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라는 예명 외에 다른 예명을 짓고 싶은 적 있나요?
다른 예명이라기보다 요조라는 예명 말고 제 본명으로 음악을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었어요. 근데 좀 불편할 거 같더라고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등장하는데 그분도 본명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까 은행에서든 병원에서든 무라카미 하루키상! 하면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본명으로 음악을 했더라면, 좀 부끄러운 장소에서 신수진 손님! 신수진 환자분! 이러면 괜히 좀 무안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제 예명에 아주 만족하면서 음악 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에 글을 연재한다면?
아무래도 저는 책을 좋아하고 책장수이기도 한 입장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지 않을까? 만약에 쓰게 된다면? 또 제가 종로 일대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종로 안국동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종로 일대가 저한테는 아주 익숙하고, 편안하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되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네예요. 그래서 종로구 일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살이의 인생을 노래한 ‘Ephemera’가 만들어진 배경이 궁금해요.
노래를 만들게 될 때 동기가 다양한 편인데, 그 노래 같은 경우에는 그 단어에서 시작한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phemera’라는 단어를 우연히 알게 돼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하루살이, 일회용품, 한 번 쓰고 버리는 것. 그런 뉘앙스를 들여다보니까 사실 사람의 일생이라는 것도 기간이 일회용품보다 조금 길다뿐이지, 사실 우리 모두가 일회용품이잖아요. 그리고 그때 즈음에 종교를 버리게 되면서, 항상 기도할 때 도와달라는 기도를 버릇처럼 했거든요. 거지처럼. 도와주세요, 해주세요, 해주세요. 그런 기도가 지긋지긋했고, 그런 기도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불완전한 내가 나를 의지하면서 지지하면서 계속 걸어가면서 나한테 주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라는 노래를 그 단어를 통해서 표현을 해보고 싶었어요.
Ephemera
이것은 짧게 사는 것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야지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컴필레이션 Vol. 1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 마음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요?
그 계기는 미래는 불확실한데, 죽음은 확실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저한테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모르겠다고 하면 어쨌든 내가 하기 싫은 건 피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확실한 죽음이라는 게 저한테는 그런 동기가 되는 아주 강력한 생각, 사로잡혀 있는 생각이에요.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한 말씀 부탁드려요!
별로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건 없고. 어차피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기억하든 저는 죽으면 모르잖아요.그래서 별로 의미 없을 것 같고. 그냥 바람은 있는데,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저한테 중요한 동력은 사실 제 주변에는 너무 음악적으로 뛰어난 동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못하는 부분, 악기 연주를 못한다거나 그 외의 내가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같이 고민해줄 동료들이 있어요. 저한테 있어서 이건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부분이 뭐냐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가 고갈되는 거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면 내가 이제 노래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그래서 이왕이면 아주 오랫동안 하고 싶은 얘기가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이 있어요. 나머지는 다 주변에 빌붙어서 구걸하면서(웃음) 도와 달라고 하면서 꾸역꾸역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