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쉬인사이드

중국 요리의 진수를 만나는 즐거움

디쉬인사이드 : 중국 요리의 진수를 만나는 즐거움 in 영화 음식남녀
디쉬인사이드 : 중국 요리의 진수를 만나는 즐거움 in 영화 음식남녀

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먹고 마시고 남녀간에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다.

- 중국 고전 ‘예기(禮記)’ 중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값싸고 대중적인 음식으로 변질된 중국 요리

자신들이 더 오래 되었다고 서로 주장하기 바쁜 중국인의 역사와 유태인의 역사 중 정말 어느 쪽이 더 오래 되었을까? 당연히 중국인 역사가 더 길다. 왜? 중국인이 더 나중에 생겼다면, 그동안 유태인들은 먹고 살 게 없었을 테니까. 이는 유태인들이 중국 요리를 좋아하는 것을 풍자한 미국 농담이다. 미국에서도 특히 유태인이 많이 사는 뉴욕에서는 이 농담이 금세 통한다. 인종적으로 유태인들이 특별히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도 높고 소득이 높은 계층이 다양한 음식을 즐기기 때문에 그 범주에 들어가는 유태인들이 많은 것이 그 이유라고 짐작한다. 유태인들이 중국 음식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도 짐작이 간다. 가성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테이크 아웃을 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미국 내 중국 음식점들의 특징이다.

캄캄한 오피스에서 홀로 밤늦게 야근을 하며 종이로 만든 박스에 담긴 볶음국수나 기타 요리를 먹는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에 많이 나오는 장면이다. 대륙횡단 철도 부설을 위하여 중국대륙에서 건너간 노동자들이 남아서 식당을 열고, 중국 음식을 팔기 시작한 것이 미국에 중국요리가 전파된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애초부터 값이 싸고 대중적인 음식으로 명함을 내민 셈이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찹수이’ ‘제네럴 초 치킨’ ‘비프 브로콜리’ 등 중국에는 없는 미국산 중국 메뉴도 이 과정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진짜 중국 요리는 끝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심오하다. 세계 어떤 요리에도 뒤지지 않는 인류 음식 문화의 정점에 서있는 중국 요리를 먹어보거나 또 알고 있는 중국인이라면 미국의 이런 상황에 답답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미료로 범벅이 된 미국의 싸구려 중국 요리를 진짜 중국 요리겠거니 여기는 미국 사람들에게 나아가 세계 만방에 ‘중국 요리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중국 요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리안 감독의 <음식남녀>

리안 감독의 <음식남녀>는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태어난 영화다. 리안 감독은 대만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하였고, 미국에서 데뷔를 하여 헐리우드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그가 대만으로 돌아가 만든 영화가 바로 <음식남녀>다. 영화 제목도 그대로 직역하여 ‘Eat Drink Man Woman’이다. 이 말은 중국의 고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食男女, 人之大欲存焉’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먹고 마시고 남녀간에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훗날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그에게 오스카 감독상만 두 번씩이나 안겨준 <와호장룡>,<브로크백 마운틴>,<라이프 오브 파이>,<색, 계> 등의 대작에 못지 않은 걸작으로, 그의 초기작품이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께 꼭 봐야 할 영화로 추천을 하기에 스포일러도 피할 겸 이 영화의 잘 짜여진 짜임새와 감동을 주는 스토리는 생략한다. 그래도 충분히 다룰 소재가 차고 넘치니 바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이야기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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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타이페이에서 제일 큰 호텔의 연회와 음식을 책임진 주방장 주(朱)사부와 그의 세 딸 이야기다. 십 수년 전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내고 홀아비가 된 그는 직장에 가면 수백 명의 부하로부터 존경받는 사부이지만 집에서는 그냥 성장한 세 딸들이 대화가 안 통해서 답답해 하는 고집 센 아버지일 뿐이다. 첫째는 전문학교의 화학선생, 둘째는 항공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커리어 우먼, 셋째는 대학생이다. 이 집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룰 가운데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 저녁은 집에서 다 같이 먹는 것이다.

깊고 오묘한 중국 요리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

영화는 어느 일요일 주사부가 집에서 이 일요일 만찬을 준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살아있는 잉어는 잡아 비늘을 벗기고 배를 가른 뒤 필레를 뜬다. 밀가루를 씌운 뒤 뜨거운 기름을 부어 겉면을 살짝 익힌 뒤 다른 재료와 함께 조리를 한다. 오징어는 가늘게 칼집을 내어 볶고, 돼지 콩팥은 얇게 편을 뜬다. 마는 채 썰고 잘 쪄진 동파육은 썰어 얼음물에 넣어 식힌 뒤에 다시 익힌다. 닭장에서 알맞은 닭을 골라 배 안에 샥스핀을 채워 넣고 도자기에 담아 중탕으로 고아낸다. 개구리 다리는 튀기고 고기는 다져 소룡포를 빚는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메뉴가 필자가 보기에는 松鼠魚, 火爆雙脆, �包翅, 東坡肉, 蟹肉小籠包 등인데 영화에서는 흘러가듯 나오는 장면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관객들이 짧은 시간에 중국 요리의 깊고 오묘한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데 성공한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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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에 가서 오리구이인 카오야(�鴨)를 만드는 장면도 나오고, 닭에 양념을 잘해서 연잎으로 싼 뒤에 흙을 두껍게 발라 불 속에 넣어 익힌 뒤 망치로 깨서 꺼내는 투쑤지(富貴土塑�)를 만든 장면도 나온다. 카오야는 화덕에 넣어서 뜨거운 공기로 익히는 요리고, 투쑤지는 밀폐된 속에서 뜨거운 흙의 열기로 익히는 요리다. 재료는 같은 조류인데도 이렇게 조리방법이 전혀 다른 메뉴를 고른 것은 다분히 리안 감독의 의도가 들어가 있다고 본다. 중국 요리의 다양하고 뛰어난 조리법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는 말이다. 카메라는 스치듯 훑고 지나가지만 집안에 쟁여둔 엄청난 건어물 등 말린 식자재도 나오고 용도에 따라 달리 쓰는 많은 종류의 식칼도 보인다.

초대형 연회장에서 펼쳐지는 최고급 요리의 향연

그리고 또 하나의 명장면이 있다. 주사부가 일하는 호텔에서 일요일 저녁에 급히 그를 찾는 전화가 온다. 오랜 세월 그의 파트너가 난처해 하는 이유는 최고의 고급 손님이 결혼피로연을 하는데 샥스핀 그러니까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위해 사입한 재료가 가짜여서 끓였더니 풀어지고 만 것이었다. 주사부는 롱펑청썅(용봉정상: 龍鳳呈祥)으로 대치하라고 하여 위기를 넘긴다. 상서로운 경사에 등장하는 이 메뉴는 용으로는 해산물을 쓰고 봉으로는 조류를 쓰는데 그는 아낌없이 고급 식재료를 쓰라고 명한다. 영화는 이 소홀히 해선 안될 귀빈의 연회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규모가 어마 어마 하다. 로케이션으로는 타이베이의 명소 ‘원산대반점(圓山大飯店)’을 골랐다. 새빨간 기둥과 카펫이 너무나도 중국적인 이곳의 연회장은 서양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규모다. 천 명 단위의 손님이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장면은 이런 대규모 연회를 위하여 바삐 돌아가는 주방 안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하여 바쁜 걸음으로 들어가는 주사부의 뒤를 스테디 캠으로 따라가며 영화는 엄청난 규모의 스태프들이 썰고 볶고 끓이고 씻고 나르고 하는 초대형 연회장에 딸린 주방 안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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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양의 연회는 이 정도로 큰 경우가 많지 않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규모 이상이 되면 미리 준비해 둔 케이터링 음식이나 콜드컷 등이 들어가서 동시에 뜨겁게 내야 하는 핫 플레이트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요즈음 한국도 좀 여유가 있는 집은 결혼식을 호텔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메뉴 구성이 천편일률적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에피타이저, 스프, 샐러드, 해산물 그리고 메인으로 스테이크가 나오고 나서 디저트와 음료가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런 데서 먹은 스테이크 가운데 정말 맛있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 동시에 수백 명에게 서빙 하는 스테이크를 맛있게 내는 노하우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아마도 그보다는 음식의 맛에 크게 기대를 안하고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라 그냥 넘어가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필자는 지금까지 대화 중에 아무개네 결혼식 음식이 정말 맛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냥 축하해 주러 간 거니까 호텔에서 양식코스를 대접받든 아니면 식권을 받아 뷔페를 먹든 또는 갈비탕 한 그릇을 얻어먹든 음식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중국, 대만은 물론이요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중국 사람들이 사는 곳은 다르다. 잔치를 하게 되면 손님들의 기대도 높고 음식을 내는 호스트 쪽에서도 거기에 부응하기 위하여 신경을 많이 쓴다.

식재료 본연의 식감과 색을 살리는 중국의 탁월한 조리법

이렇듯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쓰는 중국사람들인지라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 낸 중국의 음식문화는 요리법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달하였다. 그 한 가지 예로 조리법을 나타내는 한자를 몇 가지 소개해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조리법을 나타내는 한자에는 대개가 불 화(火)자가 들어있다. 한국인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짜장면(炸醬麵)의 짜(炸)는 기름을 많이 넣고 센 불에 볶거나 튀긴다는 말이다. 프라이드 치킨은 짜지(炸�)라고 한다. 기름을 두르고 볶는 건 차오(炒)라고 한다. 볶음밥은 차오판(炒飯), 볶음국수는 차오미앤(炒麵)이라고 한다.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짬뽕을 화교들은 차오마미앤(炒碼麵)이라고 부른다. 이 재료, 저 재료를 섞어 볶았다는 의미다. 짜와 차오의 중간쯤 되는 조리법으로 빠오(爆)라는 조리법도 있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 지지는 것은 지앤(煎)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파전, 생선전 할 때의 ‘전’은 여기에서 온 것이다. 기름을 쓰는 요리법만 해도 이렇게 다양하다.

물에 삶는 건 쭈(煮)라고 하고, 증기로 찌는 것은 쩡(蒸)이라고 한다. 중탕을 하여 오랜 시간 뭉근하게 조리를 하는 것은 뚠(燉)이라고 한다. 화덕 안에서 뜨거운 공기를 이용하여 익히는 것은 카오(�)라고 하고, 연기로 익히는 것은 쉰(燻)이라고 한다. 이밖에 불 조절을 하며 국물을 내냐, 전분으로 걸죽하게 하냐에 따라 싸오(燒), 류(溜), 후이(�)가 있고 물에 저어서 살짝 익히는 쏸(�) 등이 있는데, 너무 길어지므로 이 정도에서 생략한다.

세계 거의 모든 요리가 불을 써서 날 것의 재료를 익힌다는데 공통점이 있지만, 중국요리의 조리법은 이 불을 쓰는 데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는 식재료의 식감을 살리거나 고유의 색깔을 살리거나 하는데 유용하다. 필요에 따라 부드럽게 또는 꼬들꼬들하게 아니면 표면은 아삭하고 속은 몰캉하게 등 맛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하우를 오랜 세월 축적해온 것이다. 그래서 일단 기름에 데쳐서 볶는다거나 아니면 물에 데쳐 튀긴다거나 기름에 볶은 뒤에 찐다거나 하는 식으로 복합적인 조리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일본, 미국 등 외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후이궈러우(回鍋肉)의 뜻은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냄비로 돌아온 고기’라는 말이다. 열을 가하여 일단 익힌 뒤 양념을 넣고 다시 조리는 요리라는 게 이름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요리를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통상 ‘Double Cooked Pork’라고 부른다. 두 번 조리한 돼지고기라는 뜻이니 걸맞은 번역이라 하겠다.

맺으며

이렇게 오묘한 중국 요리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 <음식남녀>인데 여기에 더하여 오늘의 중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또 하나 있으니, 대학에 다니는 셋째 딸 이야기다. 아버지는 대만 최고의 숙수인데 그녀는 햄버거를 내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싸구려 국수를 먹으며 데이트를 한다. 정성스레 식자재를 고르고 오랜 시간 성의를 다하여 맛난 음식을 만들어 소중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전통에서 정크 푸드로 옮겨가는 젊은이들의 식생활과 사랑이야기도 이 영화는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진정 리안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디쉬인사이드 : 중국 요리의 진수를 만나는 즐거움 in 영화 음식남녀

영화는 마지막으로 재색을 겸비하여 제일 먼저 독립할 것 같았던 둘째 딸이 남아서 저녁을 준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정들었던 집이 팔려서 식구들의 마지막 일요일 저녁이 되는 셈인데, 다들 사정이 있어서 아버지와 단 둘이 만찬을 가진다. 자식들에게는 주방 일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어려서는 딸들이 아버지가 일하는 주방에 드나들지 못하게 했는데, 사실 둘째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꽤 한 것 같지만 사실 중요한 이야기는 모두 숨겨놓았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 꼭 감상하기를 다시 한번 권하면서 글을 맺는다.

영화
<음식남녀>
1994년 작
이제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반열에 오른 리안 감독의 초기작으로, 랑웅, 양귀매, 오천련, 왕유문 등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들이 출연했고, 중국 요리 특유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면들이 압권이다. 노년의 수석 요리사 ‘주사부’는 나이가 들면서 미각도 잃고, 가족과도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 되면 세 딸을 위해 정성껏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들을 초대하지만, 장성한 딸들은 결혼과 가족관 등으로 사사건건 아버지와 대립한다. 세대 간의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던 당시의 대만 사회가 배경의 주를 이루지만 그 안에는 삶의 본질을 꿰뚫는 동양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1994년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 1995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수작이다.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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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5-0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