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히드로 공항에서 도심의 피카디리 서커스까지 언더그라운드(지하철)로 40분쯤이 걸렸다. 역을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니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가는 빗속을 걸어 다녔다. 다섯 시가 안 되었는데 어둠도 같이 내리고 있었다. 비보다 북위 52도의 이른 어둠이 더 낯설었고 대수로웠다. 버스를 타고 템스강을 건너 남쪽의 숙소로 왔다. 2019년 2월 28일이었다. 다가오는 봄을 포함해서 세 계절을 나야 하는 런던이었다.
낡음에도 품격이 있다
영국을 영어로 잉글랜드라고 배웠다. 다들 아시겠지만 잉글랜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명칭이 아니다. 영국을 이르는 말로 Great Britain(G.B.)과 United Kingdom(U.K.)을 쓴다. G.B.는 북아일랜드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공식 용어, 편지 겉봉에 쓰는 말은 U.K.이다. 그러니까 이 나라의 국가명,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는 이들의 역사가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내포한다.
대륙에 비하면 영국은 작은 섬나라다. 앵글로색슨족이 정착하고 자신들의 생존 문화를 가꾸기 시작한 것은 A.D. 400년 이후다. 고대 문명국의 웅장함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중세 열강의 변방을 견디어야 했다. 그러니까 영국의 역사는 침략과 혼돈을 견디는 일들의 연대기다. 기원전에 켈트족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았지만 A.D. 43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400년 후쯤, 로마가 쇠퇴하자 곧 앵글족과 색슨족이 들어와 켈트족을 변방으로 밀어내고 터줏대감이 된다. 이후에도 드라마 <라스트 킹덤>에서 보았듯이 데인족의 잦은 침략을 견디어야 했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이겨 영국의 왕이 된 윌리엄1세도 노르만족이다. 16세기의 악동 헨리8세가 로마에 등을 돌리기 전까지 종교적으로 로마 교회에 종속되어 수시로 간섭을 받았다.
영국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제국주의의 본산이었지만, 대영박물관에서 보듯이 약탈의 최고봉이었지만, 왕권 보전과 왕국 통일의 과정에서 보여준 앵글로색슨족의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내가 런던을 걸으며 읽은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지키고 세워나가기 위해 그들이 적응해야만 했던 것, 견딤의 표정이었다. 견디면서 낡아갔지만 낡아가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다. 대륙의 변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고독했는지를 그들의 낡음에서 보았다. 절제하고 견디면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품격이 낡음 속에 남아있었다. 성들은 견고하고 궁전은 실용적이며 도시는 명성에 비해 검소하다. 런던은 파리나 로마에 비해 결코 화려한 곳이 아니다.
낡음으로 이어지는 절제의 품격에는 필연적으로 외로움이 따른다. 이들의 몸에 새겨 넣은 외로움의 역사는 짧지 않다. 사람들은 외로움에 젖어 살았으므로 그것이 외로움인지 모른다. 모두가 외롭다는 것을 알아서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외로움부(The Department of Loneliness)라는 행정부서가 있고 외로움부 장관(The Minister of Loneliness)이 있는 영국은, 오래 외로웠으므로 외롭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 런던은, 진정으로 외로움의 제국이다. 내 생각이다.
박물관보다 공원이 좋다
런던의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은 특별 전시 외에는 대체로 입장료가 없다. 런던 마니아들은 런던에 가면 다양한 뮤지엄과 갤러리에 가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대영박물관과 국립 미술관이지만 이외에도 크고 작은 전시관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아직도 대영박물관에는 가지를 못 했다. 런던대학 바로 옆집이어서 수차례 지나다녔는데도 말이다(나는 지금 런던대학의 방문교수이다).
그곳은 수년 전에 한 번 훑어본 경험이 있지만 굳이 당기지 않았다. 그러니 못 간 것이 아니라 안 간 것이다. 트라팔가 광장을 마당으로 삼고 있는 국립 미술관도 사실은 광장 계단에 앉아 볕을 쬐는 것이,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좋다. 이 무지한 말과 몰상식한 태도를 용서하시길.
박물관 대신 공원을 다녔다. 주로 언더그라운드보다 버스를 탔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걷는 날만 놓고 보면 하루에 평균 15킬로의 거리. 서울로 치자면,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반포대교를 건너 이태원으로, 소월길을 타고 남산 옆 자락을 넘어 명동으로, 소공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다시 북촌까지 걷는 셈이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 당신이라면 안 그러면 된다. 어쨌든, 런던은 공원의 도시다.
공원에 있어서 옹졸하기로는 서울을 따라갈 도시가 없다. 런던의 대표적인 공원은 하이드 파크와 리젠트 파크다. 둘 중에서는 리젠트를 추천한다. 리젠트 공원은 잔디밭과 숲과 정원, 그리고 호수와 수로가 섞여 있어서 취향에 따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 집으로 갈 때 공원 앞 베이커 스트리트의 221B, 셜록 홈즈의 집을 구경하는 것도 덤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처럼 키 큰 홈즈 동상이 언더그라운드 역 앞에 서 있다. 드라마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궁금해지면 그 장소에 바로 가볼 수 있다는 것이 방문자의 복이다.
버킹엄 궁전 앞의 그린 공원이나, 세인트제임스 공원도 물론 유명하다. 그린 공원은 넓다. 마가렛이 천지인 잔디밭에 누워 하늘 보기에 좋다. 세인트 제임스 공원은 길쭉한 연못을 따라 아담하다. 많이 늙은 플라타너스 아래나 한 나무 가득 꽃 핀 마로니에 아래에 앉아 있기가 좋다. 그러나 이런 곳은 늘 관광객으로 북적이므로 주말보다는 평일이 좋다. 평일도 북적인다.
그래서 정말 가볼 만한 곳은 동네 공원이다. 동네마다 공원이 있다. 동네 공원으로 광화문광장만 한 것도 런던에는 많다. 주말에는 공원 필드에서 크리켓을 하고 그 옆 잔디밭에는 자리 깔고 누운 사람들이 있고, 그 옆에서는 바비큐를 굽고, 공원 가운데에는 호수가 있어서 물가 벤치는 노부부나 유모차를 끌고 온 이들에게 좋다. 밥 먹고 걸어가서 앉아 있다가 온다. 호수에 앉은 새들을 보다가, 구름을 보다가, 지나가는 노부부를 보다가, 볕 속에서 눈 감고 바람을 느끼다가 온다. 그다음 날에는 조금 더 먼 옆 동네 공원에 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나의 런던 탐험은 좀 더 대범해진 것이다. 목적지를 두고 멀리까지 걸어가서 조용한 동네의 풍광 좋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온다. 결국, 마을과 마을을 지나쳐서 갈 데까지 가보다가 지쳐서 버스 타고 돌아오는 식에 이른다. 목적지와 동서남북을 알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막다른 길이란 거의 없어서 자주 코너를 돌더라도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게 된다. 오래된 가로수 거리에서 고적한 집들의 정원을 보기도 하고 아담한 도로의 큰 나무 아래 작은 카페를 만나기도 한다. 주민들이 직장에 나간 한낮의 동네 풍경은 나처럼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에게 평온함을 준다. 그러면 이쯤에서 당신은 그러리라.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지 아느냐고? 그 풍경은 겉만 보는 산책자의 감상에 불과하다고.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겉은 그러했다. 동네는 산책자에게 따뜻한 표정을, 고통을 감추려는 절제의 품격을 보여주려 애썼다. 생각해보자. 서울은 겉모습도 그렇지 못한 거 아닌가? 드러난 표정만 봐도 기괴한 탐욕이, 지친 일상이, 손댈 수 없는 변칙이, 그 모든 것들이 발버둥 치는 형국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그 안에 있는 나도 피할 수 없는 서울. 아! 내가 박물관은 가지 않았다고 했지만 한 군데 찾아간 곳이 있다. 하이드파크 근방의 자연사 박물관이다. 4월이었다. 새를 보러 갔다. 나는 단지 지빠귀를 보러 갔을 뿐이다. 런던에 도착해서 잠 못 들 때, 삼월 내내 밤마다 밤새 우는 새가 있었다. 앞집 지붕이나 플라타너스 꼭대기에 앉아서 우는 그 새. 런던의 외로움을 위로해주는 새를 박물관에서 확인했다. 박물관은 그렇게 필요한 것이다. 박물관을 나왔을 때 저녁이었고 박물관 앞에서 비눗방울을 만들던 사내가 아이들이 사라진 그곳에서 가방을 싸며 제 흔적을 훔치고 있었다. 제가 만든 키만 한 비눗방울 속에서 터지지 않는 무지갯빛 꿈을 꾸기를 그의 뒷모습에 대고 빌었다.
편견을 버리면 런던이 보인다
런던은 이민자들의 도시이다. 거리를 걸으며 다들 제 나라말을 한다. 아프리칸 흑인과 캐리비언 흑인의 말을 구분하지 못하듯 오스만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의 말들도 마찬가지다. 울렁거리는 소리가 중국말인지는 안다. 스페인어와 러시아어, 불어와 이탈리아어도 유색인종의 말들과 함께 들렸다가 멀어진다. 억양이 강한 영국 영어조차 이민자들의 말처럼 들린다. 길거리는 만국이다.
내가 사는 페컴은 런던 중심가와 가까운 2존이다. 흑인이 많다. 이민자들의 마을, 유색인 동네인 듯하다. 도심에서도 그렇거니와 페컴에서는 거리를 걸을 때 흑인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건들거리며 지나가는 흑인, 약에 취한 듯 오래 쳐다보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흑인들을 지나치며 약간은 그들을 의식하기도 했던 것 같다. 3월은 그랬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은 아닌지 후회하듯이 4월이 지나갔다. 오랫동안 편견에 먹힌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우쳤고 앞으로도 편견은 부득이하게 생기겠지만 편견을 일부러 만들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걷다가 돌아오는 날에는 동네 시장통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게 된다. 지나칠수록 자꾸 돌아보는 가게가 있었다. 맵고 달고 불맛이 강한 냄새로 둘러싸인 치킨집. 나도 줄을 서서 주문한 날이 있었다. 저크 치킨이다. 자메이카 흑인들의 치킨 바비큐. 소스 바른 닭고기를 장작불을 입혀 구워낸 것이다. 레게머리에 손톱을 길게 치장한 딸이 주문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주방에 있고 아저씨는 뒷마당에서 닭을 구웠다. 주방에서 치킨을 갖고 나와 포장을 하는 아주머니의 눈빛이 따뜻했다. 그들의 피에 흐르는 어떤 것들, 태양의 눈부심과 그늘 속의 노곤함, 따짐 없이 운명대로 살아가는 여유와 흥을 생각했다.
흑인이 많이 살고 있으면 그들이 동네 상권을 장악할 만한데 가게의 주인들은 대체로 터키와 이란을 비롯한 중동인. 흑인들이 장악한 것은 다소 가난하지만 즐겁게 사는 삶이다. 그들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게으르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의 DNA를 그들이 뭐라 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오랫동안 물려받고 물려주는 삶의 DNA를 우리가 뭐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재에 진심으로 만족하는 듯한 그들의 표정과 대화는 열심히 일하고도 늘 불만스러워하는 우리에게는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규칙이 좀 없으면 어떤가! 질서를 좀 안 따르면 또 어떤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건들거려도 중얼거려도 체면 없이 낄낄거려도 즐거우면 그뿐 아니겠는가. 이와 맞물린 생각 하나, 런던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런던 사람들은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차가 오지 않으면 빨간불이어도 횡단보도를 건넌다. 기계의 질서보다 인간의 질서를 지키는 일은 인간적인 무질서다. 대부분의 횡단보도가 길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판단을 중시해서 삶의 효율성을 높인다. 물론, 차도 보행자도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런던은 그 전제를 소중하게 여긴다. 생각하면 기계의 규율보다 인간의 자율을 믿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외로운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일그러진 욕망과 음습한 절망이 찾아온다.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 우리의 삶을 우울하게 하는가를 생각하며 걷는 런던이었다. 나 혼자만이 외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외로운 사람이라고 수긍하면 외롭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게 된다. 외로움 속을 살면 외로움을 잊게 된다. 최소한 외로움과 손을 맞잡을 수 있다. 그런 런던은 외로움의 제국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