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전화 한 통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2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2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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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를 바꾼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기
벗어놓았던 관복, 관모, 관대를 착장하고 ‘이것’을 향해 큰 절을 네 번 한 뒤 무릎을 꿇고 엎드려 받았습니다.
1896년 덕수궁에 최초로 설치 ‘덕률풍’, ‘다리퐁’, ‘전어기’ 등으로 불리운 이것의 정체는 바로
전. 화. 기
1896년 10월 2일 최초의 전화통화로 역사를 바꾼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2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살인자가 된 김창수
일본인이 조선인처럼 변장하는 것은
국모시해공법으로 도피중
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선인으로 변장했지만 일본인이 틀림없다. 일본인이 조선인처럼 변장하는 것은 국모시해공범으로 도피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

명성왕후 시해 이듬해인 1896년 어느 날, 황해도 치하포 여관에서 변장한 일본인을 발견한 김창수는 그를 때려 죽입니다.

그러나 3개월만에 체포된 그의 태도는 너무도 당당했다. 오히려 당시 재판을 맡은 감리사 이재정에게 소리치며 물었습니다.
“본인은 시골의 일개 천민이지만 백성의 의리로 왜구 한 명을 죽였소. 그러나 나는 아직 우리 동포가 왜왕을 죽여 복수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소
지금 당신들은 국모상이라고 흰 갓을 쓰고 있는데 나랏님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흰 갓도 쓰지 않는다는 구절도 못 읽었소?”

일본영사관은 심문이 끝난 이틀 후 김창수의 참수를 요구하였고 조선법부는 국왕의 재가가 필요한 사건이라고 판단 이를 고종에게 알립니다.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2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고종의 전화 통화로
목숨을 건지다
고종은 전화 한 통으로
김창수의 사형 집행 취소 명령
을 내렸습니다.
1896년 10월 1일 사형집행을 하루 앞둔 마지막 밤, 고종은 즉시 어전회의를 열고 청년의 사형을 정지하기로 결정, 직접 인천감리 이재정에게 전화를 걸어 사형을
집행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이 역사적인 전화 한 통화가 우리나라 역사를 함께 바꾼 것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사형을 면했던 김창수. 그러나 형이 정지된 것 뿐, 출소조치가 내려지진 아니었습니다.

‘고종께서도 나를 인정하고 계시고 인천사람 중 내가 옥중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왜구들만이 나를 죽이려 하는데 내가 그놈들을
위해 죽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2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탈옥수가 된 방랑자 김구
(그의 세번째 이름 金龜)
3년간 방랑의 길을 걷다이름을 '김구'로 바꿔
근대적 애국계몽운동가로서
전화기
를 맞이 하였습니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김구는 상동교회에 파견돼 수천명의 청년 교인들과 구국을 위한 금식기도회을 가졌다 그리고 기도회를 마치자마자 그는 도끼를 메고 궁궐로 나아가 ‘조약반대’ 상소를 올립니다.

‘우리 인민은 원수의 노예가 되어 살 것인가? 의롭게 죽을 것인가?’

하지만 당시 백성들은 너무나 배고팠고 배운 것이 없었기에 그들의 애국사상은 얇기만 하였다 그렇게 을사늑약을 계기로 1906년부터 김구는 근대적 애국계몽운동가로서 전환기를 맞이 합니다.

1909년 전국 강습소 순회에 나서서 애국심 고취에 열성을 다하는 한편 재령 보강학교의 교장이 된 김구는 그때 비밀단체 ‘신민회’의 회원으로 구국운동에도 가담하였습니다.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2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또다시 감옥에 투옥되다
그러던 어느 날,김구는 또다시 역사적인 사건에
휘말려 해주감옥에 투옥
되었습니다.
백범이 애국계몽운동을 하고 있던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무력투쟁에 참가한 안중근 의사 그는 동지 11명과 손가락을 끊어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맹세하는 비밀결사를 결성했고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이듬 해 3월 사형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일제경찰은 김구를 긴급 투옥 시켰던 걸까?

직접 전화를 걸어 김구의 사형집행을 정지시켰던 고종, 그리고 그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안씨 집안, 이 작고 특별한 인연들이 위대한 리더 김구를 탄생시키게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한 통의 전화와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독립에 대한 한 청년의 강한 집념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어코 바꾸고 말았습니다. [참고도서_ 쉽게 읽는 백범일지,돌베게 ]
글을 맺으며
“어떤 중요한 일을 할때에는 그것이 현실이냐 비현실이냐 를 따지기 보다
먼저 그 일이 바른 길이냐 어긋난 길이냐를 따져서 결정하라”
- 김구 백범일지 中 -

젊은 백범선생은 “백성의 의리”라는 강한 신념을 품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런 그의 행동들이 결국 고종황제, 안중근의사 등등 작고 특별한 인연을 맺게 하는 구실점이 되었으며 훗날 민족의 리더로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꿔 놓았습니다.

살아가기 바쁘다, 쉽지 않다 혹 어쩔수 없다라는 여러 이유로 각자의 신념을 잠시 덮어둔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끔은 잠시 멈춰서서 일의 바름을 명확히 판단할수 있는 나의 신념에 대해서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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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2-23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