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의 전후사정

100년 전 투표권을 위해 싸운 영국 여성들

그 영화의 전후사정 - [서프러제트]100년 전 투표권을 위해 싸운 영국 여성들
그 영화의 전후사정 - [서프러제트]100년 전 투표권을 위해 싸운 영국 여성들

영화 ‘서프러제트’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100년 전 영국 세탁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극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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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으로

여성들의 투표권 쟁취기

  • 영화[서프러제트]
  • 얼마 전 강남 역 근처의 화장실에서 젊은 여성이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남성이 여성을 목표로 삼았다고 자백하면서 이 사건은 여성혐오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남녀 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된 오늘날에도 여성은 사회적인 약자이자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이렇다면 과거의 여성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요? 올해 6월에 개최된 제18회 여성국제영화제(SIWFF)의 개막작인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100년 전,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쟁취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12년의 영국을 배경으로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에밀리 데이비슨 같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고, 엡섬 더비 경마 사건 같은 실제 벌어진 사건들을 토대로 극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그녀들의 투쟁담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를 이제부터 만나보겠습니다.

# 프롤로그.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영화[서프러제트]

불안한 표정으로 유모차를 끌고 번화가로 나선 여성,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유모차 안에 숨겨온 돌을 집어 들고 상점의 유리창을 향해 던집니다. 그걸 신호로 주변에 있던 동조자들이 일제히 합세해서 유리창을 깨면서 구호를 외칩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세탁공장 심부름으로 거리를 나섰다가 그 광경을 목격한 모드 와츠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칩니다. 20세기 초반의 영국 여성들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참정권을 얻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이 무시당하자 과격한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 줄거리. 세탁공장 여성 노동자, 세상에 눈뜨다

  • 영화[서프러제트]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모드 와츠는 다른 여성들처럼 불평등과 차별을 묵묵하게 견뎌냅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우연찮게 만난 여성 운동가 바이올렛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죠. 바이올렛을 대신해 정치인들 앞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을 증언한 그녀는 차츰 여성 참정권 운동에 빠져듭니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후원하는 이디스를 비롯해 다수의 동료들도 만나게 됩니다. 평범함을 벗어 던진 그녀의 삶에는 폭풍이 몰아칩니다.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그리고 아무런 권리가 없으니 나가라고 냉정하게 그녀를 쫓아내는 남편을 통해 단지 하루 하루를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싸움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모드 와츠는 집에서 쫓겨나 감옥에 갇히고, 단식 투쟁을 거듭하면서 노동자에서 운동가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영국 국왕의 경주마가 참여하는 엡섬 더비 경마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 에필로그. “절대로 포기하지 마”

모드 와츠와 에밀리 데이비슨은 경마 경기가 열리는 엡섬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국왕에게 다가가서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자 에밀리 데이비슨은 모드 와츠에게 말합니다.

  • 영화[서프러제트]
  • “절대로 포기하지 마!”

에밀리 데이비슨은 그 말을 남기고는 경주마들이 달리는 경주로로 난입합니다. 그리고 달리는 말과 충돌하면서 쓰러지고 맙니다. 큰 부상을 입은 에밀리 데이비슨은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녀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또 다른 투쟁에 나섭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에밀리 데이비슨의 실제 장례식 영상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여성에게 언제 참정권이 부여되었는지를 자막으로 보여줍니다.

前後事情

여성들의 새로운 싸움은 아직도 계속된다

  • 영화[서프러제트]

‘서프러제트’는 마지막 장면에서 여성들이 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나라들의 이름이 올라 가는 자막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사실 참정권이 주어졌다고 해서 모드 와츠를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단번에 금방 좋아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대부분의 권리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더 풍요롭고, 더 진보했으며,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대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시끄럽고, 무례하며, 천박하다는 평을 받은 소수의 열정이 없었다면 그런 삶은 온전히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최근 여성 혐오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여성들에 의해 남성들의 권리가 제약 받고, 여러 가지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주장 때문인데요. 남성들의 권리를 빼앗는 건 여성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오랫동안 가지지 못했던 것을 이제 겨우 쟁취했을 뿐입니다. 남성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짓누른 것은 여성이 아니라 권력이 아닐까요. 예나 지금이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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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정

영화가 시작되면 지난 역사도 함께 시작된다

산업혁명이 만든 새로운 신분 ‘노동자’

  • 영화[서프러제트]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은 노동자라는 새로운 신분계층을 탄생시켰습니다.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농민들은 지주들이 농토를 양을 키우는 목장으로 바꾸는 인클로저 운동을 벌이면서 땅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도시로 흘러 들어와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변신하게 됩니다. 농민들이 계절이나 날씨 같은 환경적인 요인과 맞닥뜨렸던 것과는 달리 노동자는 일정시간 동안 공장 안에서 일을 하고 고용주에게 급여를 받으면서 생활했습니다. 따라서 노동환경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공장을 운영하는 고용주들은 작은 비용을 들여서 큰 이익을 얻기를 원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적은 임금을 주고 오랜 노동을 시켰습니다.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조건과 빈약한 임금, 그리고 불안전한 고용 조건에 불만을 품게 됩니다. 기계의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일까지 반복되면서 결국 노동자들은 조합을 결성해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합니다.

공장에서 일하게 된 여성 노동자들의 가혹한 환경

영화[서프러제트]

한편, 공장이 늘어나면서 일손이 부족해지자 그 동안 가정에 있던 여성들도 공장에 나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적은 임금과 오랜 노동시간, 그리고 각종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상황은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졌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얼마나 불평등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모드 와츠가 바이올렛을 대신해 정치인들 앞에 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증언합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낳고 일을 쉴 수 없어서 공장에서 저를 키웠습니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스물 네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일곱 살 때 인턴으로 일했고, 열 두 살 때 정식 직원이 되었습니다. 스무 살 때 조장이 되었고, 남편도 같은 공장에서 일합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오래 살지 못합니다. 독한 약품 때문에 폐가 나빠지고 오랫동안 서서 일하느라 척추가 틀어지거나 망가지거든요.”
“아마 저도 오래 못 살 겁니다. 제 어머니처럼 말이죠.”

방관 혹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정치인들 앞에서 모드 와츠가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 이 부분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입니다. 권력으로 상징되는 남성들은 침묵을 지키고 여성을 대표하는 모드 와츠는 조용히, 그리고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냅니다. 물론 모드 와츠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녀의 삶은 당대 영국 노동자 여성이 겪어야 했던 비참한 삶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성은 감정적이기 때문에 투표할 수 없다?

  • 영화[서프러제트]

에멀린 팽크허스트 같은 여성운동가들은 이런 불평등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처지의 남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참정권 획득 운동을 벌이면서 단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이나마 가혹한 노동 조건을 완화시키고, 임금 삭감을 막을 수 있었죠. 하지만 보수적인 남성 정치인들은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남성들조차 재산에 따라 차등적으로 투표권이 부여되던 상황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감정적이기 때문에 제대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가 주어진다면 가정과 사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투표권 부여를 반대합니다. 투표권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영화에서 모드 와츠가 아들을 보게 해달라고 하자 남편이 냉정하게 거절하면서 내 권리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당시 여성들이 처한 처지를 상징합니다.

영화[서프러제트]

결국 반 세기에 걸친 합법적인 청원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비롯한 여성운동가들은 상점의 유리창을 깨거나 우체통을 폭파시키는 과격한 방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1913년, 에밀리 데이비슨이 엡섬 더비가 펼쳐지는 경마장에 난입해서 경주마와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절정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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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사정

영화는 끝나고 역사는 계속된다

달리는 경주마에 뛰어든 여성 운동가의 죽음, 엡섬 더비 사건 그리고…

  • 영화[서프러제트]

에밀리 데이비슨의 희생이 있었지만 여성들의 과격한 참정권 획득 운동에 대한 비난은 이어졌습니다. 죽은 에밀리 데이비슨도 미치광이나 광신도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국왕이 참석한 경마 대회를 망쳐버렸다는 이유로 말이죠. 게다가 사망한 에밀리가 돌아갈 기차표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빌미로 단지 사고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사건을 접한 영국인들이 그녀와 동료들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한 여성이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끼여들어 훼방을 놓았다는 사실에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에밀리의 죽음보다 충돌로 인해 큰 부상을 입은 기수와 말의 상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에밀리 데이비슨의 죽음에 대한 사회의 냉담한 반응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더욱 단결시켰습니다.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투표권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냉대를 받았다는 것에 크게 분노했던 것이죠. 결국 폭력 시위의 정당성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여성운동가들은 단결하게 됩니다. 임신을 이유로 참정권 운동에서 손을 뗐던 바이올렛이 에밀리 데이비슨의 장례식에 나타나는 장면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을 담보로 참정권을 획득하다!

  • 영화[서프러제트]

에밀리 데이비슨의 희생과 수 많은 여성 운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여성들에게 완전한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928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정부는 여성들의 노동력이 필요했고,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전후 참정권 부여를 약속 받고 과격한 참정권 운동을 중단했죠. 이런 그녀의 결정에 둘째 딸과 셋째 딸을 비롯한 과격파들이 반대하고 나섰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고 10년 후인 1928년에는 성인 여성 전부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시위자, 조선의 ‘에밀리 데이비슨’ 강주룡

영국을 시작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1984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합니다. 정확하게는 일제 강점기 시절 아무런 권리가 없던 한국인들에게 모두 참정권이 주어진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국의 여성 운동은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시위를 펼친 강주룡입니다. 평양의 고무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는 1931년 고용주가 경기 악화를 이유로 임금 삭감을 강요하자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나섭니다. 당시 조선인은 일본인이 받던 임금의 절반 수준을, 그 중에서도 여성은 남성의 절반 밖에는 받지 못했습니다.

  • 영화[서프러제트]

시위가 계속되자 고용주는 경찰을 동원해서 강주룡과 동료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고 쫓겨난 강주룡은 평양에 있는 누각인 을밀대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피지배 계층의 단결을 촉구하고 악덕 고용주를 성토했습니다. 그녀의 고공시위는 9시간 만에 경찰에 의해 끝나고 맙니다. 하지만 단식과 투쟁을 거듭하면서 결국 임금 삭감을 막아냅니다. 그 이후 오랜 단식으로 인해 쇠약해진 강주룡은 평양의 빈민가에서 31세의 나이로 눈을 감습니다.



정명섭
자료 협조
홀리가든(영화 메인포스터 및 스틸 컷) Flickr, English Wikipedia, Morguefile,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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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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