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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식이 권력이 되었던 조선 시대.
책을 사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책을 판매하는 서점은 변변치 않았다.
이에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사고파는 자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책쾌’였다.
이들은 조선 지식인들의 학문적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영조의 ‘명기집략’ 단속과 함께 급격히 위축된 책쾌들
“이 책을 모두 불태우도록 하라. 이 책을 들여온 자, 소지한 자, 판매한 자 모두 역적으로 여겨 엄히 처벌할 것이다.”
1771년 영조는 ‘명기집략(明紀輯略)’이라는 책을 금지시켰다. 태조 이성계를 이인임의 후손이라고 하는 등, 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조정관리들은 명기집략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 책이 왜 아직도 시중에 돌고 있는 것인가?”
“책쾌라는 자들 때문입니다. 이들이 책을 청나라에서 들여와 팔고 있으니, 우선 이들을 잡아 들여야 하옵니다.”
책쾌들은 조선 지식인들의 학문적 성장에 이들이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지만, 영조의 명에 의해 <명기집략>의 유통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잡아 들이자 이들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기도 하였다.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언변, 조선을 대표하는 책쾌 ‘조신선’
이른 아침, 하얀 베옷을 입고 붉은 수염을 기른 사내가 한 양반집을 방문했다.
"어서 오게. 일전에 얘기했던 책은 구해왔는가?"
"청나라 사신을 통해 간신히 얻었습니다. 조선에서 몇 안 되는 희귀본이니 300전(당시 쌀 20가마 정도의 가격)은 주셔야 합니다."
"어허, 너무 비싸지 않소?"
"그럼, 나리가 갖고 있는 책을 주시면 200전에 드리지요."
"그리 하도록 하겠네."
비범한 용모와 탁월한 말솜씨, 그리고 해박한 지식. 사람들은 그를 책의 신선 ‘조신선’이라 불렀다. 그는 모르는 책이 없었으며, 그 책을 누가 갖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또한, 책의 내용과 사람들의 취향을 꿰뚫고 있어 그에 맞는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같은 날 저녁, 조신선은 은밀히 다른 양반집을 찾았다.
"겉은 다른 제목을 붙여 놓았으니, 잘 살펴보시지요."
"역시 조신선이요. 책을 더 구해 줄 수 있겠소?"
"단속이 심해 당분간은 몸을 숨기려고 합니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오도록 하지요."
조신선은 몇 해 동안이나 몸을 숨긴 덕분에 다행히 목숨을 부지했다. 이후 한양으로 돌아와 또다시 책을 사고팔며 조선을 대표하는 책쾌로 그 이름을 남겼다.
시대의 지식인이자 지식중개상이었던 책쾌들의 삶
책쾌에서 ‘쾌’란 팔고 사는 사람 사이에 흥정을 붙이는 거간꾼을 의미한다. 하지만 책쾌는 단순히 책을 팔고 사는 중개인이 아니었다. 책에 대한 수준 높은 지식을 갖고 있던 ‘지식인’이자,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지식을 제공했던 '지식중개상'이었다.
“천하에 내가 모르는 책이 없으니, 세상의 모든 책이 내 것인 셈이오. 나라님께서 아무리 책을 불태워도 책쾌가 있는 한 책은 영원할 것입니다.”
책에 대한 애정으로 조선 팔도를 누비며 활동했던 책쾌. 이들의 삶에서 직업에 대한 사명의식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걸어 다니는 서점, 책쾌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조신선이라는 자는 책을 파는 아쾌로 붉은 수염에 우스갯소리를 잘하였는데, 눈에는 번쩍번쩍 신광이 있었다. 모든 구류·백가의 서책에 대해 문목과 의례를 모르는 것이 없어, 술술 이야기하는 품이 마치 박아한 군자와 같았다.” - 정약용 <조선선전> 중에서
책에 대한 수준 높은 지식을 가지고, 오직 책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조선 팔도를 누비며 지식중개상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책쾌들은 직업적 사명의식은 물론, 조선을 대표하는 지식인 그룹으로서의 역할 또한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을 통해 무수한 지식과 정보를 쉽게 습득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지식이 곧 권력이 되었던 조선시대에 책쾌의 존재마저 없었다면, 시대의 진보와 지식인들의 각성은 훨씬 더 더디게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