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을 좀 안다는 한국의 젊은 여행객들이 홍콩에 성지순례처럼 찾아가는
허름한 국수집이 센트럴지구에 있다.
양조위가 단골이라고 해서 유명해진 소갈비국수 집이다.
주윤발이 <영웅본색>에서 와신상담을 하며 먹던 도시락이 명물 ‘차씨우판’이다.
그런가하면 길거리에서 행상에게 사먹는 음식은 ‘쵱판’이라는 쌀국수인데
한국 젊은세대들이 홍콩에서 즐겨 찾다가 요즈음 홍대에도 파는 집이 생겼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홍콩영화와 맛있는 홍콩음식 이야기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해마다 인구 두 명에 한 명꼴로 해외로 나간다. 일본은 7명에 한 명꼴로 해외여행을 하니,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보다 3.5배 더 해외를 나가는 셈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국토가 넓고 국내 여행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등 해외를 덜 찾는 이유를 이런저런 데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한때 우리보다 훨씬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던 일본인들의 여행 의욕이 이제 옛날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해외여행을 하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려는 의욕이 낮아진 것이 각종 수치에서도 나타나, 일본 정부도 이러한 경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학생들이 해외여행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지 나아가 재정적 지원까지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를 작년에 읽은 적이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젊은 세대는 구직자 대비 일자리가 부족한 심각한 취업난이 사회문제가 된 지도 꽤 되었는데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일본에 비해 훨씬 많다. 지리적으로는 반도이지만 분단으로 인해 섬처럼 고립된 국토에 갇혀 답답해 하다가 여건이 되니 그 옛날 말을 타고 대륙을 쏘다니던 노마드의 유전자가 발현한 게 아닐까 싶게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도 배낭을 멘 한국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를 가보면 주마간산 격으로 구경을 하는 일회성 관광객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여행의 테마를 정해놓고 여러 번 반복해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오늘은 미식의 도시 홍콩 이야기이다. 한때는 도시 전체가 면세구역이라 쇼핑의 낙원이라는 별칭을 가졌던 홍콩이지만, 그건 이미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지금은 홍콩의 매력 하면 미식을 으뜸으로 꼽는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정보를 구하고 공유하는 SNS에서 홍콩여행에 관한 내용을 검색해 보면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노하우가 꽤 많이 나온다. 가성비가 좋은 집, 스토리텔링이 있는 집 등 다양한 정보를 보고 있노라면 참 영리하게들 다니는구나 싶어 괜히 마음이 흐뭇해진다. 흐뭇하다는 시선 자체가 요새 말로 꼰대스러움일 수도 있겠는데 아무튼 다양한 정보와 스토리텔링에 한 숟갈 보탬이 되고 싶은 바람에 이 글을 쓰니 꼰대의 오지랖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이 연재에서는 홍콩에서 시작해 앞으로 세계 여러 도시를 다룰 예정인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아는 만큼 맛있다’로 치환하고 싶은 마음에서 쓰는 글이라는 걸 오늘 딱 한 번만 밝히고 넘어가자.
홍콩을 좀 안다는 한국의 젊은 여행객들이 홍콩에 성지순례처럼 찾아가는 허름한 국숫집이 센트럴지구에 있다. 양조위가 단골이어서 유명해진 소갈비국수 집이다. 양조위는 <비정성시>에서 풋풋한 청년으로 데뷔를 한 이래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무간도> <색계> <적벽대전> <일대종사>에 이르기까지 숱한 명작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배우다. 그가 잘 찾는다고 해서 유명해진 국숫집이 까우게이(九記;KauKee)라는 곳이다. 센트럴(中環)지구에 있어서 찾아가기도 수월하다. 간판은 ‘구기우남’이라고 붙어있는데 우남의 남은 갈비 부위를 뜻한다. 그러니까 소갈비라는 말이다. 만다린으로 ‘니우난’이지만 현지 광동어 발음은 ‘응아우람’이라고 하면 통한다. 잠깐 옆으로 새서 단어 설명에 첨언하자면, 홍콩에 가서 가게를 보면 무슨 무슨 기(記)로 끝나는 상호가 적지 않은데 이 말은 가게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李記 그러면 이씨네 가게, 이런 뜻이다. 비슷한 예로 행(行)으로 끝나는 것도 마찬가지로 상호에 들어가는데 '유한양행'할 때의 양행이 서양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라는 뜻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은행이라는 단어도 은을 다루는 행, 즉 돈을 취급하는 영업점이라는 뜻이다.
홍콩에서 양조위가 단골이라고 해서 구기우남은 홍콩 사람들에게 먼저 유명해졌고, 곧 한국의 팬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슈퍼스타가 와서 찾을 정도로 진짜로 맛이 좋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쥔 그 슈퍼스타가 대중들과 함께 국수를 후루룩거리는 서민적인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며 얻는 연대감이다. 이 집에선 소갈비국수를 시켜도 좋지만 소갈비 카레국수도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요즈음 한국어 메뉴도 마련해 놓았다고 하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양조위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스타 성룡, 주윤발 모두 홍콩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공부도 많이 못 했지만 그들 모두 떳떳하고 당당하다. 그래서 홍콩사람들의 이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한 것 같다. 이야기는 양조위의 소갈비국수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내가 홍콩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쵱판, 완탄면, 소고기 국수볶음(乾炒牛河), 차씨우 이렇게 네 가지다. 물론 제일 유명한 딤섬이 있지만 이건 다양한 음식을 먹는 방식이므로 별도로 소개한다.
선글라스를 쓰고 불타는 달러화로 담뱃불을 붙이던 사나이.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으며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는 그의 매력에 당시 한국의 청년들은 넋을 잃었다. 이른바 홍콩 누아르의 효시이자 절정이었던 <영웅본색>의 주윤발 이야기다. 서울 변두리 재개봉관에서는 동네 ‘노는 형’들이 몰려와 계속 상영하라고 하도 ‘강력하게 부탁’을 해서 영화를 내리지도 못하고 계속 틀어야 했다는 도시전설이 있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다. 꽃미남 장국영과 멋쟁이 신사 적룡까지 합세한 <영웅본색>은 서극, 오우삼 콤비가 만들어낸 많은 걸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상 깊은 음식 두 가지가 있으니 그 하나가 쵱판이고 또 하나가 차씨우판이다.
영화의 스포일러를 주의하기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영웅본색>에서 주윤발과 적룡은 달러로 담뱃불을 붙일 정도로 돈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 그런 그가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 먹는다. 우리나라 떡볶이같이 생긴 걸 고추장 같은 것에 찍어 입가에 묻혀가며 맛있게 먹는다. 이게 쵱판(腸粉)이다. 만다린으로 '창펀'이라 발음한다. 쌀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넣고 전분을 짜낸 뒤 천을 얹은 채반 위에 흘려 넣고 쪄내면 얇은 막이 되며 익는다. 식감이 아주 매끈하며 부드럽고 맛은 고소하다. 쌀로 만든 음식이라 소화도 잘되고 밥 대신 식사로도 잘 맞는다.
이 쵱판으로 새우를 속으로 넣어 돌돌 말은 게 딤섬 메뉴의 하쵱판(蝦腸粉)이고 차씨우를 넣고 만 게 차씨우쵱판(叉燒腸粉)이다. 딤섬식당에는 이것 말고도 소고기를 넣은 쵱판도 있는데 소고기쵱판에는 대개 고수(썅차이)가 들어 있다는 걸 참고로 밝힌다. 쵱판에 속을 넣지 않고 민짜로 얇게 만 걸 아침식사로 먹는 홍콩사람들이 많다. 쵱판을 쮜쵱판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고추장보다는 덜 맵고 단 맛이 나는 고추장 소스에 찍어서 먹는다. <영웅본색> 속 주윤발은 이 음식을 거리 행상에게서 사 먹는다. 경찰이 불법행상 단속을 하자 그걸 방해하면서 노점상이 무사히 달아나게 해준다. 내일을 모르는 암흑가에서 살아가는 처지이지만 서민적인 면모가 있고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라는 걸 잘 보여준 장면이다.
<영웅본색>에서 동료의 배신으로 적룡은 감옥에 가고 주윤발은 복수에 나서지만 자신도 총에 맞아 절름발이가 되고 만다. 배신의 장본인이자 과거의 부하 밑에서 그는 밑바닥의 궂은 잡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그는 세월을 기다리며 복수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와신상담의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적룡이 출소하여 찾아간다. 싸구려 곽밥을 먹고 있던 주윤발은 그리던 친구를 보자 목이 멘다. 이 곽밥을 중국에서는 허판(盒飯)이라고 부른다. 값은 저렴한데 맛이 좋아서 지금도 홍콩의 샐러리맨들이 바빠서, 경제적인 이유로 많이 찾는다. 흰밥 위에 육류를 얹고, 달콤짭잘한 간장베이스의 소스를 뿌린 뒤에 야채를 사이드로 살짝 얹은 게 대부분의 구성이다. 오리, 닭, 차씨우가 육류의 선택지이고 야채는 까이란(芥藍), 초이쌈(菜心)이라 부르는 남방야채이거나 상초이(生菜)이라고 부르는 레터스를 데친 경우가 많다.
차씨우(叉燒)는 돼지고기를 물엿, 간장, 각종 향신료를 발라가며 화덕 속에서 천천히 구워낸 것이다. 홍콩 또는 광동지방에서 차씨우를 먹어본 많은 외국사람들이 ‘돼지고기로 만들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돼지고기 요리’로 꼽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물론 홍콩사람들에게는 가장 친숙한 컴퍼트 푸드이자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오븐에 걸어놓고 구우려니 꼬치에 꿰어야 하는데 그래서 꿰어(叉) 구웠다고(燒) 차싸오, 광동어로 차씨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차씨우는 홍콩을 여행하는 분들은 꼭 맛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여럿이 가면 딤섬 레스토랑에서 한 접시를 시켜 먹어도 좋고 타이트한 예산으로 여행하는 경우라면 영화 속 주윤발처럼 도시락(盒飯)으로 사 먹어도 좋다. 점심때나 저녁 전에 홍콩사람들이 줄 서 있는 집이면 틀림이 없으니 그런 곳을 골라서 사 먹으면 된다. 공원 같은 데서 항구를 바라보면 도시락을 까먹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양조위는 왕페이가 하는 케밥집에 자주 들린다. 왕페이 자신은 컵라면을 먹고, 케밥을 판다. 중경삼림에 어울리는 메뉴다. '중경삼림'이라는 말은 구룡반도 번화가 침사쪼이에 있는 충킹맨션(重慶大廈)을 일컫는 말이다. 불법 증개축을 거듭하여 엄청난 미로로 이어진 잡거빌딩인데 일찍이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리카계 사람들도 많이 들어와 산다. 양조위가 이 구역을 순찰하다가 간이 식당에서 동료들하고 먹곤 하는 것이 차씨우판(叉燒飯)이다. 그만큼 차씨우는 홍콩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음식이다.
희극의 대가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 <식신>을 보면 생선완자(魚丸)가 얼마나 신선하고 탄력이 있는지 그걸로 탁구 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코미디영화의 주성치스러운 과장이지만 홍콩에서 빼놓으면 아쉬운 게 위완(魚丸) 또는 위딴(魚蛋)이라 불리는 생선완자다. 요즈음은 우리나라도 부산에서 발전하여 맛있는 어묵제품이 다양하게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다양한 생선을 원료로 한 홍콩의 생선완자의 탱글탱글한 식감과 맛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이걸 넘어서서 꼭 추천하고 싶은 건 완탄면이다. 많은 홍콩영화에 나와서 일일이 소개하기도 어려운 정도다. 완탄은 중국에서도 훈툰이라고 해서 지방마다 있고 훈툰면도 흔하다. 그러나 국물도 다르고 면발도 다르고 무엇보다 완탄의 맛이 다르다. 신선한 새우의 탱글탱글한 맛은 홍콩이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국물도 말린 가자미로 내는 게 정통인데, 검색해서 잘하는 집을 찾아가 먹으면 실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 관객에게 <만추>와 그 뒤에 이어진 결혼으로 친근해진 탕웨이가 <열혈남아>의 장학우와 공연한 영화 <크로싱 헤네시>에서 중요한 무대로 등장하는 차찬텡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자. 홍콩의특이한 업태인 차찬텡(茶餐廳)은 한자 뜻 그대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는 식당이다. 음식도 먹을 수 있고 디저트에 커피나 차도 마실 수 있는데, 요즘은 해외에도 생겨나고 있다. 메뉴로는 볶음국수, 볶음밥, 각종 덮밥에 여러 가지 국수 등 전형적인 중식메뉴에서부터 토스트, 마타로니 등 서양메뉴도 있다. 얼핏 들으면 우리나라 분식집 비슷한데 잘하는 집은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게 규모도 크고 장사도 잘된다. 한 가지 음식을 하는 전문점에 찾아가 즐기기에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들에게는 잘한다는 차찬텡을 찾아가 골고루 시켜 함께 나눠가며 맛볼 것을 권한다. 딤섬 레스토랑은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자세한 소개를 생략하고 가성비가 뛰어나 요즘 뜨는 곳 팀호완(添好運)을 추천한다. 센트럴지구에도 있지만 가능하면 삼쑤이뽀에 있는 1호점을 가면 조금 덜 기다리고 홍콩다운 분위기를 더 즐길 수가 있다.
여행하실 분들은 아래 상호를 복사하여 인터넷에 검색하면 친절한 소개나 위치가 나올 것이니 참조하시기 바람.
워낙 맛있게 하는 많은 집이 있지만 참고로 한 두 곳만 소개하는 것임.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