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상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 - 고은 시인

詩人 고은,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작가의 책상] 번외편
  글을 쓰는 곳은 책상이지만, 글감이 나오는 곳은 책상만이 아닙니다. 사람, 추억, 책, 상상력 등 너른 세상을 마주할 때 탄생합니다. [작가의 책상] 번외편에서는 작업실을 벗어나 거리로 나온 작가를 만납니다. 책을 읽고, 길을 거닐며 상상이 탄생하는 과정을 함께해보세요.
화창한 가을 하늘이 시인의 머리 위에 있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 교보문고 정문. 멀리서 고은 시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화창한 하늘을 닮은 하늘색 모자와 외투, 도트무늬 스카프가 눈에 띕니다.
“예쁜 모자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이탈리아에서 학위를 받을 때 아내가 선물한 모자예요. 좋아 보이나요?”라며 웃습니다.
고은 시인은 1958년 등단한 후 《만인보》, 《순간의 꽃》, 《허공》 등 시, 소설, 평론 등 150권 이상의 저서를 발표한 대한민국 대표 시인입니다.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시카다상 등 국내외에서 15 차례 문학상을 받았고, 은관문화훈장과 노르웨이 비외른손훈장을 수상했습니다.
국내외 유수 대학의 명예교수인 그는 2005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시인 고은
대한민국의 시인 고은과 광화문 산책을 시작하다
인사를 나눈 후 시인의 발걸음이 서점으로 향합니다. 수원에 사는 시인은 서울에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책을 구매합니다.
책을 고르는 중 팬들이 사진 촬영과 사인을 요청합니다. 시인이 미소를 지으며 화답합니다. 고은 시인과의 광화문 산책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책에 사인을 하고 있는 고은
“책 속에 또 다른 세상, 아주 넓은 세상이 있습니다.”
서점 안, 시인이 20여권의 책 목록을 직원에게 건네며 도서의 위치를 묻습니다. 직원이 책을 찾는 사이 시인은 빠른 발걸음으로 미학과 인문학을 거처 철학 서가로 향합니다. 서가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찬찬히 살피던 시인의 눈빛이 빛납니다. 시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때마다 품 안에 책이 한 두 권 늘어갑니다.
시인은 “책은 경험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정보를 주죠. 보물 창고 같아요”라며 말문을 엽니다.
시인은 다독(多讀)하는 문인으로 유명하지만 시인의 인생 절반은 책을 읽지 않은 나날들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 고은
시인 고은
“젊은 날에는 책을 부정했어요. 당시에는 절에서 선(禪)을 닦았기 때문에 책과 가까워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죠. 전혀 읽지 않았어요. 환속한 후에도 한동안은 책을 멀리했어요. 젊었을 때 내가 낸 책까지 몽땅 태운 적도 있어요. 그래서 신고가 들어간 적도 있고요. 하하. 생각해보니 그때는 책보다는 밖에서 무언가를 찾는 시기였어요. 하지만 책을 쓰는 사람은 책과 가까워질 수 밖에 없어요.

결국 나머지 인생 절반은 책과 동행하게 된 거죠. 책은 작가에게 있어 굉장한 보고(寶庫) 거든요. 경험이나 기억, 추억 등 실제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알게 해 주죠. 책 속에 또 다른 세상, 아주 넓은 세상이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 책은 상상력의 원천입니다. 시상에 잠길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시인이 책을 멀리했던 시기엔 직접 느낀 것들이 시상이 됐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더 넓어진 경험의 틀에서 시상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처음 쓰던 때 내 시에 흐르는 허무주의의 배경은 전쟁이었어요. 전쟁이 주는 참혹함을 경험했기 문에 시 전반에 허무주의가 가득했죠. 젊었을 때 몇 번 자살시도를 했던 이유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중반기엔 전태일이나, 민주화 등 거리와 사람에게서 배운 것들이 많은 영감을 줬어요. 지금은 내가 겪은 체험과 책을 통해 경험하는 세상이 시에 있어서 중요한 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한번에 많은 책을 사들이는 시인의 독서 스타일이 궁금해졌습니다.
“신문기사나 주변의 추천을 참고해서 선택해요. 일단 여러 권을 사고, 읽는 순서는 따로 없어요.
마음이 가는 책을 먼저 읽어요. 그러다 필요한 책을 읽고, 또 다른 책을 들추어 보기도 하죠. 마음에 드는 책은 몇 번씩 읽기도 하고요. 특별하지 않죠?”라며 웃었습니다.
서점을 나와 광화문 거리로 나섭니다. 광장을 둘러보던 시인이 광화문에 얽힌 추억을 꺼냅니다. 시인은 “광화문은 우리의 역사이자 미래입니다. 광화문이 가진 의미는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가 있죠”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 광화문은 역사이자 추억이었고, 다가올 미래였습니다.
'광화문은 우리의 역사이자 미래입니다. 광화문은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가 있죠'
1960년대 중반 시인은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 기자에게 ‘광장’이란 제목의 원고 청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문이 전 세계 광장을 시리즈로 엮는 과정에서 고은 시인이 대한민국 광장 편을 맡게 된 것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내로라할 광장이 없었습니다.
“광장은 사람들이 만남을 통해 의견을 나누며 의식을 성장시키는 장소예요. 그런 장소를 찾으려고 하는데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당시 시청 앞에 터가 있었지만 뭔가 부족해 보였죠.
그래서 광화문 앞에 광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이란 제목으로 글을 완성했어요. 우리 민족의 아픔, 비극, 역사적 상황을 담고 있는 곳, 대중이 소통하는 곳으로 광화문만한 데가 없었으니까요. 당시 외국 사람들은 대한민국 광화문에 광장이 있다고 믿었을 거예요. 하하하. 시간이 흘러 지금 이렇게 광화문에 광장이 생기고, 우리 민족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광화문이야 말로 살아있는 생명체 같네요.”
광화문에 대한 남다른 애상은 2000년 발행한 《남과 북》 시집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시인은 시 《광화문》을 통해 아픈 역사와 민초들의 삶, 비극을 고스란히 표현했습니다. 시인은 “광장이 제대로 서야 올바른 소통과 문화의식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광화문이 소통의 통로,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곳으로 성장했으면 해요”라며 웃습니다.
'광장이 제대로 서야 올바른 소통과 문화의식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광화문이 소통의 통로,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곳으로 성장했으면 해요'
시인이 광화문을 지나 피맛골로 향합니다. 시인의 기억 속 피맛골은 막걸리와 선술집, 그리고 사람과 삶의 냄새가 어우러진 곳입니다. 지금은 피맛골을 채우던 선술집은 없어졌지만, 시인에겐 여전히 정답고 반가운 장소입니다.
“선술집이 여기서부터(광화문) 저기(무교동)까지 즐비했고, 많은 이들과 어울려 술을 많이 마셨죠. 그때는 여기 분위기가 이렇게 우아하진 않았어요”라며 막걸리 한 모금을 넘깁니다.
시인이 광화문을 지나 무교동 어느 술집에서 전태일 열사의 부고를 읽고 깨달음을 느꼈던 시절에 대해 말하며 잠시 호흡을 멈춥니다. 실제로 시인은 전태일의 죽음을 목도한 후 민주화로 뛰어들게 됩니다. 삶의 새로운 시작점입니다.
'나는 시(詩)로 무기징역을 사는 수인(囚人)'
시인은 광화문 이곳 저곳을 함께 뛰어다니며 조국의 민주화를 외치던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에 수감됐던 아픈 시절도 있었습니다. 독방에 홀로 남아 고통을 겪었던 그 시기가 연작시편 《만인보(萬人譜)》 구상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만인보》는 시인이 3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시집입니다.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이 시집은 우리 시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시인이 경험한 한민족의 역사와 5,600여명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
“30권으로 《만인보》가 끝났지만, 내 마음 속에 《만인보》는 끝나지 않았어요. 그 후로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여전히 나의 시가 되고 있습니다. 책에 안 쓴 것이 더 많아요. 나는 시로 무기징역을 사는 사람입니다.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고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죠.”
시인의 시집 《만인보》를 보면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보입니다. 가수 양희은의 이름도 있습니다. 시인에게 “양희은씨와의 만남은 어떠했나요?”라고 묻자 시인은 “양희은이 서강대 재학 중일 때 처음 만났지요. 그때도 참 밝고 예뻤어요. 어린 나이인데도 하나의 단단한 인격체로 느껴지는, 아주 옹골진 그런 느낌이 드는 학생이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만인보》 속에 담긴 역사와 사람은 고은 시인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막걸리를 마시는 시인을 가만히 보니 김치는 건드리지 않고 깍두기만을 오독오독 드십니다. “김치보다 깍두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하자, 시인은 “깍두기는 덕이 있는 음식이니까요” 라고 대답합니다.
“김치는 땅에 뿌리를 박고 밖으로 자라는 배추로 만들어지죠. 흙을 통해 흡수한 걸 세상에 드러내는 모습이 마치 지성(知性) 같아요. 하지만 깍두기를 담그는 무는 땅속에 묻혀서 양분을 흡수하며 아래로 성장해요. 덕성(德性) 같지 않아요? 저는 덕성이 필요한 사람이라 김치보다 깍두기를 더 좋아합니다.”
시인이 껄껄 웃으며 깍두기를 하나 더 집어 듭니다.
필자도 시인을 따라 깍두기를 집어 먹었습니다.
깍두기 한 조각에서도 덕성을 발견하는 80세 대문호의 웃음. 그 웃음소리에서 광화문의 어제를 추억하는 시인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난 깍두기가 좋아! 덕성(德性)이 부족하거든~
문미영(동화작가·기자)
사진
김은경(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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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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