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 지바고>는 세월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는 명화처럼 여전히 걸작으로 남아있는 작품이다.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며 러시아에는 소비에트 연방이 들어선다. 그리고 70년이 지나서 소련은 다시 러시아가 된다.
볼셰비키 혁명과 두 번의 세계 대전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라는 여러 차례에 걸친 엄청난 격변 속에서 숱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굶주림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돈 속의 러시아 국민들이 매일 마주해야 했던 끔찍한 현실이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부터 현재 모스크바에서 성업 중인 고급 레스토랑을 따라가 보며 러시아의 식탁을 엿보기로 하자.
<닥터 지바고>의 초반부에는 혁명전야의 모스크바 시내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눈이 쌓인 추운 밤거리에 시민들이 몰려나와 시위를 벌인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다. 평화적 시위를 하는 이들에게 차르의 기병대는 가차없는 무력진압을 행한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다친다. 호화로운 실내장식으로 꾸며진 고급 레스토랑에서 춤과 미식을 즐기던 선남선녀들은 잠시 베란다로 나와서 바깥의 소동을 강 건너 불 보듯 무심히 보고는 다시 은은한 실내음악이 흐르는 따스한 실내로 들어간다. 이날 저녁 레스토랑의 손님들 가운데에는 여주인공 라라가 있다. 그녀는 나이는 어리지만 타고난 매력을 뿜어내는 이미 성숙한 여인의 자태가 돋보인다. 그의 데이트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의 연인 빅토르 카마로프스키다.
빨간 융단이 깔린 실내의 고급 테이블에서 웨이터가 주문을 받는데, 카마로프스키는 ‘가스꼰느풍 송아지 간(foie de veau Gascogne) 요리를 시킨다. 이 식당의 메뉴는 당연히 프랑스 요리다. 라라는 아예 불어로 햄(jambon) 요리를 시킨다. 제정 말기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하고 프랑스 문화에 젖어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 가지 여담으로, 간이라는 부위는 뭔가 야성적인 이미지를 내포한다. 핏덩어리와 같은 간은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데, 사자들이 집단사냥을 하면 간은 무리에서 제일 센 놈이 먹는다고 했던가. 영화 속 이 장면에서도 간 요리를 시킴으로써 카마로프스키의 냉혹하고 공격적인 모습을 복선으로 깐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때 밖으로 지나가는 데모행렬의 현수막에는 굶주린 시민들의 ‘빵을 달라’는 구호가 씌어있다.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과 대비된 서민들의 고난과 희생은 다가올 혁명의 예고편처럼 비쳐진다. 시간이 몇 년 흐른 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토냐와 결혼을 한 지바고는 종군의사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제대를 한다. 돌아와 보니 저택은 소비에트 위원회에 접수되어 공동주택으로 바뀌어 있었고, 자신의 가족은 집주인에서 쪽방을 얻어 사는 신세로 바뀌어 있었다. 돌아온 첫날 저녁 토냐가 차린 저녁을 마치자 장인이 힌트를 준다.
저녁이 맛있었다고 한 마디 부인에게 건네주라고. 그제서야 지바고는 돌아올 남편을 위해 샐러미 소시지 하나를 겨우 구해서 세 달을 아껴두었다는 사실, 벽시계를 주고서 커피를 구해왔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된다. 장인은 반만 남은 시가에 불을 붙이며 ‘모스크바에 남은 마지막 시가를 태운다’고 말한다. 고생을 유머로 희석하는 생활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바고가 전선에 가있는 동안 혁명과 전쟁으로 인해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던 모스크바 시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장면들이다.
부족한 물자로 인해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고 날카로워진 어느 날, 이복동생 예브그라프가 찾아온다. 그는 KGB의 전신 체카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보담당 군인이다. 의사이면서 시인인 형 유리 지바고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셈이다. 그는 형 지바고가 쓰는 시가 공산주의에 반하는 내용이라 소비에트 당국에서 노리고 있으니 모스크바를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가라고 한다. 그의 도움으로 우랄산맥에 있는 바리키노라는 곳으로 지바고의 가족은 이주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씨감자를 구해 감자농사를 짓는 지바고 일가는 평온을 찾고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된다. 각종 야채와 허브도 심고 해서 조금씩 식생활도 나아지기 시작한다.
인간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관념적으로는 이해해도 진정으로 실감하기는 힘들다. 나는 학창시절 이 영화를 보다가 수선화가 잔뜩 핀 들판을 배경으로 지바고가 열심히 농사를 짓는 모습, 감자를 수확하는 모습에서 농사가 참 중요한 거구나 느꼈던 기억이 난다. 한국영화에서도 농사짓는 모습을 많이 보았을 터인데, 왜 외국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러던 어느 날 옆 마을 유리아틴의 마을 도서관에 갔다가 6개월간 종군 간호사로 함께 근무했던 라라와 재회하게 된다. 둘은 전쟁터에서 함께 일하며 서로 연정을 느끼게 되었지만 지켜야 할 선을 지켰던 사이다. 그러나 넓고 넓은 러시아에서 하필이면 옆 마을에서 이렇게 다시 만난 건 운명이라 치부해도 할 말이 없는 법. 지바고는 이성으로 억제했던 감정이 터져나와 라라와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요새 말로 하자면 ‘두 집 살림’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본시 마음이 선량한 지바고는 부인 토냐가 둘째를 임신한 것을 알고는 괴로워한다. 부인 토냐와 라라 사이에서 번뇌를 하던 끝에 지바고는 라라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하러 간다. 펑펑 우는 라라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빨치산에 납치가 된다. 의사라는 직업이 요긴하다고 판단한 그들은 지바고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2년간 빨치산과 함께 하며 의료업무를 보던 지바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탈주한다. 돌아와 보니 식구들은 모스크바로 돌아갔다가 출국하여 파리에 가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것도 라라로부터. 유리아틴에 라라는 남아있었던 것이다. 라라가 외출한 사이 빈집에서 배고픔에 굶주린 그를 맞이하여 준 건 라라가 쪄놓은 감자였다.
나는 시베리아에 사는 러시아 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은 겨울을 잘 넘기는 것이 최대의 과제라고 했다. 혹한 속에서 버티기 위해 땅 속에 식용 부분이 숨겨져 있는 감자류나 비츠 같은 무 종류의 식재료가 많은 점도 기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곡류도 냉대나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는 귀리, 보리, 메밀 등을 많이 먹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지바고는 라라와 함께 자신이 살던 바리키노로 가서 지낸다. 그러나 행복도 잠깐, 카마로프스키가 찾아와 라라의 신변이 위험하다고 한다. 행방불명이 되었던 라라의 남편이 볼셰비키의 이름 아래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데, 그가 자살을 했으니 이제 위험이 그녀에게 닥칠 거라는 이야기였다. 처세에 능한 카마로프스키는 자신이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극동의 대사직을 맡아서 가게 되었다며 함께 가자고 권유한다. 그의 말이 거짓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지바고는 라라를 보낸다. 자신은 더러운 타협을 거부하고. 라라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 뱃속에 지바고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기에.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카마로프스키와 라라는 노보시비르스크, 이르쿠츠크, 울란우데, 치타, 하바로프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 갔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잘 풀어지면 우리가 서울이나 속초, 양양에서 기차로 모스크바를 갈 수 있는 행로의 역순이다. 나는 이쪽을 가본 적이 있는데,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된 뒤에 선량한 사람들은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무척 고생을 했고, 배급체제에서 자본주의로 급선회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쓰렸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사람들은 먹고 살만해도 빵을 참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앞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는 회고 형식으로 시작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몇 년 뒤인 50년대 전후에 KGB간부 예브그라프 지바고 중장이 조카, 그러니까 형님 유리 지바고와 라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찾으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의 회고 속에서 제일 힘든 시기에는 인육을 먹고 살아남은 사람도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대치하며 오랜 기간 도시가 봉쇄당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생했던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전쟁이 일어나면 후방의 노인, 여자, 아이들이 군인들보다도 더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도시 사람들도 누구나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노인들은 2차 대전 봉쇄 때 이야기부터 흉작이었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젊은 세대들은 소련이 붕괴되고 다시 러시아가 되었을 때 모든 시스템이 망가졌고, 유통이 마비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동안 영화 관계로 러시아를 여러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서쪽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쪽 사할린까지 여러 곳을 다녀보았다.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의 시베리아도 경험하였고, 따스한 봄날의 시베리아도 즐길 기회가 있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 여기고 있다. 나라가 넓으니 음식도 다양한데, 대체적으로 추위를 이기려고 높은 열량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 같다. 이제는 러시아의 국민음식이 된 것 같은 우리나라의 히트상품 ‘팔도 도시락’ 라면이 어딜 가나 인기인데, 여기에도 마요네즈를 듬뿍듬뿍 쳐서 먹곤 한다.
야채수프인데 붉은색의 무, 비츠를 넣어 끓여 붉은 빛을 띄는 ‘보르시’에도 사워 크림이 듬뿍 들어가곤 한다. 깍둑 썬 삶은 감자를 베이스로, 삶은 계란과 각종 야채를 넣은 샐러드인 ‘올리비에 샐러드’는 인기가 좋아서 미국 등 외국에서는 ‘러시안 샐러드’라 불리기도 하는데, 역시 마요네즈의 양이 다른 나라보다 넉넉한 게 특징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가지 소개를 하자면 ‘펠미니’라고 불리는 러시아 만두도 유명하고, 비프스트로가노프도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러시아 음식이다. 다양한 민족 구성으로 이루어진 나라라서 음식문화도 여러 곳의 영향을 받았는데, 샤슐리크는 시시케밥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맛있는 건 피로시키다. 양배추나 감자 또는 고기로 속을 넣은 일종의 파이인데, 오븐에 구운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기름에 튀기기도 한다. 그리고 숲이 많고 들이 넓어서 다양한 버섯요리가 지방마다 발달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여러 종류의 버섯을 맛볼 수가 있었다.
러시아 음식으로 빼놓을 수가 없는 건 죽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는 점이다. 카샤라고 해서 조, 메밀, 보리, 수수, 귀리, 쌀 등 각종 곡류로 죽을 만들어 아침으로 먹는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 ‘그레치카’라고 부르는 메밀죽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메밀을 가루로 내어 국수로 해먹는데, 러시아에서는 통메밀을 그대로 삶아 죽으로 만든다. 삼각뿔 모양의 메밀이 씹으면 입안에서 한 알 한 알 톡톡 터지는 재미가 있다. 워낙 땅이 넓다 보니 바다에서 먼 지역에서는 당연히 해산물이 귀하다. 목순이라 불리는 고기를 비롯해 강이나 호수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도 많이 먹는데 연어, 게 등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를 귀하게 여긴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시작하여 모스크바에서 성업 중인 고급 레스토랑 ‘카페 푸쉬킨’이라는 곳에 초대를 받아 간 이야기를 하며 러시아의 과거와 오늘을 비교하고자 마음 먹고 이 글을 시작하였다. 이 레스토랑은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의 이름을 빌려 격조를 높이려 한 데서부터 뛰어난 자본주의의 상혼이 엿보인다. 실내장식부터 각종 집기까지, 뉴욕이나 파리 어느 곳의 고급 레스토랑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물론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 옛날의 러시아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갈 때마다 모스크바에는 호화로운 식당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한번은 지인의 부인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는데, 그 규모와 내용에서 깜짝 놀랐다. 파티장의 입구에는 실내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었고, 안에는 재즈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쉬지 않고 음악이 연주될 수 있도록 밴드 두 팀이 교대로 연주를 했다. 샴페인을 수십 박스나 준비해 놓고, 그 귀하다는 캐비어도 엄청나게 마련해 놓았다. 나는 눈치보지 않고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신흥 부자들의 씀씀이와 지방도시 서민들의 삶을 보면서 역사는 돌고 도는구나 느낄 때가 많았다.
조금 전에 ‘카페 푸쉬킨’으로 마무리를 짓겠다고 했는데,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있어 덧붙인다. 얼마 전 ‘그랑 카페 닥터 지바고’라는 레스토랑이 생겼단다. 찾아보니 현재 아주 성업 중이라고 한다. 판매금지가 된 소설에서 시작하여 서방에서 만든 영화를 거친 뒤, 이제는 신흥 부자들의 입맛을 맞춰주는 식당으로 그 이름을 내어준 ‘닥터 지바고’에서 러시아의 오늘을 살짝 엿본다.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