣뻣하게 굳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개똥이도 곧 죽을 것처럼 쌕쌕 소리를 내며 더러운 방구석에 너부러져 있었다. 집주인은 김첨지의 아내 얼굴에 손을 대보았다.

“아이고, 이를 어째.”

집주인이 철퍼덕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사람이 이렇게 어이없이…….”

집주인은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개똥이를 들어 안았다. 개똥이도 죽을 모양인가 싶어 겁이 났다. 체온을 느낀 개똥이가 집주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모양을 보고 김첨지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 됐네, 차라리 잘 됐어. 못 먹어도 병이고 먹어도 병인 자네 팔자에 설렁탕을 먹는다고 병이 나았겠는가. 오래 앓다 죽느니 이렇게라도 가는 게 차라리 복이지. 암, 이게 바로 자네 복인 게야.” 중얼거리던 김첨지가 점점 크게 웃었다. 김첨지의 괴이한 말과 행동에 집주인은 무서움을 느꼈다. ‘죽은 아내를 두고 저따위 말을 하면서 웃어대는 걸 보니 이놈이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 미친 이놈이 내게 해코지를 하면 어쩐담? 돈에 원한이 들어 나를 죽이고 내 재산을 몽땅 훔쳐 가면 어쩌지? 집세고 뭐고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 사람들에게 알리자.’ 집주인은 개똥이를 안고 게걸음으로 문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김첨지를 불렀다.

“김첨지, 안에 있는가?”
“여기 사람이 죽었소!”

집주인은 누구라도 나타나길 기다렸다는 듯 소리 질렀다.

“사람이 죽어? 아니, 정말 죽었다고?”

치삼이 성급히 방으로 들어서며 놀란 듯 물었다.

“아이고, 세상에. 농이라고 넘어가려 해도 마음이 꺼림칙해 와보았더니…….”

치삼은 넋 나간 사람처럼 방바닥에 털썩 앉아 무릎을 쳤다.

“당신은 개똥 어멈이 죽은 걸 알고 있었소?”

집주인이 치삼에게 물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김첨지 저 자가 아까 선술집에서, 정류장에서 만난 여자 얘기를 하면서 낄낄 웃더니 갑자기 울면서 자기 마누라가 죽었다고……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는 자기가 죽일 놈이라며 엉엉 울더란 말이오. 그렇다면 어서 집으로 가자고 내가 손을 잡아끌었더니 도로 실실 웃으면서 죽기는 왜 죽느냐, 생떼같이 살아있다면서 웃더라 이거요. 손뼉까지 쳐대면서.”

치삼의 말을 듣고 집주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럼 당신은 개똥 어멈이 죽은 걸 알고서도 인력거를 끌고 나갔다, 이 말이야?”

집주인이 김첨지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김첨지는 죽은 아내의 얼굴에 대고 “오라질 년, 눈을 바로 떠라 오라질 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욕을 해댔다. 순간 집주인의 뇌리에 어떤 직감이 벼락처럼 내리 꽂혔다.

“진즉부터 아주머니가 앓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여서, 이 자가 낄낄 웃으며 안 죽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도 이놈 얼이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고 생각했단 말이오.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 마누라가 앓는 중인데 그런 농을 어찌할 수 있는가…….”

중얼중얼 말을 늘어놓던 치삼과 집주인의 눈이 마주쳤다. 병균이 옮듯 집주인의 생각이 치삼에게 옮겨졌다. 치삼은 벌떡 일어나 김첨지 앞으로 가더니 김첨지의 어깨를 잡고서 고함쳤다.

“자네가 그랬나? 진정 자네가 그런 게야?”

김첨지는 갑자기 따귀를 맞은 사람처럼 넋이 나간 표정으로 치삼을 바라봤다.

“자네가 아주머니를 죽이고 집을 나간 게야? 그러고도 돈을 많이 벌었다고 술집에서 그 지랄을 떤 게야? 돈을 막 벌어 운수가 좋다고 떠들어댄 게야?”

치삼은 김첨지를 잡아 흔들며 추궁했다.

“내가 며칠 전에도 들렀었는데 그때 개똥 어멈 하는 말이, 자기가 아파 앓는 걸 보면서도 개똥 아범이 약을 못 먹게 했다지 않소. 앓는 소리를 낸다고 따귀를 때렸다고도 했소. 그뿐이라면 이런 말을 꺼낼 일도 없지. 내가 오며 가며 개똥 어멈 맞는 소리를 한두 번만 들었을까? 아프면 아프다고 때리고, 먹으면 먹는다고 때리고, 못 먹으면 못 먹는다고 때리고, 멀쩡하면 멀쩡하다고 때리고!”

집주인이 흥분하여 말을 쏟아냈다.

“이 자가 그렇게 패는데 개똥 어멈이 아프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오? 안 그래도 몸이 약한 사람을 날마다 그렇게 때리는데!”

개똥이가 끙끙 소리를 냈다. 집주인은 개똥의 등을 두드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내가 죄스러워서 어쩐담. 맞아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나는 집세 내놓으라는 소리를 못 한다고 전전긍긍했단 말인가. 개똥 어멈 처지를 내가 진즉 알아봤어야 했는데. 일찌감치 순사에게 사정이라도 했어야…….”

중얼거리던 집주인에게 다시 벼락같은 생각이 스쳐갔다.

“순사! 순사를 불러야 해!”

집주인이 소리쳤다.

“말해 보게. 말을 해 봐! 정말 자네가 그런 게야?”

치삼이 김첨지를 흔들며 윽박질렀다.

“아니, 아니야. 내가 어찌 무얼 해. 설렁탕을 먹고 싶다고 했어.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오늘 비를 맞으면서도 인력거를 끌어 삼십 원을 벌었어!”
“지금 삼십 원이 중한가, 이 사람아!”
“삼십 원을 벌어서 내가 설렁탕을 사왔네만 이 사람이 먹지를 못하고, 눈을 바로 뜨지 못하고…….”
“그럼 자네 선술집에서 그런 소리는 왜 했단 말인가. 어째서 아주머니가 죽었다는 소리를 하고 울었어!”
“무서워 그랬어. 무서워서.”
“뭣이 무서웠단 말인가. 돈을 막 벌었다고 좋아하다가 갑자기 뭣이 무서워서!”
“오늘 운수가 너무 좋으니 버럭 무섬증이……. 자네도 생각해보게. 나처럼 오라질 작자가 운수가 좋아서 대체 어쩌잔 말인가. 틀림없이 대가를 치를 것 같아서 무서웠단 말이야.”
“그렇다고 아주머니가 죽었다는 소리를 그리 쉽게 한단 말인가!”
“당신이 죽인 거지? 앓는 사람을 앓는다고 발로 차고 뺨을 때리다가 죽인 거지? 덜컥 죽어버리니 무서워서 인력거를 끌고 나갔던 거지? 사람 죽인 집에 들어오기 무서우니 술을 처마시고 돌아다닌 거지?”

큰소리로 주장하던 집주인이 어서 순사를 불러야 한다고 치삼을 부추겼다. 치삼은 김첨지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김첨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는 아니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중얼거리더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이 사람을 때리긴 했네만, 오늘 일을 나가기 전에도 뺨을 후려치긴 했네만, 내가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 죽을 사람이면 벌써 죽었을 게야. 나는 병이 나으라고 그런 게야. 병을 쫓아내려고 그런 게야. 병이란 놈은 약이 아니라 겁을 줘야 다시 오지 않으니까. 자네, 들어보게. 내가 이 사람을 왜 죽이나. 이 사람 없으면 개똥이는 어쩌고 나는 또 어쩐단 말인가. 안 그래도 이 사람이 열흘 전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 하면서 지랄병을 하기에…….”

개똥이를 안고서 안절부절못하던 집주인이 갑자기 개똥이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앉더니 시체의 배에 손을 댔다.

“가슴이 땅기고 배가 켕긴다고 했다고? 분명?”

집주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김첨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애가 들어섰던 거 아니오?”

집주인의 말을 듣고 김첨지는 와락 시체를 끌어안았다.

“아니오. 아니오. 그럴 리가 없소. 벌써 달포 전부터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을 해대고 열이 끓고 그랬을 뿐인데……. 배가 고프다고 좁쌀 끓인 걸 잘못 먹더니 기어이…….”
“애가 들어서면 감기처럼 열이 오른다는 걸 모른단 말이오?”

김첨지는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치삼은 “이 썩을 놈아, 이 멍청한 놈아, 애를 배서 앓는 여자를 앓는다고 팼단 말이냐, 이 죽일 놈아!” 소리 지르며 김첨지의 등을 후려쳤다.

“순사! 순사! 동네 사람들! 내 집에서 살인이 났소! 남자가 여자를 죽였소! 김첨지가 애 밴 아내를 때려죽였소!”

집주인이 방을 뛰쳐나가며 소리 질렀다.

“자네는 날 믿지 않는가. 나는 죽이지 않았어. 자네가 오늘 나와 있지 않았는가.”

김첨지가 치삼의 손을 붙들고 사정했다.

“이 육시랄 놈. 자네가 죽였어. 자네가 죽인 게야. 아내를 죽여 놓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술을 처먹은 게야.”

치삼은 김첨지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며 부들부들 떨었다. 김첨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질렀다.

“아니야! 나는 설렁탕을 사 왔어! 내가 비를 맞으며 인력거를 끌어다가 돈을 막 벌어서 설렁탕을 사 왔는데도 먹지를 못하고!”

방바닥에 너부러진 채 우는지 앓는지 모를 소리를 내던 개똥이가 갑자기 몸을 뒤집어 두 손과 두 발로 기기 시작했다. 개똥이 열심히 기어 닿은 곳에는 엎어진 설렁탕 그릇이 있었다. 개똥은 방바닥에 흥건한 설렁탕 국물에 입을 대고 빨아먹었다. 그런 개똥이를 김첨지가 발로 찼다. 치삼이 놀라 개똥이를 끌어안고 김첨지의 머리를 후려쳤다. 김첨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설렁탕 찌꺼기를 집어 시체의 입에 억지로 넣었다. 치삼의 품에 안긴 개똥이는 비명을 지르듯 울며 바닥으로 내려가고자 버둥거렸다. 개똥이를 어르며 치삼이 방을 나가려는 순간, 김첨지가 으악 소리를 내며 시체를 내팽개쳤다.

“자네도 봤는가?”

얼빠진 표정으로 김첨지가 중얼거렸다.

“개똥 어멈이 웃었어. 방금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단 말이야!”

허튼소리인 줄 알면서도 치삼이 시체의 얼굴을 보려고 잠깐 주춤거리는데,

“천벌을 받을 놈!”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행랑방이 흔들렸다. 겁먹은 김첨지가 뒤집어진 벌레처럼 버둥거렸다. 치삼은 괴성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다. 질퍽이는 흙바닥을 달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집주인의 외침이 점점 가까워졌다.

최진영

〃 작가소개 〃

최진영 소설가

소설집 『팽이』,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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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7-15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