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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인문학Q

시각적 말투, 잘 몰랐던 '서체'의 세계

궁금한 인문학 Q : 시각적 말투, 잘 몰랐던 서체의 세계 궁금한 인문학 Q : 시각적 말투, 잘 몰랐던 서체의 세계

2018년 11월. 국토교통부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2019년 9월부터 변경되는 새로운 자동차 번호판 디자인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것이다. 이슈 사항은 총 3가지였다. 첫 번째는 좌측 디자인 영역 추가였고, 두 번째는 숫자 중앙의 태극문양 삽입, 마지막은 서체변경이었다. 여기서 검토되었던 서체는 바로 독일의 'FE-서체'를 바탕으로 개발한 '한국형 FE-서체'다. "FE-서체"는 독일에서 자동차 번호판용으로 개발된 서체로, 독일뿐 아니라 스리랑카, 남아프리카공화국, 몰타, 우루과이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FE-서체"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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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디자인된 독일 자동차 번호판

궁금한 인문학 Q : 시각적 말투, 잘 몰랐던 서체의 세계-1

1977년, 서독도로교통국은 저명한 캘리그래퍼이자 폰트디자이너인 칼게오르크 회퍼에게 자동차 번호판 서체 개발을 의뢰했다. 도로교통국의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 아무나 위조할 수 없도록 철자나 숫자마다 제각기 독특한 특성을 가질 것

- 날씨가 좋지 않아 시야가 흐리더라도 문자 판독 기계가 글자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당시 서독은 테러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쉽게 위조할 수 있는 자동차 번호판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예를 들어 F라는 글자에 검은 테이프 하나만 붙이면 E처럼 보이고, 3이라는 숫자에 페인트칠만 하면 8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자동차 번호판이 필요했던 것이다. 도로교통국의 의뢰를 받아들인 회퍼는 서체개발에 몰두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FE-서체"였다. "FE-서체"란 "펠슝스에어슈베어렌데 슈리프트”의 약자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위조방지서체"다. 그렇다면 회퍼가 개발한 "FE-서체"는 어떻게 위조를 방지할 수 있었던 걸까?

FE-서체는 우선 유사한 모양의 알파벳과 숫자가 서로 혼동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알파벳 O(오)와 숫자 0(영)의 모양이 달랐으며, 알파벳 I(아이)와 숫자 1(일) 또한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또한 각 글자에 포함된 획의 위치와 모양을 다르게 하여 쉽게 위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알파벳 F와 E의 중앙에 있는 획의 위치가 달라, F 글자 밑에 획을 추가해도 E와 구분할 수 있었고, 알파벳 R은 가운데 부분을 띄어 놓았기 때문에 P에 획을 추가해도 구분이 가능했다. 이처럼 글자의 서체는 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 목적과 용도를 고려하여 만들어진다.

또 다른 예는 우리에게 친숙한 한글서체인 '명조체'다. ‘명조체’란 손으로 쓴 ‘궁체’를 기본 골격으로 삼되, 인쇄에 적합하게 설계된 서체다. 본래는 말 그대로 '명나라 왕조의 서체'지만, 한자 명조체는 세로획과 가로획의 굵기 차이가 뚜렷하고 직선적이라 한글 순명조와 유사하고, 붓글씨같이 부드러운 한글 명조체와 비교해보면 한눈에 봐도 그 모양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디지털 서체로 발전된 한글 명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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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 우리가 쓰는 명조체가 일본 가나문자에 쓰던 기본형 활자체, 즉 일본에서 명조체라 불리는 서체에서 따왔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결국 '명조체'라는 이름이 '한글 명조체'의 특성과는 맞지 않은 것이라, 1992년 문화부에서는 '명조체'를 순우리말인 '바탕체'로 개칭하기도 했다. 이는 '명조체'가 긴 텍스트로 구성된 본문을 읽기에 적합한 글자, 즉 본문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형 글자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들어서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가 '한글 명조체'를 설계한 이후, '명조체'는 후배들에 의해 다양한 디지털 서체로 발전되었다. 각 서체는 모양과 용도가 조금씩 다른데, 1990년대에 탄생한 'SM명조'는 기존의 '명조체'를 충실히 재현해, 고서나 시집 같은 문학적 콘텐츠에 잘 어울린다. 2000년대에 개발된 '윤명조300시리즈'는 현대적이면서 안정감이 높아, 정보집약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의 콘텐츠에 적합하고, 2010년 이후 나온 '산돌명조네오'는 모바일 디바이스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같은 ‘명조체’ 계열이라도, 각 서체의 특성을 파악하고 사용하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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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언어를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커뮤니케이션에서 언어적 요소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30%, 나머지 70%는 몸짓, 눈빛, 의상 등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접하고 있는 글자 또한 마찬가지다. 글자가 담고 있는 글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글자 그 자체의 모양 또한 ‘시각적 말투’ 역할을 하며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한다면 글을 담고 있는 그릇, 서체에도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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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글자풍경> 유지원,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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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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