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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금의 우연

커피가 이끈 세계의 역사

한 모금의 우연 : 카페와 혁명, 커피가 이끈 세계의 역사 한 모금의 우연 : 카페와 혁명, 커피가 이끈 세계의 역사

커피는 일찍이 아랍의 종교의식에 필요한 음료로 시작해, 긴 시간을 거쳐 유럽에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전쟁과 모험, 교역을 통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음료가 되었다. 17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시민활동의 중심지였고, 파리의 카페는 프랑스혁명의 진원지가 되었다. 세상에 어떤 음료가 이토록 시민사회의 역사를 바꿔버릴 만큼 절대적인 위력이 있었던가.

커피는 일찍이 아랍의 종교의식에 필요한 음료로 시작해, 긴 시간을 거쳐 유럽에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전쟁과 모험, 교역을 통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음료가 되었다. 17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시민활동의 중심지였고, 파리의 카페는 프랑스혁명의 진원지가 되었다. 세상에 어떤 음료가 이토록 시민사회의 역사를 바꿔버릴 만큼 절대적인 위력이 있었던가.

무수한 정보와
사람이 모이는 공간, 카페

한 모금의 우연 : 카페와 혁명, 커피가 이끈 세계의 역사
카페는 그야말로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다. 당시 유럽의 상인들은 최신 비즈니스 정보를 커피하우스에서 얻을 수 있었다. 상인들뿐만 아니라, 과학자와 정치가들에게도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였다. 지금에야 인터넷을 이용하여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카페가 정보의 발원지였던 것이다.

실제로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졌던 일들이 지금의 보험, 복권, 금융에 이르기까지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해상 뉴스를 접하고 화물 경매를 한다든지, 이러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요약하여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도 했다. 보험을 계약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가 되어 카페 공간을 임대하기도 하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이후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또, 회사 정보가 모이는 곳이었으므로, 주식시장으로서의 기능도 더불어 수행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커피하우스를 자신의 우편주소(사서함 같은)로 정해서 우편물을 배달시키기도 했다고 하니, 이 또한 혁명에 가까운 기능의 탄생이 아니었을까.

영국의 커피하우스와 파리의 카페,
비슷하지만 다른 공간

한 모금의 우연 : 카페와 혁명, 커피가 이끈 세계의 역사
영국에 커피하우스가 유행했을 당시의 사회 상황은 이러했다. 1649년 청교도 혁명으로 시민이 지지하는 의회파가 국왕파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영국은 시민사회의 여명기를 맞이한다. 귀족들이 궁정과 살롱을 사교장으로 이용했던 것처럼, 시민에게도 정치의견을 교환하거나 모여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교류의 장’이 필요했으니, 그 무대가 바로 커피하우스였던 것이다. 넘쳐나는 대화와 정보들은 시민을 각성시키고 동시에 교육과 문학, 철학적 탐구, 상업적 발전 등으로 이어졌으리라.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이성의 시대에 이를 가능케 했던 인터넷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런던과 마찬가지로 파리의 카페들도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그러나 런던에서는 정치 토론의 장소로서 제약을 받지 않았으나, 파리는 조금 달랐다. 정치 정보의 순환에 대해 엄격하게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었고,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대해 자유를 주장하고, 정부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바스티유 감옥에 가야만 했다. 사실, 어느 시대에나 규제와 단속이 있다면 이를 피해 교묘히 빠져나가는 곳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파리의 카페는 국가가 지정한 폐점 시간을 지키지 않았고, 여기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몰래’의 공포 속에서 술을 마셨을까, 커피를 마셨을까. 필연적으로 깨어있을 수 있는 음료를 택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카페,
정치와 변혁의 중심이 되다

한 모금의 우연 : 카페와 혁명, 커피가 이끈 세계의 역사
파리의 카페가 대유행했던 시기는 루이 15세의 궁정에 커피나무가 자라고, 왕의 연인을 위해 커피를 대접하기 위한 모든 공을 아끼지 않았을 무렵이다. 또한, 상류사회에 있어서 커피의 개념은 ‘카페 모임’이라고 하여 커피를 마시며 춤과 노래를 하고, 연극을 펼치는(‘피가로의 결혼’을 관람하는 등), 귀족적 문화를 형성했음을 의미한다.

반면, 서민들에게는 하루를 연명할 빵을 사는 데에도 수입의 절반이 필요했기에, 카페에 가고 싶어도 그럴 시간도 돈도 없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민들을 혁명으로 이끌어 낸 사람들은 바로, 남아도는 모든 시간을 카페에서 보내며 사상과 공공적 의논에 몰두했던 사람들 즉, 왕정에 불만이 있었던 지식인, 변호사, 배우, 문인들 등 급진 사회주의 세력들이었다.

1789년 7월 12일, 파리 로와이얄 회랑에 있는 카페 드 포와의 테라스에서 카뮤데물랭이 민중을 향해 연설을 했고, 이것이 프랑스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렇게 바스티유는 함락했지만 이후 카페는 각파의 비밀회의의 장소가 되었고, 카페를 중심으로 정치와 변혁의 움직임이 격해지게 되었다.

시민 혁명을 이끌어낸 공간에서
이제 문화의 중심으로

한 모금의 우연 : 카페와 혁명, 커피가 이끈 세계의 역사
시대가 바뀌어 오늘에 이르면서 교류하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카페는 인터넷이 사용 가능한 환경에서의 정보 개발과 교환이 변함 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무실을 대신하는 곳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또, 음식과 패션의 트렌드를 이끌기도 하고, 공연과 나눔을 통해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가 시민혁명을 이끌어냈다면,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넘쳐나는 정보의 산실로서, 경제적, 과학적인 혁명을 이끌어냈다. 물론 두 도시에만 커피하우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빈이나 이스탄불에도 각종 정보 교류와 사교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커피하우스가 엄연히 존재했고, 미국 역시 런던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커피하우스가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어찌 보면, 커피하우스와 그 곳에서 행해졌던 시민의 교류가 본체이고, 커피는 오히려 엑스트라였겠지만, 다른 음료가 아닌 커피가 선택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지성을 활성화시키는 에너지 음료,
커피를 예찬하다

한 모금의 우연 : 카페와 혁명, 커피가 이끈 세계의 역사
수다를 떠는 곳과 무언가를 도모하는 곳으로서의 역할은, 어쩌면 낮에는 깨어 있게 하고, 밤에는 잠들지 않는 힘을 사람들에게 스며들게 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와인이 감성을 극대화시켜 주는 힘이 있다면, 커피는 지성을 활성화시키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네트워킹과 비즈니스로, 혁명시대의 열정과 돌진의 진원지로서의 역할을 포함하여 아주 오랫동안 연관성을 지니게 된 것은 아닌지.

어찌 되었건, 그 역사의 현장에 커피가 없었다면, 아니 커피가 인류의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 것인가.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이며,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카페를 100년간이어가기위해》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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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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