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1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1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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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치열한 투쟁의 역사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현재
어린 시절 이름은 바위처럼 굳세어란 의미의 김창암, 후일 동학에 입문해 김창수란 이름으로 이름을 바꾼 사나이,
상해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한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가 누리는 현재가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세월을 보내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네 개의 이름을 가진 김창수 대장의 이야기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1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첫 번째 이름 김창암
그리고 평생 4개의 이름
김창암이란 이름은 ‘바위처럼 굳세어란’
의미
를 가진 이름이었습니다.
어찌보면 흔한 사연을 가진 이 남자 아이의 이름은 하지만 이후 4개가 됩니다.

1876년 7월11일 황해도 해주읍. 산통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남자 아이는 아버지가 지붕 위에 올라가 소 울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지독한 난산 끝에 태어난 그 아이의 이름은 7대 독자인 김창암.

김창암, 바위처럼 굳세어란 뜻의 이름이었습니다. 난산이 많았던 조선에서 어찌보면 흔한 사연을 가진 이 남자 아이의 이름은 평생 4개가 됩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이끌던 ‘상놈’ 출신 10대 접주 김창암(金昌巖)은 본명을 버리고 김창수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습니다. 동학에 입문한 청년 김창수는 원래의 이름 창암 때문에 ‘바위처럼 팍팍하니 부드럽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이름을 창암에서 창수란 이름으로 바꾸게 됩니다. 부드럽게 살자란 의미로 창수란 이름에 삼수변(?)이 사용되었습니다.

마음 속에 오직 투쟁이라는 단어를 품고 살았던 청년 김창수는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학군을 지휘하여 해주성을 공략했지만 결국 크게 패하고 맙니다.

“천도교가 없었다면 중앙대교당이 없었을 것이고, 중앙대교당이 없었다면 상해 임시정부가 없었을 것이고, 상해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군을 피해 만주로 피신한 김창수. 그런데 김창수의 인생을 바꿀 치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1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여우사냥이란 치욕적 이름의
국모 시해사건
여우사냥은 당시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살해
되고 처참하게 시신마저
불살라지는 사건이었습니다.
김창수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으로 충격을 받고 만주에서 귀향을 결심합니다.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 폐하를 살해하였느냐. 내가 살아서는 이 몸을 가지고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맹세코 너희 임금을 죽이고 너희 왜놈들을 씨도 없이 다 없애서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고야 말 것이다.”

을미사변 후 일본인에 대한 증오심을 안고 살던 김창수는 1896년 2월 안악 치하포에서 조선인으로 변복한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를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육군 중위로 판단해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치다 조스케의 시신 위에 본인이 죽였다는 포고문을 남긴 채 귀향했지만 3개월 뒤 결국 체포됩니다.
격동의 역사 위에 선 김창수 그리고 백범 김구

인천감리서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김창수는 1898년 탈옥에 성공합니다. 김창수는 탈옥 후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25세에 이름을 다시 김구로 바꾸게 됩니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바꾼 김구란 이름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백범 김구입니다.

1910년 10월 조선총독부의 초대총독으로 부임한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민족의식이 높았던 황해도, 평안도 지역에 대한 대대적 탄압을 시작하면서 600여 명의 민족운동가를 검거하게 됩니다. 혹독한 고문 후 재판장에 서게 되는 105인이 서게 됩니다. 재판장에 서게 된 105인에 백범 김구도 포함됩니다.

이렇게 김구의 삶은 일본과의 투쟁 그 자체였습니다.

리얼월드 그 후 이야기 : 1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김창수
애국심은
만백성이 가져야 한다
현재 시립 미술관(서울 중구 서소문동)이 위치한
자리는 평리원이라고 해서 대한제국 말기의 재판소
있던 자리입니다.
평리원은 일본이 한국 독립운동의 싹을 뽑기 위해 105인 사건의 재판을 벌인 곳이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아픔이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경술국치 이후, 김구는 거북구(龜)가 사용된 본인의 이름을 아홉구(九)를 넣은 김구로 변경합니다. 김구 선생님의 인생에는 총 4개의 이름이 사용된 것입니다.

4개의 이름은 백범 김구의 인생이 누구보다 역사 앞에서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후세에 남길 역사에 대한 고뇌가 없었다면 4개의 이름이 백범 김구의 삶에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편 김구 선생님의 호인 ‘백범’은 비천한 백정의 ‘백(白)’과 범부의 ‘범(凡)’을 딴 이름이었습니다. 백범이란 호는 만백성이 애국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절대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호입니다.
글을 맺으며
“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러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김구 백범일지 中 -

조국이 눈보라 치는 위기에 당면했을 때 후손들에게 남길 역사를 먼저 생각한 김구. 우리는 김구 선생님의 인생을 보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역사 앞에서 치열한 고민을 한 선조들의 삶이 모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4개의 이름이 필요할 만큼 역사 앞에서 지금 치열하고 진중하신가요? 우리의 이름은 역사 앞에서 어떤 이름이 되어야 할까요? 아픈 역사 앞에서 김창수에서 김구로 바뀌었던 대장 김창수, 우리의 이름은 역사 앞에서 어떤 이름이 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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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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