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말,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몇 장의 사진들이 SNS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얼굴 전체에 피딱지가 앉을 정도로 심하게 아파 보이는 아이들. 이 사건은 부모들의 아동학대 파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
아이 엄마들의 공통점은 일명 ‘안아키’로 불리는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 회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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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카페는 홍역이나 수두는 자연적으로 치유되며, 화상에는 온찜질을 하고, 배탈 설사엔 숯가루를 먹이면 된다는 등 의학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는 방법을 자연주의 치유법으로 권하고 있었고, 많은 엄마들은 공인된 전문 지식을 무시한 채 검증도 안 된 이 정보들을 믿고 따랐다.
더 심각 한 문제는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갖추지 못한 회원들이 엄마들의 상담 글에 답글을 달아 줬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붕괴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안아키 주장 |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입장 |
예방접종 하지 마라 |
- 예방 접종은 필수적 - 백신 부작용 우려해 접종 피하면 사회 전체 감염병 위험도 커져 |
호흡기질환엔 숯을 먹여라 |
- 안아키 쇼핑몰에서 파는 숯가루는 대부분 허가 받지 않은 성분 - 호흡기 질환 호전에 별다른 효과가 없고 많이 먹이면 소화불량 등 부작용 생길 수 있어 |
아토피는 긁어내라 |
- 지속적인 자극 가하면 증상 악화되고 후유증 생길 수 있어 - 피부가 건조하지 않게 보습에 신경 쓰는 것이 중요 |
열이 나도 해열제를 먹이지 말라 |
- 고열은 각종 합병증과 심하면 뇌 손상으로도 이어져 - 후유증 막기 위해서는 고열을 빠르게 내려줘야 |
미국의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어설픈 지식으로 무장한 유명인들의 목소리가 전문가들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질에 증기 쐬기, 옥 달걀을 삽입하는 것은 여성의 건강을 위해 추천합니다.” - 기네스 펠트로
“백신은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어서 위험합니다.” - 짐 캐리
“살균 처리를 하지 않은 새 우유가 맛만 좋은 게 아니라 더 건강하다.” - 대니얼 패터슨
“무지한 유명인이나 공인들이 백신이 위험하다는 잘못된 믿음과 정보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 그들의 말 때문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홍역이나 백일해처럼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의 위험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 <전문가와 강적들> p. 19 전문가의 몰락, 전문 지식의 죽음 현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넘쳐나는 정보속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포털 검색 몇 번이면 누구나 전문가로 변신한다. ‘나도 알만큼은 안다’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원칙과 객관적인 정보에 기초한 주장들은 더 이상 만나보기 힘들어졌다. 올바른 전문 지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전문 지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 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인터넷 접속은 한 주제에 깊이 파고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을 더 바보로 만들 수 있다. 정보 검색이라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를 배웠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전문가와 강적들> p. 218
오늘날 인터넷에 난무하는 콘텐츠들은 검증된 전문 지식보다 일반인들이 자의적 판단으로 만들어낸 가짜 지식과 개인 이익을 목적으로 제공한 정보가 대부분이다. 이런 정보는 보통 자신이 믿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하거나, 원하는 해답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확증편향 심리를 겨냥해 살아남게 되고, 검색을 통해 거듭 거론되는 정보는 진짜 지식처럼 둔갑해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과거 지성의 요람으로 여겨졌던 대학의 변화도 전문 지식의 붕괴 요인으로 꼽힌다. 많은 대학이 전문 지식을 구성하는 기본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보다 ‘훈련’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증표인 학위증 공장이 되면서 학생들 역시 대학 교육을 통해 전문 지식을 갖춘 존재로 성장하고 비판적 사고를 하는 지성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보다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의 질보다는 속도를 더 중시하는 21세기 신 저널리즘의 폐해 또한 전문 지식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다.
“미디어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중략) 이 경쟁은 궁극적으로 언론들로 하여금 더 단순하고 빠르고 오락적 재미가 더 있기를 원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욕구를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 <전문가와 강적들> p. 252
진짜와 가짜 지식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도 너만큼은 알아’라는 생각에 빠져 절름발이 지식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내가 믿고 싶은 지식만을 찾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의 지식 습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