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문학 기행

영원한 청년 작가, 김유정

다큐 문학 기행 : 영원한 청년 작가 다큐 문학 기행 : 영원한 청년 작가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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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유정, 병마도 이겨낸 소설에 대한 욕망!

다큐 문학 기행 : 영원한 청년 작가 1
단짝친구사이인 이상과 김유정
1936년 가을, 시인 이상이 요양 중이던 소설가 김유정을 찾아간다. 이들은 한날한시에 함께 죽으려고 결의할 만큼 단짝이었고, 둘다 당시 불치병인 폐병을 앓고 있었다.

(이상)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병마의 고통을 못 이긴 이상은 사실상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유는 단 하나, 소설을 더 쓰고 싶어서였다.
(김유정) “저는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김유정이 이상보다 한 달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스물 아홉이었다.

모정을 평생 그리워하던 김유정의 삶!

다큐 문학 기행 : 영원한 청년 작가 2
당대 명창이자 기생이던 박녹주에게 거절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유정
김유정은 1908년 2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결석이 많아 제적처분을 받기도 했는데…. 일곱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김유정은 당대 명창이자 기생이었던 박녹주에게 광적인 구애를 하고 거절 당한다.
그 일로 실의에 빠져 고향인 춘천 실레마을로 돌아온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 <오월의 산골작이> 중
이 산 저 산이 어머니 품처럼 마을을 감싼 고향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김유정은 언덕받이에 야학을 열고 농촌 계몽 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맏형 김유근이 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누이들 집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는데….
절친이자 시인이었던 안회남은 이런 김유정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쓸 것을 권한다.

다양한 작품활동을 벌인 시기

다큐 문학 기행 : 영원한 청년 작가 3
잡지 <제일선><신여성> 조선일보 신춘문예, 조선중앙일보에 활발한 작품 활동
다시 서울로 올라온 김유정은 1933년,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하고, 이어 조선일보 신춘문예 1등 당선, 조선중앙일보 가작 입선 등 신예작가로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친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모델로 쓴 것이었는데, 돌쇠네 집에 술을 팔러오던 여자가 며칠 머물다 도망친 이야기는 ‘산골 나그네’로, 딸만 여럿 낳아 데릴사위를 들여 부려먹는 박봉필이란 사람의 이야기는 ‘봄봄’으로 재탄생했다. 수줍으면서도 퉁명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는 <동백꽃> 속 점순이도 그가 알고 들은 실제 인물 중 하나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 <동백꽃> 중


김유정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현실을 외면하고 연애소설이나 썼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살펴보면 그의 소설에는 살기 위해 윤리 마저 버린 당시 농촌사회의 암울함이 그대로 깔려있다. ‘만무방’에선 제 논의 벼를 떳떳이 거두지 못해 몰래 훔쳐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소낙비’에선 도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에게 매음을 종용하는 남편의 등장이 바로 그 단편이다.

그나마 밝다고 꼽히는 ‘동백꽃’과 ‘봄봄’도, 지주의 횡포와 착취에도 저항할 수 없는 계층의 상황이 그대로 그려져 있는데…. 점순이의 키가 크면 사위로 맞겠노라며 소경도 주지 않고 주인공을 부려먹는 점순이 아버지의 모습은 사실 주인공과 점순이의 사랑이야기에 숨겨진 노동력 착취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래, 거진 사년 동안에도 안 자랐다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 “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 <봄봄> 중

너무나 짧았던 작가로서의 생애

다큐 문학 기행 : 영원한 청년 작가 4
그 만의 특유의 익살과 문체를 선보인 다양한 작품들
암울한 배경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소설은 웃음을 준다. 특유의 명랑함과 익살스런 문체 때문이다. 당시 사용했던 수많은 토속어, 갖가지 비유, 풍부한 어휘는 그의 작품을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했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김유정이 공식적인 작가로서 활동한 것은 불과 2년. 짧은 기간동안 서른 여편의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지만, 병마도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죽기 직전,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는 그가 질병과 가난에 얼마나 시달렸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큐 문학 기행 : 영원한 청년 작가 5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또 다시 탐정 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돈이 생기면 우선 닭 30마리를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 친구인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 중

치질, 늑막염, 소화불량, 각혈 등 여러 질병을 안고 살던 김유정은 결국 폐결핵 3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해인 1937년에도 펜을 놓지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 몹시 우울했던 그가 각종 보약에 기대며
누구보다 살고자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오직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김유정의 생애는 겨울처럼 추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봄과 가장 어울리는 작가로 꼽힌다.
그의 펜 끝에서 탄생한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아름답고 환한 봄을 닮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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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1-3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