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과 여행업계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출이 95%가 줄기도 했다니 짐작이 간다.
여행 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었으니 숙박업, 요식업의 타격도 클 것이다.
너나없이 다 어려운 세월을 참고 견디는 상황이니 나서서 푸념을 할 분위기도 아니다.
이럴 때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재미를 보는 곳도 있다. 배달업계가 그 중 하나다.
사회적 거리두기네, 비대면이네 하여 모임이 줄어드니 집에서 시켜먹는 일이 늘었다.
외출을 자제하고, 슈퍼에 장을 보러가는 것도 꺼림칙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배송업체는 호황이라고 한다.
누군가 참으로 기발하게 착안을 한 네이밍이 있으니 음식 배달 서비스 앱 ‘배달의 민족’이 그것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카피를 들고 광고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재밌는 언어 유희를 이용한 광고 정도라고 여겼을 텐데, 지금은 그 가치가 수조 원대를 넘어선 브랜드가 되었다. 영화 <극한직업>은 형사들이 마약범을 검거하기 위한 수사를 하려고 치킨집을 차린다는 이야기다. 류승룡, 이하늬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열연과 잘 짜여진 구성, 맛깔나는 대사 등이 어울려 코미디 영화로 앞으로 깨지기 힘든 기록인 1,600만 관객 동원이라는 쾌거를 달성하였다. 치킨집 이야기니 당연히 배달 장면도 나온다. 영화를 보면 참 많은 가정과 직장에서 치킨을 시켜먹는데, 보는 관객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건 그만큼 치킨 배달 주문이라는 행위가 실생활에 파고 들었다는 얘기다. 류승룡은 본인 특유의 진지한 듯한 표정으로 코믹한 연기를 하는게 워낙 출중해서인지 ‘배달의 민족’ 광고 모델을 꽤 오래 하였다.
프라이드 치킨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시켜먹는 메뉴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프라이드 치킨 반에 양념치킨 반 그리고 무절임 많이라는 주문을 줄인 ‘반반 무많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특히 월드컵 등 중요한 스포츠 경기라도 있는 날엔 치킨 배달 주문이 폭증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해 미식축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수퍼볼 경기 때 미국식 닭날개 요리인 ‘버펄로 윙’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소비되듯이 한국에서도 중요한 스포츠 경기는 치킨에 맥주를 곁들여 즐기며 관전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대선이나 총선 등 선거 개표 방송이 있는 날도 주문이 많이 는다고 한다. 자신이 참여하여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도 스포츠 감각으로 즐기는 세대가 생겨난 것이다.
피자 역시 배달 음식으로 늘 인기 순위 상위에 머물고 있는 아이템이다. 가정에서 야식이나 별식으로 시켜먹기 좋은 메뉴이기도 하고 또 젊은 세대는 식사로도 먹는 음식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 가족은 부업으로 집에서 피자박스를 접는다. 주인공 가족의 어려운 형편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한국에 들어온 대형 피자 브랜드는 대부분 미국에서 들어온, 바닥이 두툼한 미국식 피자인데 미국에서도 피자는 주문해 먹는 경우가 많아 배달 음식으로는 단연 인기 순위 1위다. 지금은 가족 영화의 고전이 되어 명절 때면 빠지지 않고 방영되는 <나홀로 집에>에서도 다섯살 꼬마가 집에서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 장면이 나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2>에서는 ‘피자 플라넷’이라는 가공의 피자 브랜드가 나온다. 그런데 이게 가공의 브랜드가 아니라 현실의 브랜드가 되었다. 디즈니에서 자사가 운영하는 세계 각지의 디즈니랜드 유원지에 같은 이름으로 피자 가게를 연 것이다. 얼마 전 개봉하여 인기를 모은 <데드풀>에서는 주인공 라이언 레이놀즈가 나쁜 사람을 잡으러 가서 그 집에서 피자를 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피자 배달원이 알고 있는 고객 정보를 이용해 맘에 드는 아가씨를 스토킹하는 질이 안좋은 녀석인데, 주인공이 그를 혼내주는 대목이다. 주인공 웨이드(라이언 레이놀즈)는 ‘내가 시킨 것 맞지? 파인애플하고 올리브. 음, 단짠 단짠 (sweet and salty)’하며 천연덕스럽게 피자를 맛보고는 그를 혼내준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두가지 점에서 웃고 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우선 성실하게 배달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하지만, 어쩌다 간혹 있는 썩은 사과처럼 고객 정보를 안다는 이유로 따로 연락을 한다거나 만남을 신청한다거나 하는 못된 이들은 철저하게 처벌받고 응징받아야 한다는 대목이다. 데드풀은 관객들이 속시원하도록 영화 속에서 그를 혼내준다. 또 하나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가 나오는 장면이다. 달콤한 파인애플이 토핑으로 얹혀진 피자는 하와이가 그 발상지라고 하는데, 진위여부를 떠나 많이 보급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제법 퍼졌다. 이에 대해 피자에 달콤한 과일인 파인애플을 얹는 것은 피자의 기본 원리에 어긋난 것이라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한편으로는 맛있으면 되지 무슨 원칙이 있는거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탕수육의 ‘찍먹 부먹’ 논쟁처럼 SNS를 한 달군 이 논쟁은 지금은 서로 개성을 존중하는 선에서 가라앉은 것 같다. <데드풀> 영화에서 기성 체제를 무시하는 안티히어로인 주인공은 단 맛과 짠 맛이 번갈아 교차되어 맛있다고 파인애플피자의 손을 들어준다.
미국에서 피자는 배달을 얘기할 때 바로 연상될 만큼 인기 품목인데, 피자헛, 도미노 등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일찌감치 배달망을 구축해 놓은 덕분이다. 그 다음이 대도시에서 인기가 많은 중국음식이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각종 배달앱들이 약진하여 배달 메뉴는 점차 다양화 되었다. 도어대쉬 (Doordash), 우버이츠 (Uber Eats), 심리스 (Seamless), 그럽헙 (Grubhub) 등 인기 앱들이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며 계속 성장하면서, 피자 일변도에서 중국음식, 각종 스시 롤 등 일본계 음식, 타이음식, 인도음식 등 아시아 음식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동의 1위인 치킨도 미국에서 배달 문화가 확산되면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중동음식인 슈와르마, 피타 샌드위치, 스파게티 등 다양해지는 배달 음식은 코로나 사태에서 오히려 더 성장하고 있는게 모든 나라들의 특징인 것 같다.
한국영화에서는 숱하게 음식 배달 장면이 나온다. 이십여 년 전에는 뭐니뭐니 해도 중국음식 배달이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중국음식 배달원은 수십 년 전통을 가지고 있기에 영화 속에서 경찰서, 사채업자 사무소, 검찰청 등에 시도 때도 없이 배달을 했다. 2003년도 영화 <위대한 유산>은 임창정, 김선아가 주연을 한 코미디 영화로, 코믹연기도 잘하는 공형진이 중국음식 배달원으로 등장한다. 김수미와 김선아 모녀가 운영하는 만화 대여점에 배달을 오다가 같은 인기 무협소설을 빌려 읽는 임창정과 반납이 늦네 어쩌네 실갱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 워낙 배달원 연기를 잘해서 그랬는지, 그는 3년 뒤에 개봉한 <맨발의 기봉이>에도 특별 출연하여 산꼭대기 정상까지 짜장면을 배달하는 사명감 투철한 배달원 역할을 열연한다. 중국음식 배달과 관련해 인상 깊은 코믹 연기는 장항준 감독의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김수로를 빼놓을 수 없다. 불량배들로부터 억울하게 맞은 그는 단체로 복수를 하기 위해 배달원들을 불러 모은다. 동업자 정신으로 단결을 하는 배달원들 앞에서 그는 ‘왜 잠자는 철가방을 건드리냐? 철가방이 너희들 밥이냐?’라고 사자후를 토한다. 그 이전에 주인공 이성재는 오밤중에 음식을 주문하고는 돈은 내일 받으러 오라고 해서 배달원을 열받게 한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지만 배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잘 그려낸 장면이기도 하다.
이게 따지고 보면 원조 논란이 될 수도 있겠는데, 김의석 감독의 1999년도 영화 <북경반점>을 잠깐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배달원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 ‘여러분, 서비스의 기본 정신은 배달정신입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바로 배달민족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지금 수조 원대의 가치를 평가받는 배달앱 ‘배달의 민족’이 여기서 힌트를 얻었는지 따로 생각해 낸 것인지는 알 바가 없다. 우리가 반만 년 역사의 배달의 민족이라는 말은 백의민족,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나 마찬가지로 일종의 퍼블릭 도메인 같은 말이므로 저작권은 주장하지 못하더라도 일종의 원조를 자부할 수는 있을 것도 같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영화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그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 말고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등 국내에도 알려진 작품이 많은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는 음식도 많이 나오고 만드는 장면, 먹는 장면도 많이 나온다. 그중 <걸어도 걸어도>에서 가족들이 다같이 모여 스시를 시켜먹는데, 사위가 먼저 하나를 집어먹으며 ‘아, 맛있네요. 스시집의 계란말이는 진짜로 맛있다니까요’라고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한번 다룬 적이 있는데, 이게 전형적인 일본식 매너이다. 일본 가정에서는 여럿이 먹도록 스시가 커다란 그릇에 담겨 나오면 싼 것부터 먹으라고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는다. 계란말이, 오징어, 문어가 거기에 속한다. 참치뱃살, 성게알, 연어알 등 비싼 건 손 위의 사람이나 손님이 먹도록 양보를 하는게 미덕이라고 배운다. 이미 진작에 핵가족이 되었고 세태도 변해서 여전히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 전통은 어느 정도 남아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 스시 용기라는게 ‘오케(桶)’라고 불리는 나무칠기인데, 배달이 흔해지고 스시가 더 이상 고급 음식이 아니게 된 지금도 값싼 재질의 용기라 할지라도 검정색에 붉은 색을 칠한 칠기 모양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배달을 ‘데마에(出前)‘라고 하는데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라 배달 용구에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충격을 흡수하는 ‘쇼바(충격 흡수기)’를 장착하는 등 배달 문화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역시 배달은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관혼상제 같은 일이 겹쳐 취사가 마땅찮을 때 시켜먹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장어덮밥이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장어덮밥을 시켜먹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 계절이 여름인데 장어덮밥은 여름에 먹는 일본의 보양식에 속한다. 요즈음 염가 초밥집도 생기고 수입 장어로 싸게 내는 대중식당도 있어서 먹는게 수월해지기는 하였지만, 장어덮밥도 원래는 스시와 마찬가지로 가격이 비싸서 집안에 행사가 있거나 할 때 시켜먹는 음식이지 일상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이미지가 있다. 영화에서는 아들의 기일에 장어덮밥을 시켜먹는 부모의 마음이 화면에 잘 묻어난다. 장어덮밥 역시 칠기로 만든 고급 용기에 담아서 배달을 한다.
이러한 일본의 배달 문화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으니,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배달앱이 널리 퍼진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제일 규모가 큰 배달앱은 ‘데마에칸’으로 한국의 네이버가 지배주주이고 그 뒤를 ‘라쿠텐’, ‘우버이츠’등이 따라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배달 음식 시장이 불과 몇개월 만에 200퍼센트 이상 성장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때 일본시장에 진출하였다가 실패한 ‘배달의 민족’이 올 가을에 다시 진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각종 까다로운 규제로 악명 높은 일본의 운송사업 관련 법규도 현실을 고려하여 택시가 음식배달을 하는 것을 허가하는 등 변화가 생겼다. ‘푸드네코’라는 브랜드로 다시 재상륙하는 ‘배달의 민족’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중국영화에도 음식 배달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생활에 밀접하다는 이야기이도 하다. 지금은 고전이 된 주성치의 <희극지왕>에서 주성치는 경찰의 잠입 수사에 협조하는 무명 배우로, 음식 배달원으로 변장하여 범죄 현장에 들어간다. 음식 배달원으로 가장하기 위하여 메뉴를 딸딸 외우는 등 우스운 장면이 많이 나오는 유쾌한 영화다. 중국에서 배달 문화는 급속히 발달하였는데 아마도 처음엔 대도시에서 임금이 싼 인력을 확보하기가 수월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배달앱도 잘 되어있고 별의별게 다 배달되는 상황에 감탄하곤 한다. 그런데 금년 3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표지에 중국의 배달원 사진을 실었다. 중국의 배달원이 자신의 건강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무릅쓰고 여기저기 배달을 다녀, 팬데믹 상황하에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돌아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있다는 기사가 함께 실렸다. 기사에는 배달원이 매일 코로나 검사를 하고 매일 수십 분씩 자신의 오토바이를 소독한 뒤에 업무에 복귀한다는 내용, 음식 배달 외에 쇼핑 대행도 한다는 소식도 소개 되었다.
미국에서는 피자, 일본에서는 스시와 장어덮밥, 한국에서는 중국음식에서 시작된 배달 문화가 이제 더욱 다양해지고 그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핵가족,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정 내 취사가 줄어들고 인터넷, 스마트폰의 발달로 선택의 폭이 넓어져 그렇지 않아도 성장일로에 있었는데, 잘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이 코로나사태가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남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집에서 편하게 받아먹는 문화가 2020년 팬데믹을 거친 뒤 어떻게 진화하고, 또 우리의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대단히 궁금하다.
* 본 콘텐츠에서 내용 설명을 위해 삽입한 이미지는 해당 영화와 드라마 장면, 잡지를 활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