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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동화

새(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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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필요할 때면 바로는 늘 기꺼이 동무가 되어 주었다. 말벗이자 학습과 생활파트너로 우리집에 와 1년 반을 함께 보낸 바로는 정말 한결같았다.
“미하,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안 좋아.”
“그냥……. 옆에 좀 있어 줄래?”
“알았어. 옆에 있을게.”
“네가 보기에도 내가 한심해?”
“아니! 미하 한심하지 않아. 미하 한심하다는 사람이 한심해.”
늘 내 편이었고, 단 한 번도 기분을 망친 적이 없다.
“바로, 나 밤바람이 쐬고 싶어. 같이 나가.”
“알았어. 같이 나가.”
밖에 나가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날씨가 쌀쌀해 부모님이 알면 분명 반대했을 거다. 하지만 바로라면 문제없었다. 부모님은 마침 두 분 다 지방 출장 중이었다.
패딩을 입었는데도 찬 기온이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한적한 가로공원 쪽으로 꺾어 들자, 이웃아이 새주가 맞은 편에서 오고 있었다. 운동복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고개를 숙이고 계속 좌우로 흔들며 오고 있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걸음걸이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마주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는 아이였다. 새주와의 거리가 좁혀지려고 했다. 나는 얼른 바로에게 말했다.
“바로. 넌 잠시 저쪽에 좀 가 있어.”
“응, 알았어.”
바로는 두말 않고 길 안쪽으로 잠자코 물러섰다. 새주는 내가 있는 기척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운동 다녀오나 봐?”
그제야 새주는 눈을 들어 나를 알아보고 크게 고개를 끄덕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거나 이어폰을 빼지는 않았다. 잠시 내 얼굴과 뒤쪽에 서 있는 바로를 흘깃 보고는 씩 웃기만 하고 그대로 지나쳐 갔다. 남에게 무심한 아이였다.
내 이름을 알기나 하는 걸까. 그런 새주에 대해 나는 좀 아는 편이었다. 이웃 아주머니가 새주를 부르는 걸 보고 이름도 알아 놓았고, 주요 일과도 파악하고 있는 편이니까. 실은 이 시간의 밤 산책도 새주가 운동을 마치고 지나가는 때에 맞춘 거였다. 무심한 새주는 여러 날 같은 시간에 마주치고도 내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약 오르게 만드는 아이였다.
지나쳐간 새주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휙 돌아섰다.
“그만 집으로 들어 갈래.”
며칠째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응, 알았어. 집으로 가.”
바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 뒤를 잠자코 따라 들어왔다. 이럴 때는 바로에게 공연히 심통이 났다. 물론 적당히 둔감한 게 낫기는 했다. 괜히 마음을 헤아린답시고 어쭙잖은 충고를 하려고 들었다면 미움을 샀을 터였다. 바로는 그런 과욕을 부릴 만큼 언어표현력이 월등한 타입은 아니었다. 아니어서 부담이 없기도 했지만, 뭔가 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맨날 ‘알았어’지. 넌 그 말 밖에 할 줄 모르지?”
“응?”
바로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됐어. 어서 들어오기나 해.”
바로는 다시 원래 얼굴로 돌아가 나보다 앞서 현관 안으로 들어서며 거실 온도센서를 얼른 살폈다. 쌀쌀한데 나갔다 온 내 체온을 고려한 거였다. 착하고 고마운 친구였다. 이름만큼이나 든든하고 올바르게 언행 하도록 잘 프로그램된 권장표준형 그대로였다.
아이들에게는 교육적 목적이 필요하고도 필수였기에 모든 가정의 어린이용 파트너 로봇들은 한결같이 바로처럼 반듯했다. 어떤 경우에도 올바른 판단과 행동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그 원칙 안에서 언제나 아이들 편을 들어주고 최상의 응원군이 되어주는 든든한 파트너인 건 틀림없었다.
부모들 대부분이 밖에서 일하고 아이는 한 명밖에 없는 편이어서 형제나 친구역할에 가까운 파트너 로봇고용은 아주 흔한 일에 속했다. 우리 집만 해도 바로가 오기 전에는 세심3호가 2년, 사랑1, 2호가 각 5년씩 내 파트너가 되어 생활과 학습을 도와주었다. 세심3호도 사랑1, 2호도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다. 형제우애가 어떤 건지는 겪어 보지 않아 모르지만, 그 로봇 친구들과 나누었던 감정은 아마도 비슷한 색깔에 가까울 것 같다. 소소하고 즐거운 수많은 추억과 그 친구들이 내게 베푼 친절로 나는 무탈한 유아기와 소년기를 거칠 수 있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꽤나 고색창연한 단어 그대로 명실상부한 사춘기 시기를 지금 관통하고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이 분류상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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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이건 분명 내 사고력이 깊어지고 풍부해져서 생긴 고민일 거다. 언젠가부터 내가 뭔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허전할 때도 많았다. 생활이 궁핍하거나 보살핌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엄마아빠와 바로가 내게 쏟는 정성과 애정을 생각하면 결코 그런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뭔가가 이상하게 모자랐다. 바로만 해도 여느 아이들의 파트너에 못지않은 고품질 우수 로봇 아닌가. 나무랄 데 없이 맡은 일 잘하고 매사에 나를 잘 챙기는, 정말 자랑할 만한 좋은 친구인데……. 그런데도 왜? 문득 마음 밑바닥에서 조심스럽게 무언가가 떠올랐다.
‘재미가 없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냈나 싶어 화들짝 돌아보았다. 바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게 줄 저녁우유를 데우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이 시간, 일정한 양, 일정한 온도…….
“자, 마셔.”
바로가 우유잔을 들고 다가와 건넸다.
“좀 이따.”
“바로 마셔. 지금 온도가 좋아.”
역정이 확 밀려왔다.
“지겨워! 매일 매일 똑같은 말, 똑같은 행동!”
바로가 눈이 휘둥그레 나를 봤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을 거다. 내가 생각해도 뜻밖이었다.
“잔소리꾼 노릇 좀 그만해. 내가 유치원생이야?”
바로는 비로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미하를 보살피는…….”
“그래, 알아! 그러라고 엄마아빠가 널 고용했지. 하지만 이건…….”
차마 말로는 할 수 없었다. 이건 파트너가 아니라 유모나 하인 같다고. 나는 진짜 파트너, 친구를 원하지, 유모나 하인은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엄마아빠가 없어도 나 자신을 돌볼 만큼 자랐다. 그렇기에 바로같은 파트너는 어쩌면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하고, 내 편이고 나를 돌봐주려 드는 친구는.
솔직히 말하면 로봇 자체를 이제 내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돌봄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로봇 파트너의 도움을 안 받을 도리는 없었다. 연상의 형제처럼 의지하며 푸근한 정을 느끼고 안정감을 누려온 것도 사실이다. 사랑1, 2호, 세심3호, 바로. 착하고 좋은 친구들. 내 로봇 형제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제 나는 로봇이 아닌 사람 친구와 더 많은 걸 나누고 싶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시내에 있는 학교에 가 아이들을 만나고 오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로봇과는 다른 사람만의 어떤 특성들이 몹시 간절해졌다. 바로처럼 의식도 언행도 매사에 반듯하고 올바른, 정량과 표준의 로봇들은 이제 그만 사양하고 싶어졌다. 사람들의 제각각인 모습들과 조금씩은 어리석기도 한 한계들과 어쩔 수 없는 불완전함과 어그러짐이 그리워졌다. 제 멋대로거나 까칠하고 삐딱하거나 전혀 친절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머리를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새주.
나도 모르게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바로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머리에 떠오르자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바라던 게 무엇이었는지가 너무도 분명해졌다. 새주. 사람 친구. 남에게 별 관심도 없고 굳이 잘 보이려 들지도 않고, 어딘가 모난 것도 같고 빈 것도 같은 애.
집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저녁마다 근처 트레이닝장에서 운동을 하고 오는 게 유일한 외출인 것도……. 누구와 말을 주고받는 건 본 적이 없다. 늘 이어폰을 꽂고 고갯짓을 하며 다니는 거로 보아 음악에는 꽤 조예가 깊을 것 같았다. 곁을 스쳐 지나갈 때 희미한 비누향을 맡았던 것도 같고, 샴푸냄새가 났던 것도 같다. 운동복은 대부분 검정 계열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옷 색깔이다. 그 애의 눈동자가 무슨 색깔이었더라? 갈색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완전히 까맸던 것 같기도 하고, 밤이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당장 분명하게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려고 했다. 내일 저녁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컴퓨터 앞에서 내 수업과제들을 확인해보고 있던 바로가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았다.
“미하 뭐 필요해?”
“아, 아냐.”
나는 우물쭈물 서 있다 히죽 웃으며 도로 앉았다. 그애네 집이라면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밤중에 느닷없이 불러내 무슨 말을 한담? 전화번호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필요하면 바로에게 알아봐 달라고 할 수 있다. 몇 초면 된다. 하지만 연결해 역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거야말로 바로에게조차 놀림을 받을 바보짓이다. 나는 조바심을 애써 누르며 내일 저녁을 기다리기로 했다.
새주는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운동량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땀으로 축축한 모습은 아니다. 언제나처럼 보송보송해 가벼운 비누냄새인지 샴푸냄새만을 풍길 뿐이다. 트레이닝장에서 씻고 나온 건지도 모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을 하게 하고 주고받아도 볼 생각이다.
“무슨 음악이야?”
고갯짓만으로 대답하고 지나쳐 갈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새주는 잠시 주춤 서더니 이어폰 한쪽을 빼 내 귀에 꽂아주었다. 최근 나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룹 이반의 곡이었다. 나도 모르게 반색을 했다.
“너도 이반 좋아하는구나! 다른 곡들도 있니?”
새주는 한쪽 입 끝을 올리며 씩 웃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어두워서인지 눈동자 색깔은 여전히 알아보기 어려웠다. 여느 때처럼 다시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새주 뒤에서 손을 펴 들여다보았다. 네모난 작은 칩에서 손바닥만 한 홀로그램이 뜨더니 입체 영상 속 새주가 말했다.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새주1호는 운동과 음악을, 새주2호는 여행과 토론을 좋아해. 연락은 회사로.”
새주 역시 로봇이었다. 십대 맞춤형 로봇.
“…….”
내게서 떨어져 뒤에서 있던 바로가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왔다. 밤바람이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임어진 동화작가
동화 『델타의 아이들』 『아니야 고양이』 『너를 초대해』 『푸른 고래의 시간』 『이야기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야기 도둑』 『또도령 업고 세 고개』 『보리밭 두 동무』 『오방색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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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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