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는 철학자

「유나의 거리」 똑바로 살기 위한 불량 인생들의 고군분투기

드라마 보는 철학자 #01 JTBC 월화특별기획 유나의 거리 똑바로 살기 위한 불량인생들의 고군분투기
드라마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신나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TV 드라마는 오락에 가까운 장르이기도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 삶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똑바로 살아!
역할에 상관없이 이 대사가 유독 자주 나오는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는 대체로 인생을 똑바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드라마는 나름의 성공을 즐기며 사는 콜라텍 사장이자 전직 조폭 한만복의 가족과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전설의 소매치기 강복천의 딸이자 소매치기 전과 3범인 여주인공인 유나, 기초수급대상자가 된 늙은 조폭 도끼와 한때 그를 오야붕으로 모셨던 만보(한만복)와 밴댕이, 전직 호스티스였던 안주인 홍여사, 꽃뱀 미선, 건달 계팔 외에도 호스트바 제비, 비리 형사 등이 주요 인물입니다. 전과 없는 사람이 귀할 정도로 이미 ‘똑바른 삶’에서 상당히 멀어진 사람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삶에 던지는 화두는 ‘의리’, ‘용서’, ‘믿음’, ‘염치’, ‘존경’, ‘도리’와 같은 것들입니다.
“언니, 남의 지갑을 뺏는 거랑 남의 남편을 훔치는 거랑 뭐가 더 나쁠까?”
“남의 남편 훔치는 게 훨씬 더 나쁘지.”
“그런데도 미선언닌 내가 더 나쁘다고 생각해.”
“그건 걔가 무식해서 그래.”
“그래 말야, 생각이 짧아.”
“그러니까 걔랑 놀지 마, 그러다가 물들까봐 겁난다.”
주인공 유나는 같은 방을 쓰는 꽃뱀 미선과 주먹다짐을 하며 다툰 후 지금은 마음잡고 잘 살고 있는 전직 소매치기 선배와 찜질방에서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흔히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만을 주로 생각해 온, 그래서 소매치기나 꽃뱀이나 도긴개긴이라 여길 사람들에게 한방의 킥을 날리는 이러한 에피소드로 드라마는 이어집니다.

한편 유나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창만은 이제 막 좋아지기 시작한 유나가 소매치기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다 한 집에 사는 노가다 칠복에게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습니다. 창만은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취득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일을 해오다 지금은 집주인 한만복의 콜라텍에서 총지배인을 맡고 있습니다.
“이건 저 말고 제 친구 이야긴데요. 그 친구가 최근에 사랑해선 안 되는 여자한테 빠졌어요.”
“어떤 여잔데?”
“소매치기래요.”
“친구는 뭐하는 놈이고?”
“저처럼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애예요.”
“그 친구, 네 말을 잘 들어?”
“그럼요. 착해요.”
“그럼 당장 헤어지라고 해. 나중에 큰일 나.”
“저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얘가 말을 안 들어요. 친구는 그 여자가 불쌍하대요. 마음을 잡게 해서 데리고 살고 싶대요.”
“다른 도둑질도 아니고 소매치긴데 무슨 수로 마음을 잡게 하냐? 나 같으면 사랑보다 신고가 먼저다.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해.”
“그래야겠죠?”
“당연하지. 너도 친구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그 친구를 위해서 네가 몰래 경찰에 신고해서 여자를 구속시켜버려.
그래야 친구도 살고 이 사회가 맑아지는 거야.”
'똑바로 살라!'의 진짜 의미는 뭘까요?
얼핏 선후배 사이에 오갈 수 있는 평범한 연애상담처럼 들리지만, 친구를 빗대어 유나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창만에게 이처럼 쿨한 솔루션을 제공한 칠복도 결국 부산에서 자신이 일하던 가게 안주인과 바람이 나서 야반도주로 서울에 정착한 인물이란 점이 함정입니다.
어쨌든 창만은 유나가 더 이상 소매치기를 못 하게 막겠다는 결심을 하고 술기운을 빌어 유나에게 말하고, 흥분한 유나는 창만의 얼굴에 소주를 부어버리며 단호히 말합니다.
“너나 똑바로 사세요!”라고. 전혀 똑바로 안 살아본 사람들이 툭하면 서로에게 충고하듯 말하는 ‘똑바로 살라!’의 진짜 의미는 뭘까요?
Scene #01. 정답 없는 질문의 미학
“언니,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해봤어. 언니랑 나 중에 누가 더 나쁜지.”
“그래서 누가 더 나빠. 내가 더 나빠?”
“응”
“그거야 네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언니는 성경책 한번이라도 읽어 봤어? 거기에 가요 톱10처럼 나쁜 걸 쫙 정리해놨어. 족보로 따져도 언니가 나보다 더 나빠.”
“어째서?”
“가장 나쁜 게 1위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7위는 간음하지 말라야.”
“그건 나네, 그럼 너는?”
“그 다음 8위가 도둑질을 하지 말라야. 그러니까 언니가 더 나빠.”
이 드라마는 이처럼 1차원적이고 뻔하지만, 나름 뼈있는 대사들로 인해 시청자로 하여금 웃음 짓게도 하고 또 뭉클하게도 합니다. 한마디로 “똑바로 못 산 사람들의 똑바로 살기 프로젝트”라고 정의할 수 있는 <유나의 거리>에는 우리 사회에서 소위 실패한 인생이라 손가락질 받을만한 불량 인생들이 모여 삽니다. 때문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사건사고의 연속이긴 하지만 된통 아파 본 사람만이 진정한 아픔을 이해하듯 서로 투닥거리며 서로를 치유해 갑니다.
“그러니까 유나씨도 이제 소매치기를 천직으로 생각하지 말고 소매치기 안한다는 선언을 하던지 업종 전환을 하라니까요.”
창만의 말에 유나는 발끈합니다.
“뭔 말 같지 않은 소리야. 그럼 오늘부터 나도 이 언니(꽃뱀 미선) 따라 다닐까?”
그러자 미선은 손사래를 치며 말합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모두 각자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자.”
이 말에 창만이 깜짝 놀랍니다.
“아니,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면 안 된다니까요.”
전과를 기본 옵션으로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라서 인지, 이들은 매일매일 범죄의 상대평가를 시도합니다. 조폭이 소매치기보다 의리가 더 있는지, 소매치기가 강도보다는 더 염치가 있는지, 같은 소매치기라도 존경받는 소매치기는 어떤 모습인지를 끊임없이 비교 분석합니다. 그래서 실소를 자아내게 하지만 그 때문에 시청자로 하여금 가슴 한구석에 내팽개쳐 두었던 오래 전 물음들을 새삼 생각하게 합니다. “똑바른 삶”이란 도대체 어떤 삶인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최소한 창만이 스스로 말하듯, 꼭 무엇이 되어야만 혹은 어떤 자리에 올라야만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나름대로의 성실함,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성공적인 삶인지 모릅니다. 작가는 고지식하고 어눌해 보이지만 성실하고 주관이 뚜렷한 ‘창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따지듯 묻습니다. 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성공이 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똑바른 삶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떤 삶은 똑바른 삶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유나의 거리에는 삶의 치열함이 있습니다. 또 매순간 무엇이 똑바로 사는 건지를 고민하는 치열함입니다.

세간의 눈으로 보자면 똑바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똑바로 살기’는 너무나 중요한 삶의 화두입니다. 어느 날 꽃뱀 미선이, “사랑은 사업이 될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험난한 경험 끝에 얻은 통찰이라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이처럼 시청자는 불량 인생뿐인 그들에게서 뭐라 똑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똑바로 살기’의 모습을 봅니다. 이들이 불량 인생에 그저 머물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모습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돌이켜 생각하게 합니다. 문제는 똑바로 사는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 매 순간 주어진 상황에서 끊임없이 그 물음을 던지는 일입니다.
Scene #02. 질문을 통해 만들어가는 삶의 이정표
철학을 정의하는 것은 여러 버전이 가능하지만, 오늘날 그나마 원만하게 두루두루 말할 수 있는 대답은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탐구하는 활동’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은 정해져 있는 정답을 찾는 탐구는 아닙니다. 오히려 20세기의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가 말했던 것처럼 ‘물음을 던지는 일’을 더욱 소중히 하는 활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일종의 열린 탐구의 도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물음을 던지는 일은 사유의 도정에서 이정표를 하나씩 세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유가 가진 위대한 힘은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음을 던지는 일은 현실을 그저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되묻는 부정성의 사유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삶인지 라는 대단한 질문을 굳이 던지지 않더라도, 지하철에서, 길을 걷다가 혹은 화장실에서 ‘나 이렇게 살아도 될까?’하며 스스로에게 무심히 질문을 던진다면 그 삶은 이미 훌륭한 것에 가까워집니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뭔지는 몰라도 이미 자신의 삶에 모종의 문제가 있음을 감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많이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나오는 온갖 신기한(?) 직업들과 그들이 꾸려가는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들이 끊임없이 서로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발전적인 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나의 거리에는 똑바로 못 살아 본 사람들이 모여 삽니다.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협박하고 때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게 배운 짓이라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염치는 있어서 그것이 도리가 아님을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려고 합니다. 인간다움의 사유가 멈춰버린 우리 사회 승자들의 삶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의리를, 염치를, 도리를 고민하는 이들, 그런 불량 인생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하이데거가 ‘질문을 던지는 일 자체의 신성성’을 강조한 것은 부정성의 사유가 가진 힘을 말한 것입니다. 부정성의 사유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부인할 수 없어 보이는 모든 것들의 효력을 정지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오직 인간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열어젖힙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래는 우리가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그렇게 열린 미래를 헤쳐 나가는 방법은 끊임없이 물어보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똑바로 살고 있는가? 그렇게 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삶의 진정성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매월 1회, 드라마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신나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TV 드라마는 오락에 가까운 장르이기도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 ‘삶’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사랑에 가슴 설레기도 하고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배신에 몸서리치며 복수에 대리만족합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드라마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드라마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곧 삶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삶을 성찰해보는 기회를 갖는 일일 것입니다.
김정민 (철학 큐레이터, 스토리밸류센터장,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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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8-2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