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위의 패스포트

세비야, 유쾌한 열정과 빈티지의 황홀

노트위 패스포트 세비야,유퀘한 열정과 빈티지의 황홀 '세비야의 이발사'와세비야의 건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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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유퀘한 열정과 빈티지의 황홀 '세비야의 이발사'와세비야의 건달들'-1

1. 17, 18세기 스페인의 세비야(Sevilla)에는 만물박사가 살았다. 만능 재주꾼이며 해결사인 그의 직업은 이발사, 이름은 피가로(Figaro). 피가로는 이발과 면도는 물론 의료 시술, 중매, 편지 대필, 고민 상담, 온갖 자질구레하고 난처한 일 처리, 동네의 비밀과 스캔들 전파 등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결해 준다. 이쯤 되면 이발사는 직업을 넘어, 동네를 실질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좌지우지하는 실세라고 할 수 있다. 이발사가 없다면 동네의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될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중세가 저물고 근대가 밝아오던 즈음, 유럽의 ‘이발사’는 이발사, 미용사, 의사, 작가, 기획자, 상담사, 로비스트, 심부름꾼, 여론 수집 및 전파자 등 한 마을이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직업을 망라한 융·복합적인 직업이었다. 프랑스의 작가 보마르셰가 쓴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와, 조아키노 로시니(Gioachino Rossini, 1792~1868)가 이를 각색해 만든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가 ‘이발사’를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분명하다. 이발사는 당대의 보통 사람들, 특히 생활의 세계를 움직이는 기층 민중을 상징하는 직업이자 인물이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프랑스 시민혁명을 전후해 유럽에 출현한 근대 도시와 시민의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주역을 의미했다. 보마르셰의 희곡과 연극이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끼친 점, 도시 세비야가 유럽의 내륙과 해외를 잇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는 귀족의 연애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지만, 다가오는 시대의 엄연한 주인공 피가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피가로는 사람들의 온갖 일을 해결해 주는 이발사의 삶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자랑한다. 다양한 재주에다 번뜩이는 재치, 유쾌한 성격까지 갖춘 피가로가 부르는「나는야 이 거리의 만물박사」는 로시니의 오페라의 가장 매력적인 곡으로, 관객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웃음 짓게 한다.

나는야 이 거리의 제일가는 만물박사라네! 라르고!
라 란 라 라 란 라 라 란 라 라
동이 트고 있으니 서둘러 출근을 해야지! 프레스토!
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삶인가!
이발사로 산다는 것은 말이야.
아! 훌륭해! 나 피가로는 말야. 멋져!
행운은 항상 나에게 찾아온다네.

밤이고 낮이고 무슨 일이든 항상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이발사로서 편안하고도 품위 있게 일을 한다네.
면도기와 빗, 칼과 가위를 마련하면 준비는 끝이지.
(…)

모두가 나를 찾는다. 모두가 나를 바란다.
귀부인, 젊은이, 늙은이, 아가씨.
여기서는 가발, 저기서는 서둘러 콧수염,
여기서는 피를 빼 달라고, 저기서는 서둘러 편지를.
(…)

피가로, 피가로…….
세상에, 이 광란이란! 세상에, 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한 분씩 부디 부탁합니다요.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이발사 피가로가 부르는 「나는야 이 거리의 만물박사」 일

어디 이런 이발사 없을까? 지금이라도 세비야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거리의 만물박사를 자처하며, 동틀 무렵 세비야의 골목과 광장을 누비며 출근하는 이발사. 자신의 직업과 삶을 사랑하며 즐겁고도 품위 있게 일하는 이발사. 신분이 낮고 사회적으로 받는 대접은 하잘것없지만, 수많은 문제를 지닌 사람들의 옆에서 혹은 위에서 그들을 돕고 치유하고 바로잡는 이발사. “세상에, 이 많은 사람들이” “광란”에 가까운 수요로 끊임없이 찾아대는 이발사. 피가로가 민첩한 걸음으로 세비야의 거리를 활보하고, 이발소에 찾아온 손님들의 온갖 잡무를 호탕하게 웃으며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지 않는가. 여기에다 중세와 근대, 유럽과 아랍,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매혹적으로 어우러진, 흔히 ‘세빌리아’로 더 잘 알려진 도시 세비야는,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새로운 삶의 시간이 열리는 듯한 황홀을 선사한다. 여행이란 결국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마술적 힘을 구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피가로는 귀족의 조력자 위치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귀족이 갖고 있지 못한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고 그들의 악행과 부도덕을 응징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이 지켜야 할 올바른 윤리, 신분이 아닌 능력에 기초한 인간 평등의 시대정신은 피가로의 기상천외한 지략과 해결방식을 통해 통쾌한 웃음의 감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애초에 원작자 보마르셰는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1773)를 「피가로의 결혼」(1778,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로 더 유명하다),
「죄지은 어머니」(1792)와 함께 ‘피가로 3부작’으로 완성했다. 귀족이 아닌 평민을 연작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민중의 요구와 역사의 새로운 흐름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었다.

피가로는 귀족의 타락과 봉건시대의 몰락을 지켜보며 근대의 태양을 맞이하는 ‘내부 속의 외부자’였다. 그 증거로,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피가로의 도움으로 미모의 상속녀 로지나와 결혼한 알마비바 백작은 「피가로의 결혼」에서 피가로의 결혼 상대인 하녀 수잔나를 넘보는데, 중매의 공로로 백작이 하인이 되어 있던 피가로는 백작의 부인 로지나 및 약혼녀 수잔나와 공모해 백작에게 낭패를 안겨준다. 또,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에게 결혼을 강요하며 알마비바 백작과의 사랑을 방해하던 바르톨로 박사는 「피가로의 결혼」에서 피가로의 아버지임이 밝혀진다. 피가로가 지배층과 하녀 사이의 혼외자라는 설정은 당대 체제의 균열을 드러내는 장치이자, ‘내부 속의 외부자’로서 피가로가 지닌 변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그런데 피가로는 왜 다른 도시가 아닌 세비야의 이발사일까?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수도인 세비야는 많은 예술작품의 배경이 될 만큼 역사적으로 문제적인 장소였다. 세비야는 로마인, 무어인 등 이민족의 숱한 침략을 견디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축적해 왔고, 스페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 왔다. 중세 스페인을 점령한 이슬람이 수도로 삼은 곳도, 스페인이 신대륙 탐험의 기지로 삼은 곳도 세비야였다. 조국 스페인에 거절당하고 포르투갈의 후원으로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의 관이 현재 공중에 노출된 형태로 세비야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기도 하다. 죽어서도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던 콜럼버스의 유언을 받드는 방식이 아이러니컬하다.

세비야는 이발사, 상인, 예술가, 탐험가, 집시, 호색한, 도둑, 돈을 벌기 위해 흘러든 외지인들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집합소로 근대 도시의 면모를 일찌감치 형성했다. 그래서일까. 피가로의 이야기는 현대문명의 한복판에서 현재형으로 반복되고 있다. 현대 오페라의 거장 피터 셀라스는 「피가로의 결혼」을 20세기 후반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이야기로 패러디했다.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에 사는 회장님은 요란한 연애 끝에 결혼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녀 수잔나를 넘보기에 바쁘다. 수잔나가 자신의 운전기사인 피가로와 오늘 결혼할 예정임에도 아랑곳 않는 회장님은, 결국 피가로와 수잔나, 자신의 아내의 협공에 보기 좋게 진압 당한다. 현실에서 회장님은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한반도 65년 휴전의 역사를 평화의 역사로 전환하는 일에 지휘봉을 휘두르며 ‘연출’과 ‘흥행’에 힘쓰고 있으니, 삶과 역사의 아이러니 역시 양상을 달리하며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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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구시가지는 과달키비르 강을 서쪽에 끼고 세비야 대성당에서 로열 알카사르, 세비야대학교, 스페인 광장, 마리아 루이사 공원까지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면적에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정수들이 모여 있는 것이 놀랍다. 세비야 성당 옆에는 로열 알카사르의 성벽을 끼고 옛 유대인 마을인 산타크루스 거리가 오밀조밀 자리한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예쁘고 단정한 옛 가옥들이 ‘빈티지의 황홀’을 만끽하게 한다. 창문으로 물건을 주고받을 만큼 양쪽 집이 가까운 ‘키스골목’이 있는데, 굳이 키스골목이 아니어도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스페인 남부의 건축미학과 세비야 사람들이 지닌 사랑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정겹고도 아름다운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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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크루스에는 레몬색으로 칠해진 로지나의 집이 있다(고 한다. 사실 필자도 여행을 다녀와서 알았다). 발코니가 달린 로지나의 2층 방 창문 아래서 알마비바 백작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로지나에게 구애했다. 물론 상상의 이야기일 뿐, 사실이 아니다. 「세비야의 이발사」가 허구의 창작물인데, 그 속의 가공인물이 살았던 집이 실재할 리 없다. 여행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세비야 관광 공무원쯤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산타크루스에는 「세비야의 이발사」 외에도 예술작품과 예술가, 유명인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가 된 담배공장도 인접해 있다. 담배공장은 현재 세비야대학교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오페라 속에서 집시 카르멘은 담배공장에서 일하고, 산타크루스 거리에 있는 집시들의 아지트인 선술집을 드나들며, 그 거리의 어느 집에서 산다. 카르멘이 살았다는 집도 이 거리 어디쯤에 있다는데, 역시 관광 진흥 차원의 발상이다.

스페인의 전설적 인물 돈 후안(Don Juan)이 수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눈 곳도 산타크루스였다고 한다. 돈 후안은 스페인의 극작가 몰리나가 쓴 비극「세비야의 호색가」(1630)에 문학적 주인공으로 처음 등장한 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1787)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300~400년 전의 세비야로 돌아간 듯한 산타크루스의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돈 후안이 살았다는 집과 그의 약혼녀 도나 이네스가 봉사했다는 병원도 만날 수 있다.

알카사르는 요새, 성(城)을 의미한다. 산타크루스 옆,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로열 알카사르는 세비야의 영욕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슬람의 모스크와 유럽의 성이 혼재된 건축으로, 아름답고 넓은 정원을 거느리고 있다. 탱탱한 열매가 가득한 오렌지나무들이 곳곳에서, 훌륭한 방들과 회랑과 벽화와 타일 등 인간의 걸작들을 따라가느라 지친 눈을 산뜻하게 한다. 로열 알카사르도, 이슬람을 물리친 기념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짓기 위해 건축된 세비야 성당도 제대로 보려면 각기 반나절이 걸린다. 규모도 규모지만, 기독교의 서사를 재현한 성화(聖�)들과 황금으로 감싸인 거대한 조각들, 고딕 양식의 웅장한 건물은 예술성에서도 잊지 못할 황홀을 선사한다.

2. 『돈키호테』로 너무도 유명한,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세르반테스도 세비야와 인연이 깊다. 세르반테스는 1588년부터 10년 안팎을 세비야에서 살았다. 그의 단편소설 「세비야의 건달들」(Rinconete y cortadillo)은 “신과 선량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10대 중반의 떠돌이 소년의 눈을 통해 당시 세비야의 사회상을 생생히 묘사한다.

스페인 북부의 시골 태생으로 면죄부를 팔던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마드리드에서 속임수 카드놀이를 하던 린콘, 역시 시골 태생으로 톨레도에서 도둘질을 하던 코르타도는 세비야로 여행하는 길에 만나 친구가 된다. 이들이 세비야로 가는 이유는 하나다. “세비야는 자신들의 원대한 꿈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 잔챙이 범죄자들인 린콘과 코르타도는 세비야에 가면 불합리하고 부패한 마드리드나 톨레도와는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세비야에 도착한 소년들은 대성당과 거대한 범선들이 가득한 부두의 광경을 보며 설렌다. 그러나 세비야는 인간의 악행과 선행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도시였다. 그것도 한 인간 안에서 모순과 충돌 없이. 린코네떼가 도둑질을 하다 걸려들어 강제로 동참하게 된 세비야의 범죄조직에 대해 생각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모니뽀디오와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그 조직의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들었던 말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엉터리 라틴어를 말했고, 엉뚱한 어휘들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둑질, 살인, 신성모독과 같은 행위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신앙심이 부족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과 확신은 린꼬네떼를 놀라게 만들었다. (…)
마지막으로 세비야라는 그 유명한 도시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에 그토록 역행하는 위험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공공연하게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세르반테스, 「세비야의 건달들」[『세비야의 건달들』, 박 철/석진범 역,
오늘의 책, 2013(e-book)], 25쪽

세르반테스가 본 세비야의 실상, 특히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처럼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속물적인 믿음에 사로잡힌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금요일에는 도둑질을 하지 않고 토요일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자와는 말도 하지 않”는 방식, 평일과 주일 사이에 훔친 돈과 헌금을, 타인에 대한 폭력과 자기 구원을, 악과 선을, 지옥과 천당을 두고, 아무런 자의식과 양심의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왕래하는 방식은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에서 본 인간의 모습이며 근대 도시의 모습이었다.

물론 세르반테스는 이런 세태를 교화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 그가 「세비야의 건달들」을 포함해 12편의 이야기를 모은 소설집에 『모범소설』(1613)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교회에만 있을 수 없고, 항상 기도에만 열중할 수 없으며, 아무리 유능한 사람일지라도 항상 사업에만 몰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고통받는 영혼이 휴식할 기분 전환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 만일 독자들께서 제 소설을 읽고 나쁜 욕망이나 생각을 하게 된다면, 저는 이 소설을 대중 앞에 내놓기 전에 제 손을 잘라버리겠습니다.” 세르반테스가 서문에 쓴 소설의 목적은 우리 시대에는 여전히 혹은 얼마나 필요하며 유효한가? 세비야에서 여행자가 느끼는 열정과 황홀은, 생각할수록 저 모든 ‘타락’의 이야기들에 적잖이 빚지고 있다는 것. 세비야는 황홀과 환멸 사이에서, 경탄과 비애 사이에서 찬란하다.

김수이

평론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968년생

저서 『풍경 속의 빈 곳』 『서정은 진화한다』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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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2-2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