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죽은 아내와 하룻밤 -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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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개벽』 48호에 발표된 그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은 인력거꾼의 비애를 그린 작품으로 도시하층민의 운명을 추적하며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95년이 지난 오늘 김종광 최진영 정찬 윤고은 강석경 조경란 등 여섯 작가가 다양한 상상력으로 운수 좋은 날을 새롭게 그려냅니다. 현진건 소설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시점과 가까운 순서대로 작품을 배치하였습니다. 현진건 소설의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김첨지는 대성통곡이라도 하여야 할 것 같은데, 큰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목이 메어서만은 아니었다.

다섯 해 전, 딸 많은 장인은 아무나 하나 고르라고 했다. 고심 끝에 택한 넷째 딸인지 다섯째 딸인지는 나이 스물하나에 그만하면 반반하였고 무엇보다 심성이 고와 보였다. 다만 병약해 뵈는 게 흠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나 시난고난 앓더니만 기어이 이 꼴을 보게 했다. 애교는 고사하고 미소 한 번 봬주지 않는 심약한 아내에게 성질날 때가 흔해서 구박을 일삼고 때로는 발길질도 했지만, 거짓말 조금 보태서 깊이 사랑하였다. 사고무친으로 온갖 고생과 노동 끝에 자가인력거꾼까지 된 김첨지에게 열두어 살 어린 아내는 자수성가의 상징이었다. 인생의 자부심이었다.

김첨지는 아내가 아직 살아있기라도 하다는 듯 두서없이 나불댔다.

죽은 아내와 하룻밤-1

“이년아, 너는 공주님으로 태어나야 했어. 왜 딸 팔아먹을 정도로 가난한 집에 태어난 거야? 자네랑 혼례를 치를 때만 해도 거칠 게 없었지. 그 거지 같은 동네에서 혼인잔치를 치른 게 자네가 처음이었다지. 내가 엄청 잘나갈 때였지. 평생 월급 받으면서 남의 인력거만 끌다 종치는 놈들 정말 많거든. 나는 인력거꾼 10년 만에 자가인력거꾼이 되었지. 최신식 인력거에 달리기 선수 못지않은 체력, 하루에 3원씩 버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 계속 그렇게 잘 나갈 줄 알았어. 돈을 많이많이 벌줄 알았어. 자네를 호강시켜 줄 거라고 믿었지. 몸종에 하인에 막 두고 손끝에 물한 방울 안 묻히게 할 작정이었다고. 그런데 인력거꾼은 점점 많아지고, 내 인력거는 금방 구닥다리가 되더군. 서른다섯 넘으니까 너무 느려지고, 자네는 툭하면 앓고, 와중에 개똥이까지 태어나니 더 정신이 없더군. 나라고 왜 좋지 않았겠어.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태어난 건데. 하지만 저 자식만 보면 더 화가 나. 저 자식만 안 생겼어도 자네는 덜 아팠을걸. 다 무슨 소용이람. 자네는 죽어 버렸는걸. 사랑했냐고? 사랑했다니까. 그래, 사랑하는 아내가 죽으면 대성통곡이라도 해줘야겠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 내가 울면 주인 여편네가 쫓아올 거야. 당장 나가라고 난리 치겠지. 서울 인심 더러운 거 자네도 잘 알지? 이 밤에 뭘 어쩌란 거야. 걱정하지 마. 장례는 잘 치러줄게. 어젯밤 돈 많이 벌었거든. 손님을 넷이나 태웠어. 처음엔 30전, 두 번째에 50전, 세 번째엔 무려 1원 50전이었다니까. 네 번째에 60전. 다 얼마인 줄 알어? 무려 2원 90전이라고. 내가 3원 가까이 번 게 몇 년 만인 줄 알어? 그래, 치삼이랑 술 한잔했어. 자네가 이렇게 죽어 있을까 봐 무섭고 미안해서 술 힘을 빌렸어. 술값 1원을 제하고 설렁탕값을 제하고도 아직 1원 85전이 남았다고! 자네를 아무 데나 생 몸뚱이로 파묻지 않을 거야. 50전이면 싸구려 관 하나는 살 수가 있을걸. 또 1원이면 공동묘지 한 평은 얻어낼 수 있다고 들었어. 자네 무덤을 써줄 거라고. 무덤이라도 있어야 개똥이가 나중에 절할 데라도 있지. 날이 밝는 대로 치삼이를 부르러 가야지. 치삼이라면 도와줄 거야. 나 혼자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개똥이도 죽은 걸까? 문득 겁이 나 시신에서 세 살 먹이를 빼내었다. 아이가 깨어나더니 울지도 못하면서 젖을 갈구하는 낯짝이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를 포대기에 싸 안고 방을 나섰다.

“여보, 잠깐 다녀올게.”

궂은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하였다. 쉰 걸음을 나는 듯이 달려 어린애 젖 빠는 소리 들리던 집, 들창문 밑에 멈추었다.

“여보시오, 보령댁!”
“에구머니나, 게 누구유?”
“나 인력거꾼 김첨지요. 젖 좀 얻으려고 왔소. 저번에도 신세 졌잖소.”
“그때는 낮이기나 했지, 이 야밤에……. 새댁이 또 젖이 안 나와유?”
“아예 못 나오게 되었소. 암튼 젖 좀 주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없네유. 저번에는 하도 안돼 보여서……우리 애 주고도 남는 젖이 있기에 나눠준 것이었는디……”
“나 돈 있소. 저번 젖값까지 10전 드리리다.”

남편이 감옥에 있다든가, 만주로 돈 벌러 갔다든가, 없는데 있는 척 흰소리하는 건가, 아무튼 혼자 사는 보령댁이 방문을 열어주었다. 개똥이는 보령댁의 젖을 물자 사정없이 빨아먹었다.

“밖이 춥소. 문을 닫든지 들어오든지 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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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김첨지가 “삼십 원을 벌었어”라고 말하는 문장이 있어, 그날 김첨지가 번 돈이 30원 이라고 이해하는 분도 있겠지만, 소설 속에 진술된 번 돈을 모두 더하면 2원 90전이고 1920년대의 경성물가를 감안하면 ‘삼십 원’은 김첨지의 허풍(현진건 작가의 과장법)으로 보는 게 적실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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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첨지는 선뜻 들어서고 말았다. 털썩 앉기가 무섭게 30전을 꺼내 놓았다. 보령댁의 딸인지 아들인지는 잘도 자고 있었다. 아내가 보령댁처럼 건강한 여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를 들쳐 업고 온 동네 궂은일 험한 일 해주고 호구지책 하는 보령댁의 푸짐한 몸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보령댁이 민망한 듯 몸을 돌리면서 물었다.

“10전 준다 하지 않았어유?”
“어쩌면 내일도 부탁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어쩌면 모레도, 글피도, 그 글피도……”
“새댁이 죽기라도 했어유?”
“그런가 보우.”
“오래 못 갈 줄 알았어유……. 그럼 죽은 사람 혼자 있슈?”
“그런가 보우.”
“개똥이는 내가 데리고 잘 테니 얼른 가 보셔유. 그르케 일찍 죽은 것도 서러운데 혼자 있으면 얼마나 외롭겄슈. 저는 날 밝으면 가보께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한없이 멀었다. 나는듯이 달려왔던 길을 거의 기어가고 있었다. 집에 가기 싫었다. 혹시 아내가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죽지 않았는데 죽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걸음이 빨라졌다. 바보 같으니라고. 죽었잖아. 죽었잖아! 또 한없이 느려졌다.
가까스로 문간 나무 기둥에 묶어 놓은 인력거 앞에까지 왔다. 인력거꾼 한평생이 서럽고 분했다. 앞으로도 인력거꾼으로 살아야 하나? 그럴 수밖에 없겠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김첨지는 방문 앞에서 정신이 번쩍 났다. 망자의 찢어진 꽃신 말고도, 구두 한 짝과 고무신 한 짝이 있지 않은가. 방문을 벌컥 여니, 두 사내가 제집처럼 앉아 있었다.

“당신들 뭐야?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쉿! 주인집이 알아서 좋은 일 없잖아요. 얼른 들어오기나 하쇼.”
“당신들 뭐냐니까?”
“문상객이라고 해둡시다.”

당당한 불청객들이 공포스러웠다. 혹시 저들은 저승사자가 아닐까? 아내를 데리러 온?
김첨지는 남의 집에 도둑질하러 들어가는 듯 벌벌 떨었다. 김첨지는 죽은 아내 뒤통수를 바라보고 앉았다. 하나는 양복을 입었고 하나는 신식 의사 차림새였다. 그들에게서 아내의 시취보다 더 더러운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당신들 진짜 뭐요? 이게 무슨 해괴한 경우요?”
“좋은 일로 왔어요.”
“죽은 사람 집에 와서 좋은 일이라니?”

김첨지는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도 설렁탕 그릇이 빈 게 보였다. 아내가 저 설렁탕만 먹고 죽었어도 덜 미안했을 텐데. 혹시 죽은 아내가 먹은 게 아닐까. 설렁탕도 못 먹고 죽은 게 한이 되어 넋이 먹은 게 아닐까?
양복쟁이가 겸연쩍게 늘어놓았다.

“내가 데워 먹었소. 음식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당신 먹으라고 사 온 게 아니라고! 우리 마누라가 소원, 소원해서 죽기 전에 실컷 먹이려고 사 온 거라고.”
“미안하게 됐소.”

두 평 조금 넘는 방에 망인 하나에 사내 셋이 들어 앉았으니 숨이 턱턱 막혔다.

“당신들 진짜 뭐요?”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도와주는 사람들이오.”
“대체 뭘 도와준단 말이요?”
“솔직히 말해봅시다. 장례 치를 수 있겠소?”
“왜 못 치른단 말야? 내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데. 어젯밤에만 2원 90전을 벌었다고. 자 볼래, 술 1원 먹고, 젖값 30전 주고도 이렇게나 많이 남았단 말야.”

김첨지는 호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소. 어쭙잖은 초상 치르는 데 그 돈 다 쓰면, 그다음엔?”
“그걸 왜 늬들이 걱정해?”
의사쟁이가 불쑥 말했다.
“30원 드리리다.”
30원? 장난으로도 들어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액수에 김첨지는 소스라쳤다.
“그게 웬 소리요?”
“우리 의학연구소에서는…… 많이 필요하오.”
“좋은 게 좋은 거잖수. 댁은 돈 벌고, 이쪽은 쌩쌩한 시신을 얻고.”
“지금 나더러 죽은 아내를 팔라는 거야? 이 미친놈들을 보았나.”
김첨지는 양복쟁이의 머리통을 바라보고 주먹을 날렸다. 양복쟁이가 김첨지의 주먹을 막아 쥐고는 은근히 웃었다.
“묻히면 썩어 문드러질 몸, 너무 아깝지 않소?”
“이 두억시니 같은 놈들!”
“연구가 끝나면 장례도 잘 치러드릴 겁니다. 댁이 치르는 장례보다 훨씬 보란듯 할 거요.”
“내가 죽은 아내를 팔아먹을 사람으로 보여? 당장 나가지 못해.”
“아내를 사랑했나 보오. 생각할 시간을 드려야겠군. 마음이 정해지면 XX의학연구소로 데려오시오. 늦을수록 값이 떨어진다는 것만 알아두쇼.”

두 사내가 가고 나자, 방안은 한없이 넓어졌다.
대관절 그들은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기는 이 동네에서 병들고 굶주린 사람 죽어 나가는 것은 흔한 일이고, 오늘내일한다고 소문난 사람 주소 파악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게다. 김첨지의 아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이 동네사람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아내가 죽자마자, 남다른 촉수를 가진 시체장사꾼들은 저승사자처럼 알아차렸을 것이다.

혹시 그들은 실제로 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환각 속에서 만난 이들이었을까? 시신을 사러 다닌다는 사람들, 시신을 돈 받고 사준다는 무슨 연구소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냐, 그들은 정말 사람이었어. 정말 왔었다고. 내가 망상한 사람들이 아니야!'

김첨지는 무서웠다. 죽은 사람을 원 없이 보았고 죽은 사람을 만지거나 묻은 것도 헤아릴 수 없지만, 죽은 사람과 밤을 지새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죽은 아내가 무서웠고, 죽은 아내를 팔아 치울 생각을 하는 자신이 무서웠다.
개똥이를 혼자서 살릴 수 있을까? 공짜로 동냥젖 줄 여자는 없어도, 돈 10전에 제 자식 젖까지 내줄 여자는 많았다. 그러니까 개똥이를 살리려면 돈을 벌어야 했는데, 돈 벌러 나간 사이에 개똥이는 누가 본단 말인가? 인력거에 싣고 다닐 수도 없고. 장모도 없는 장인집에 맡길 수도 없고. 버릴까? 서양놈들이 한다는 교회 같은 곳에 버리면 거둬서 멀리 이역에 보내주기도 한다는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내 아들이다, 내 하나밖에 없는 혈육 개똥이. 살려야 한다. 보란 듯이 키워야 한다. 아내도 잃었는데 자식까지 잃을 수는 없다.

30원이면 개똥이를 살릴 수 있다. 어디에든 맡길 수도 있다. 아니, 내가 키울 수도 있다. 돈 벌러 나간 사이에만 봐달라고 하는 거야. 누구한테? 마음씨 좋은 보령댁한테. 보령댁은 받은 돈 이상으로 잘 챙겨줄 사람이지. 아예 같이 살자고 해볼까? 30원 가진 사내를 싫다고 하겠어? 저도 혼자 애 키우고 사느라고 곤궁하기 그지 없으니.
아내가 부릅뜨고 소리쳤다. 네 마누라 죽은 지 몇 시간 됐다고 새살림 차릴 생각을 해? 이 몹쓸 인간아.

“아니야, 여보, 난 개똥이 살릴 생각에……. 보령댁한테 딴마음 품은 적 없다고. 그냥 건강해서 좋았다고. 만날 골골한 당신 보다가 보령댁 보면 그냥 부러웠다고. 미안해. 미안해. 근데 우리 개똥이 어째야 옳아. 나만 남겨 두고 가버리면 어쩌란 말야. 이 고약한 여편네야. 너는 저 세상에서 맘 편히 살아 그만이겠지만, 개똥이 키워야 하는 나는 어쩌란 말야?”

아내는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다 치면, 정말이지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2원 90전도 모자라서, 30원이라니!
김첨지는 견딜 수 없어 뛰쳐나갔다. 문득 인력거에 올라앉았다. 만날 끌기만 했지 인력거에 타본 적이 있던가? 가물가물했다. 아내를 인력거에 태우고 달리던 날이 생각났다. 처음 만났던 날, 김첨지는 큰소리쳤다.

“너, 나랑 살면 만날 인력거 태워 줄게. 일단 한번 타볼래?”

인력거에서 아내가 내지르던 상쾌한 웃음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김종광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김종광 소설가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낙서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놀러가자고요』
장편소설 『똥개행진곡』 『조선통신사』
산문집 『웃어라, 내 얼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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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7-0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