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조선시대 꽃미남의 잔혹한 하루 ‘중금’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중금)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중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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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곁에서 경호원 역할을 하며, 왕의 행차를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던 ‘중금’.
이들은 변성기가 오기 전인 10대 초반에 선발되어 16세가 되면 정년을 해야 했을 만큼 가장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가장 빨리 퇴직했다.
왕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지만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아야 했던 이들이 바로 중금이었다.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중금)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중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을 경호한 조선의 10대 소년들

“뭐라고? 그게 사실이더냐? 감히 궁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당장 처형시켜라!”
“전하, 진정하시옵소서. 큰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하오나 곧바로 사형시키는 것은…”
“게다가 나를 모욕하지 않았느냐? 놈들이 뭐라고 했는지 자세히 말해 보아라!”
“그게… 위에서도 그런 짓을 하는데 뭐 어떠냐고 했다고 하옵니다.”


1504년, 연산군을 분노하게 만든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궁에서 일하던 10대 소년들이었다.

“모시는 신하는 달려 나오라!”

연산군이 가마를 타고 궁궐 밖으로 나오자 그 앞에선 한 소년이 소리를 외쳤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길을 비켜주었다.

“과거 시험에 급제한 자가 누구더냐?”
“김정하의 아들 김정연이옵니다.”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의 행차를 알리며 경호하는 역할을 했던 이들의 직업은 중금. 이들은 왕이 궁궐 밖에 행차하거나 과거시험장에서 왕에게 합격자의 이름을 알리는 일을 했다.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중금)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중금)

서로를 의지하며 위험한 관계를 이어간 장효순과 노형손

“왔는가? 이 추운 날 전하는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콜록콜록, 그보다 목이 다 쉬어 큰일이네.”
“아이고 저런, 좀 누워보게. 내가 따뜻한 것 좀 가져다 줄 테니.”
“그나저나 도승지 어른의 눈치가 심상치 않아. 우리 관계를 알아차렸으면 어쩌지?”
“위에서도 그런 짓을 한다던데, 우리라고 못 할 게 무엇인가?”

빈 헛간에서 은밀한 만남을 갖고 있는 두 소년의 이름은 장효순과 노형손. 열 다섯 살의 나이로 궁에서 지내던 둘은 서로 마음을 의지하며 위험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의심한 관리들에게 뒤를 밟혀 현장을 들키고 만다.

“여봐라! 저 놈들을 당장 끌어내라! 감히 궁궐에서 이렇게 추악한 짓을 벌이다니!”
“도승지 어르신,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들이 한 짓은 괘씸하나 그 죄를 물어 사형시킨다면 소문이 퍼져 민심에 해가 될 것이옵니다.”
“흐음. 또 이런 말이 내 귀에 들리면 관련자들을 모두 내칠 것이다. 저들은 법에 따라 처분하라!”

두 소년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몽둥이 100대를 맞고 가족들과 함께 춥고 외진 변방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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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와 희롱,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견뎌야 했던 중금들의 삶

“주상전하 납시오!”
“저 이가 새로 온 중금인데, 여인처럼 곱다고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목소리는 또 어떻고. 대화나 한번 나눠 봤으면.”


중금은 왕의 행차 시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하는 일을 해야 했기에 용모가 단정하고 목소리가 맑아야 했다. 때문에 중금은 변성기가 오기 전인 10대 초반에 선발되었으며, 16세가 되면 정년을 해야 했다. 정원은 40명으로 10명씩 4교대로 나눠 근무를 했는데, 화려한 자주색 관과 금색 고리를 착용하고 있어 늘 눈에 띄는 존재였다.

중금은 지원자들이 많이 몰리는 인기 직종이었다. 중금으로 선발되면 매년 1명씩 8품직으로 옮겨갔는데, 10대에 8품직 관료가 된다는 것은 평민에겐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8품직이 될 수는 없었고, 다른 관료에 비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무시를 받거나 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과 수모를 견뎌야 하는 것이 바로 중금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소.”

젊고 아름다운 시기에 궁에 들어와 가장 빨리 퇴직해야 했던 중금. 이들은 왕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지만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아야 했던 조선의 애달픈 직업인이었다.

조선의 꽃미남 경호원, 중금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금(中禁) 노형손(盧亨孫)이 중금 장효순(張孝順)의 나이 젊고 얼굴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여 서로 음란한 짓을 하며 ‘위에서도 이런 짓을 하지 않는가?’ 하였다고 고하는 자가 있었는데, 전교하기를 “어린 것들이 함께 자면서 서로 장난한 것이니, 그 말이 위에 관한 것도 아니요, 또한 원망한 것도 아닙니다. 신 등의 생각에는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한 것이니, 죽인다면 형벌을 잘못하는 것인가 합니다.” - 연산군 10년 갑자(1504)2월 12일(갑진)

단정하고 맑은 목소리로, 조선시대 왕의 길을 인도하고 경호하던 안내자 중금은 젊고 아름다운 소년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 고된 궁궐 생활을 시작해 가장 빨리 퇴직하는 공무원이었던 만큼 보이지 않는 차별과 수모를 견뎌야 했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대통령 경호원은 조선시대와 달리 나이나 외모, 신체 조건보다는 과학적 사고를 갖춘 스마트한 인물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또, 대통령 경호처 요원들에겐 특정직 7급 공무원 보수규정을 적용하고, 정년 또한 58세까지 보장되어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이 되었다. 차별이 사라진 대신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예민함과 민첩함으로 무장해야 하니 경호원의 직업적 고충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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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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