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의 우연

커피와 건강을 둘러싼 소문의 역사

한 모금의 우연 : 커피와 건강 유해설 한 모금의 우연 : 커피와 건강 유해설

‘커피를 많이 마시면 불임이 된다.’ ‘커피를 마시면 피가 마른다.’ ‘커피를 마시면 신경병과 암에 걸린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무서운(?) 이야기들은 정말 사실일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역사 속에서 한때는 사실이었던 적이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불임이 된다.’ ‘커피를 마시면 피가 마른다.’ ‘커피를 마시면 신경병과 암에 걸린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무서운(?) 이야기들은 정말 사실일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역사 속에서 한때는 사실이었던 적이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감시와 제재의 대상이 된 커피의 수난사

한 모금의 우연 : 커피와 건강 유해설
커피가 음용되기 시작했던 500여 년 전부터 커피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과 금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존재였다.

오래 전 이슬람 세계에서는 커피금지령이 내려져 몰래 마시다 발각되면 즉각 사형이었던 때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인체에 유해하다’며 술처럼 정신에 영향을 주는 나쁜 음료라는 근거 없는 이유를 들어 비판과 금지령이 내려진 것이었지만 실은 커피 자체보다는 ‘카페하네’라는 장소가 문제였다. 시민들의 교류의 장으로 소문과 정치 공작의 산실을 규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슬람교의 정치 지배력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특히 커피(혹은 커피가 있는 곳)가 감시와 제재의 대상이 된 것인데, 이러한 규제와 형벌에도 커피와 카페하네는 16세기 이후 이슬람권에서 시민권을 확보해 갔다.


‘커피의 나라’ 영국에서
불임의 원인으로 지목된 커피

지금은 홍차하면 영국이지만, 그 전에 영국은 이미 ‘커피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커피가 유행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커피 한 잔 값만 지불하면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하여 ‘1페니 대학’이라고도 불리웠던 장소였다. 그 당시 물이 안전하지 않았던 유럽에서는 물 대신 비교적 안전한 술을 마셨는데, 때문에 술에 취해 있던 사회에 커피는 맑은 빛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술에 쩔어 토론하다 싸우게 되지 않아도 되는 커피하우스로 사람이 몰리고, 이렇게 시민들의 토론의 장이 되어 갔다.

그러나 당시 영국은 커피하우스에 여성이 출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국 여성단체들은 <커피에 대한 여성들의 청원>이라는 인쇄물을 발행하고, 이를 통해 “아이를 생산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전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커피를 마신 남자가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하우스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서 집에 오지 않아 아이를 만들 시간이 없었던 것이니 결국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는데도 ‘커피를 마시면 불임이 된다’라는 루머가 이때부터 돌게 되었다.

프랑스 최초로 마르세이유에 커피하우스가 생겨난 이래, 커피가 인기를 얻은 반면 알코올의 수요는 점차 줄기 시작했다. 커피로 인해 생계 문제를 염려했던 와인상인의 청탁으로 한 의사는 ‘커피는 건강상의 문제가 된다’며 커피의 폐악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사악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외국에서 유입된 물품이며… 혈액을 소진시키고 마비증세와 성불능 그리고 허약함을 유발한다”는 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커피 확산을 막지는 못했다.

커피 유해론자 구스타프 3세의
어리석은 실험

현재 1인당 1일 커피 소비량에서 핀란드와 1, 2위를 다투는 스웨덴.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3세(재위 1771~1791)는 유명한 커피 유해론자로, 커피금지령까지 선포했는데도 사람들의 커피 수요가 줄지 않자 결국 커피의 유해성을 증명하고자 ‘인체 실험’까지 했다. 쌍둥이 죄수에게 한 명은 죽을 때까지 홍차만, 한 명은 커피만 마시게 하여 먼저 죽으면 그 음료가 건강에 유해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국왕은 실험을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암살되었고, 결국 쌍둥이 죄수는 국왕보다 오래 살았지만 홍차를 마신 쪽이 83세에 먼저 사망했고, 커피를 마신 쪽은 언제까지 살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한 모금의 우연 : 커피와 건강 유해설
한 모금의 우연 : 커피와 건강 유해설

훗날 이 에피소드가 미국의 과학잡지에 소개되어 커피가 건강에 좋다는 증거로서 소개되곤 했는데, 이 역시 아무런 과학적 근거는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줄곧 커피와 홍차만 먹은 것도 아닐 것이고, 기본적인 신체조건과 생활 환경 역시 동일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증의 원인에서
지식인을 위한 음료로 거듭나기까지

커피 역사상 네거티브 선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19세기 말 미국에서였다. 당시에는 ‘중상모략형 광고’가 기본이었고, 커피가 건강에 나쁘다고 폄훼하기 위해 더러운 벌레나 죽음 등을 활용한 전단지를 만드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커피가 건강에 나쁘다’는 선전으로 대박이 난 인물은 바로 C.W. 포스트다. 그는 콘 프레이크를 발명한 켈로그 박사의 병원에서 신경증 치료를 받았고, 이후 이 병원에서 훔친 레시피로 만든 대용커피 ‘포스템’을 판매하게 되는데, 이때 ‘커피와 카페인은 신경증의 원인’이라고 퍼트리기 시작했다. 이 격한 네거티브 선전이 성공적(?)으로 먹힌 덕에 그는 사회적 현상까지 일으키며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커피 해악설은 아무런 의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건강에 이롭다는 의학계 발표가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요즘 같으면 허위광고로 처벌대상이 될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식처럼 정착해 버린 ‘악마의 주문’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신경증이 재발하여 자살로 세상을 떠나고, 이후 그가 남긴 회사는 그토록 폄훼하던 커피회사를 인수하여 현재 세계 3위의 식품회사 몬데리즈에 이르게 된다.

*참조: 탄베 유키히로 저 <커피의 세계사(2017년, 코단샤)>
한 모금의 우연 : 커피와 건강 유해설
다시 1920년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보자. 금주법 시행으로 알코올을 대신하는 기호식품들이 인기를 모을 무렵, 상식처럼 퍼져있던 포스트가 퍼트린 건강 유해설에 대하여 최신 과학 정보를 활용하여 ‘건강에 좋고 지식인을 위한 음료’라고 어필하는 일대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미국에선 다시 커피 붐이 일게 된다.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커피에 대한 문제와 이슈들

한 모금의 우연 : 커피와 건강 유해설
최근 TV뉴스에서 커피의 로스팅 과정의 발암물질에 대한 이슈가 거론되어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까지 술렁이게 했다. 이번에는 또 누가 커피를 핑계삼아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규제를 통한 세금이 목적일까, 커피를 이슈삼아 다른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것일까 하고, 조용히 음모론의 싹을 틔워 본다.

물론, 음식을 굽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구운 생선과 고기, 빵, 화덕피자와 그릴 치킨, 몰트로 만드는 맥주와 위스키 등등. 나는 이렇게 맛있는 조리방법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유독 커피가 이슈가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하며, 이럴 때마다 커피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어진다.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이며,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카페를 100년간이어가기위해》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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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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