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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으로 간 문학

윤동주의 <서시>와 김선두가 만나다

윤동주의 <서시 />와 김선두가 만나다-1
<서시> 장지에 먹, 분채 63x92cm 2017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 윤동주 시 「서시序詩」 전문

김선두

1958년,화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교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아트스페이스, 갤러리동산방, 금호미술관, 학고재갤러리 포스코미술관, 리씨갤러리

단체전 및 초대전
마음에 그림 걸기/서울예술문화재단 갤러리, 바보전/복합문화공간 에무
당대수묵전/학고재갤러리, 고원의 기억과 힐링전/삼탄아트바인
강진, 숨결/신세계갤러리, 풍죽전/광주국립박물관 등) 다수

운동주 (1917 ~ 1945)

시인, 작가, 독립운동가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 1945년 2월 16일에 옥사한 일제강점기의 저항(항일)시인이자 독립운동가다. 윤동주가 사망한 지 6달이 지나서 일제로부터 독립했으므로 생전에 조국의 독립을 보지는 못했다.

아명은 해처럼 빛나라는 의미인 ‘해환(海煥)’. 동생인 윤일주는 ‘달환(達煥)’, 갓난아기 때 세상을 떠난 동생은 ‘별환’이다(윤동주의 막내 동생은 윤광주였다. 그는 해방 이후에도 중국에 남아 지내다 1965년에 사망한다).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대한민국 문학사에 길이 남은 전설적인 문인이다.

더군다나 1930년대부터 일제의 강압과 회유책에 의한 문인들의 절필, 변절이 심화되어 1940년대쯤부터는 다수의 문인들이 절필하거나 친일파로 변절했기 때문에, 윤동주는 이육사와 더불어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민족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 회고록에 '시인 윤동주는 평양 숭실학교 졸업생이다' 정도로 매우 간단하게 쓰여진 게 전부이며 한국 학생들처럼 그의 시를 공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연구가 정체되어 있는 북한 국문학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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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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