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말하다

[끝내주는 전쟁사] 칼레 해전 1)전쟁의 발단

영국과 스페인의 서유럽 패권 겨루기

세계 3대 해전 중 하나로 꼽히는 칼레 해전은 당시 대제국을 이루던 스페인과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영국이 맞붙은 해전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규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대단한 전투 없이 막을 내린 전쟁이었죠. 칼레 해전에서 승리한 영국은 서유럽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게 되고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은 처참한 패배 후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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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숫자로 보는 전쟁의 결과

영국과 스페인은 각각 197척과 130척의 군선을 투입했고, 사람으로는 각각 15,000여명과 27,500여명의 인원을 칼레 해전에 투입했습니다. 얼핏 보면 많은 수의 군선과 인원 같지만, 칼레 해전에 투입된 병력은 레판토 해전에 투입된 병력보다 적습니다. 이는 전쟁의 규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해전에 이용된 군선이 노잡이가 노를 젓는 노선에서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하는 범선으로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칼레 해전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되곤 합니다. 영국은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스페인 해군에 ‘무적함대(아르마다)’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만큼 당시 해상 대제국이었던 스페인의 해군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죠. 그에 비해 영국의 해군은 크게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작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듯이 영국 해군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게 되었죠.

왜 골리앗은 다윗을 응징하러 갔을까?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는 첫 번째 부인 캐서린 사이에서 훗날 피의 메리라 불리게 되는 메리 1세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이내 캐서린과의 이혼을 마음먹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헨리 8세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에 수긍하지 못한 헨리 8세는 로마 카톨릭에서 탈퇴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한 후 캐서린과 이혼하게 됩니다. 한편 캐서린은 정통 카톨릭 국가인 신성로마제국(스페인)의 공주였기 때문에, 잉글랜드 헨리 8세와의 이혼은 서로 다른 국교를 지닌 두 국가가 등지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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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기 강사
사회 이슈와 경제를 접목한 인문학 강의로 대중과 소통하는 강사
  • <어쩌다 어른>, <썰전>, <톡투유> 등 다수 방송 출연
  • 「최진기 거의 모든 인문학 특강」 , 「 최진기의 교실 밖 인문학」 ,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 「철학의 바다에 빠져라 」 , 「최진기의 지금 당장 경제학 」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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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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