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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의 풍경

삶의 풍경을 바꾸어놓은 근대 철도

조선미술전람회와 사군자조선미술전람회와 사군자

근대의 상징, 철도의 등장이 가져온 새로운 삶의 방식들

나에게 근대를 상징하는 것 딱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철도라고 대답할 것이다. 인류가 수만년간 축적해온 문명이 기계와 동력이라는 불꽃을 만나 대폭발하는 시기가 근대였다. 이전 삶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세계로의 진입을 이끌었던 주인공은 강철 말, '철도'였다. 트로이 목마를 열심히 밀었던 고대 신화 속 병사들이나 아테네 광장에서 열변을 토했던 소크라테스, 모스크바로 진격했던 나폴레옹까지 이동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은 입장이었다. 근대 이전, 인간의 주 이동 수단은 바로 자신들의 두 다리였다. 부산을 출발한 조선시대 도보여행자라면 15일 넘게 걸어야 한양 도성에 당도할 수 있었다.

여행이란 산천초목에 둘러싸인 인간이 자연과 조응하며 천천히 목적지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근육에 쌓이는 피로에 대한 보상으로 일정 거리를 확보하게 되는 고된 노동이었다. 때문에 여행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자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일이었다. 상인이거나 사신으로 불렸던 외교관들, 전장에 나가는 군인들이 근대 이전의 주류 여행자들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자라고 늙고 죽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철도가 등장하면서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속도에 경악하다

철도역은 마법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마차 승강장과는 규모부터 달랐다. 거대한 성이나 저택을 닮은 집 안으로 들어가면 대합실이라 부르는 넓은 거실이 나왔다. 표를 사고 통과해야 하는 개찰구는 시간여행을 떠나는 마법의 문이다. 이 문을 나서면 길게 이어진 승강장이 나오고 그 옆에 서있는 괴물 같은 기계장치를 마주하게 된다.

기차를 처음 본 사람들은 증기기관차가 울리는 기적소리에 놀라 달아날 지경이었다.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고 이내 기차가 출발하면 승객들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에 경악했다. 15일 거리를 불과 10시간남짓한 시간에 주파해 버리는 기차는 전설에 나오는 거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인 중에 기차를 처음 본 사람은 김기수였다. 1876년 조선은 일본과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을 맺었다. 이를계기로 조선은 일본에 수신사란

1837년 철도운행 초기 영국 런던 유스턴역의 풍경
1837년 철도운행 초기 영국 런던 유스턴역의 풍경


1876년 5월 7일 요코하마에 도착한 수신사 일행은 기차를 타고 도쿄로 가게 되어 있었다. 4년전 개통된 요코하마-신바시를 잇는 일본 최초의 철도 노선을 타게 된 것이다. 기차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김기수는 열차에 오르고 나서도 기차가 어디 있는지 안내인에게 물었다. “차가 이미 역에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탈 차는 어디있는 것이오?” 큰 행랑채 수십 개가 칸칸이 나누어진 채 긴 복도를 이루는 길을 따라 끝까지 간 김기수는 타고 가야할 기차란 것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안내인이 바로 우리가 서있는 이것이 기차라고 말했을 때 김기수의 표정이 어땠을지는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기차를 캔버스에 담은 화가, 기차에서 거사를 꿈꾼 독립운동가

가난한 화가는 종종 시 북쪽 아니에르의 센 강변으로 갔다. 강 위에는 돌을 쌓은 교각 위로 철교가 놓였다. 화가는 파리를 출발한 열차가 승객을 태우고 철교 위를 달리는 모습을 포착했다. 증기기관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는다.기관사는 운전석에서 몸을 내밀어 앞을 주시한다. 기관차 뒤로 석탄을 가득 실은 탄수차가 연결되어 있고, 승객을태운 객차가 이어진다. 화가가 즐겨 쓴 노랑과 검푸른 색이 담긴 그림에서 유일한 붉은색 한 점이 눈길을 끈다.철교 밑 뚝 길을 걷는 여인이 쓴 붉은 양산이다. 화가가 아직 시골로 내려가기 전이고 귀도 잘라내기 전이었다.화가는 동생 테오가 보내준 돈으로 산 물감을 짜내 용처럼 불을 뿜으며 달려가는 기차를 캔버스에 담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1940년 경성으로 가보자. 전날 밤 6시 50분 만주국 수도 신경을 출발한 대륙급행 노조미 8열차는 만주 벌판을 달린 끝에 새벽 5시 50분

빈센트 반 고흐 작 <아니에르의 센강 위 다리 />
빈센트 반 고흐 작 <아니에르의 센강 위 다리>


누런 군복 차림의 만철 순회 헌병들과 달리 조선총독부 순사들은 잘 다려진 백색 제복을 입고승강장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감시했다. 오전 9시 40분 열차는 평양을 출발했다. 정시보다 2분 늦은시간이었다.

늦은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차에 자리 잡은 K는 두 테이블 건너 사복 차림의 아베 대위가 밥을 먹고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베 대위는 관동군 헌병대 정보국 요원답게 날카로운 눈매로 식당을 들고 나는 사람들을 보았다.8열차는 평양을 떠나 신막에만 정차하고 경성까지 논스톱으로 달렸다. 오후 2시 30분, 열차는 제시간에 경성역에도착했다. 승객들이 승강장으로 쏟아져 나와 구름다리로 향했다. 긴 칼을 찬 순사들이 둘씩 짝을 지어 역 안 이곳저곳을 돌았다. K는 짐꾼과 지게꾼들이 달려와 서로 짐을 얻기 위해 수선을 떠는 틈을 비집고 개찰구를 빠져나갔다.개찰구에서는 사복 차림의 일본 순사가 승객들을 향해 위아래로 시선을 훑었다.

역 광장에는 인력거꾼과 손수레꾼이 몰려들어 손님들을 찾았다. 봉천에서 한의원을 한다는 중년 남자가아현리를 외치자 인력거 하나가 얼른 다가왔다. 아베 대위는 남대문으로 향하는 인력거를 탔다. K는 인력거를 불러아베 대위의 인력거를 쫓았다. 아베는 남대문통5정목 어성여관 앞에 내렸다. 모서리를 쇠로 보호한 여행용 황색 사각가방을 든 아베는 육군과 철도국 지정 여관인 어성여관으로 들어갔다. K는 그대로 어성여관 앞을 지나쳐 황금정 쪽으로향했다. 아베가 여관 안으로 들어갈 때 K는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피스톨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6연발 리볼버권총의 차가운 질감이 손끝에 느껴졌다.

낯선 곳을 보고 느끼기 위해 짐을 싸는 여행자의 탄생

세계 곳곳에서 철도의 기적소리가 높아질수록 인간들의 삶이 바뀌었다. 철도이전의 사람들은 사는 곳이 곧 일하는 곳이었다. 철도는 집과 일터를 비로소 분리해버렸다. 런던의 유스턴역이나파리의 생라자르역 같은 곳은 직장으로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인 출퇴근의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침의 맨체스터 방직공장 앞에는 마치 시위대가 행진하듯 노동자들이 공장 문을 지나작업장으로 향했다.

딸기잼 통조림 1천 박스와 함께 적재된 병사들은 많은 이들의 환송을 받으며 기차에 실려 역을빠져나갔다. 젊은 군인들은 목청껏 군가를 부르며 달렸다. 한참을 달려 더 이상 부를 군가도, 노래를 부를 힘도떨어질 즈음 목적지에 도착한 군인들은 진창으로 범벅된 참호 속으로 옆구리가 열린 바게트 빵 샐러드처럼 채워졌다.독가스와 기관총탄, 대포알들의 환영 속에 지옥이 열렸다.

역 대합실 귀퉁이 잡화점 코너 한 곳에 책이 등장했다. 휴대하기 쉬운 문고판은 여행자들을 독서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신문사는 윤전기를 몇 배나 더 늘려야 했다. 열차 화물칸은 새로운 뉴스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신문을 실어 보내기 충분한 공간을 제공했다. 기관차는 잉크 냄새가 채 사라지기 전에 신문을 전달해야 할 사명을 안은 것처럼 빠르게 내달렸다.
여행 자체가 목적인 여행도 등장했다. 일을보기 위해 큰 맘 먹고 먼 길을 나서는 게 아닌 여정. 낯선 곳을 보고 느끼기 위해 짐을 싸는 사람들이 생겼다. 역앞엔 호텔이 생겼다. 이제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도시에도 묵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기꺼이 열차에 올랐다.

철도가 열어버린 판도라 상자는 거칠 것 없이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지금도 철마는 달리고 있다. 아직 놓지 않은 희망을 안고.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철도국 포스터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철도국 포스터
글, 사진 / 박홍수_철도 기관사
저서 <철도의 눈물>,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시베리아 시간여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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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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