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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재소설

손보미 작가 <작은 동네> 1화

손보미 장편소설 <작은 동네 /> - 1화손보미 장편소설 <작은 동네 /> - 1화

내 남편은 서른일곱 살이지만, 신문이나 잡지를 찢어서 정리를 해둔다. 마치 옛날 사람처럼. 아마 그건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는 10여 년이 넘게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일을 해오고 있다. 처음 몇 년 동안에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연예인과 관련된 기사 내용을 정리해주려고 스크랩을 시작했고, 지금은 그냥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그 일을 하는 것 같다. 내 말의 요지는 그가 무능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유능한 편에 가깝다. 유능한 직원이면서 동시에 유능한 남편.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너희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난 건 커다란 행운이야. 정말로 과분한 행운이지, 그걸 명심해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침마다 무언가를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그 손쉬운 행위가 다른 어떤 과업보다 그를 고양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아마도 그는 그 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어떤 일을 하면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수 있다면 누군들 그 일을 왜 마다해야 하겠는가?

남편이 출근한 후 나는 가끔 남편의 스크랩북을 펼쳐 본다. 글쎄,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몰래’라는 단어를 붙여야 할지도 모른다. ‘몰래 펼쳐 본다.’ 하지만 정말 이게 정확한 표현일까? 남편은 딱히 스크랩북을 숨겨놓거나 한 적이 없다. 그는 스크랩북을 그저 식탁 위에 올려둘 뿐이다. 심지어는 그냥 펼쳐놓은 채로 출근을 한 적도 있다. 게다가 ‘몰래 본다’라는 표현은 내가 남편의 스크랩북을 보고 싶어서 안달을 낸다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몇 년째 대학에서 현대 일문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강의가 없는 날이면 가끔 커피를 만들어서 식탁 앞에 앉아 시간을 때울 때가 있다. 그러다가 문득, 남편의 스크랩북을 펼쳐보는 것이다. 그게 거기에 있으니까 그럴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스크랩된 기사나 글들이 특별히 내 흥미를 끌었던 적도 없다. 그걸 읽는 걸 남편이 알지 않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한 번도 내게 당신, 이거 읽었어?라고 물어본 적이 없지만,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읽었다고 대답할 터였다. 남편의 스크랩은 중구난방이다. 그의 스크랩에 어떤 원칙이나 규칙은 없어 보인다. 그저 자신의 흥미를 끌거나, 혹은 반대로 전혀 흥미를 끌지 않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오려서 붙여놓은 것 같다. 나는 가끔 그의 진정한 관심사가 뭔지 알고 싶을 때가 있다.

강의 중에 학생들이 지나치게 지루해하거나, 혹은 학생들의 주의를 요하고 싶을 때면 스크랩북에서 읽은 기사를 이야기해줄 때가 있다. 며칠째 지속되는 외국의 산불, 어린아이 납치 사건, 노인들의 집단 자살,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 기타 등등. 지난 학기에 마지막 수업 날 한 학생은 내게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아주 진지한 태도로 그녀는 내게 이렇게 질문했다.

“교수님은 왜 수업 시간에 끔찍한 사건 이야기만 해주시는 거예요?”

나는 약간 과장된 투로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내가 교수가 아니라 시간강사라는 이야기를 몇 번을 해줘야 하죠? 이 강의실 안에서 들은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다 까먹어버리는 거죠?”

나는 가끔 이런 식으로 모든 상황을 농담처럼 흘려버리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과 쓸데없는 갈등을 겪지 마라. 그냥 웃어버려. 모난 돌이 정 맞는 거란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며 자랐다. 농담이 내게는 최고의 방어인 셈이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가 농담을 잘해서 좋다고 말했었다. 어쨌든 강의실 안에서 내 농담은 여전히 잘 먹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 농담 때문에 웃음을 터트렸다. 질문을 한 학생도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친구들을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그뿐이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해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웃기 전에 나눴던 질문을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그걸 더 이상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하다. 바로 그게 문제다. 웃음은 폭발적으로 관심을 응집시킬 수 있지만, 웃음이 끝남과 동시에 그 웃음을 둘러싼 상황은 쉽게 사그라들어버린다. 그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웃음의 꼬리를 붙잡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내 이야기에서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 학생의 표현에 따르면—끔찍한 이야기,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품고 있는 불길한 공기는 쉽사리 그들을 떠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결국에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반작용, 이게 내 이론이다. 남편은 내 이론이 엉터리라고 말한다. 남편은 때때로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 그러니까, 아주 직설적으로. 보통은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협상하거나 구슬리거나 설득하는 일을 한다. 그는 그러니까 무언가를 정확하게 지칭하는 식의 화법을 구사하는 유의 사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당신 이론, 완전 엉터리야,라고 한 것처럼—때때로 직설적으로 말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작년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에 나의 아버지에 대해 했던 말 같은 것 말이다. 작년 봄에 담낭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병실로 가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다. 어머니는 간병인을 밖으로 내보내고,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마치 비밀을 누설하듯 말했고 그 덕분에 나는 어머니에게 바싹 붙어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다지 사이가 좋은 모녀 사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 세상에 어머니가 의지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열한 살 때 나와 어머니를 떠났다. 어머니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사람이 죽기 전에는 그런 식으로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복기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을 잃은 누군가에게

“당신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 그토록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으시던가요? 그게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던가요?”

라고 질문할 만큼 나는 배포가 크지 못하다. 남편이 스크랩해둔 그 수많은 글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한동안 어머니가 내게 남긴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손발이 묶인 채로 바닷속에 던져진 사람처럼 말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봤을 때, 나는 긴가민가했다. 내가 열한 살 때, 아버지가 어머니와 내 곁을 떠난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슬프다기보다는 무척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병상에 있을 때도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었다—, 그것 때문에 나는 아마도 실망했던 것 같다.

“무엇 때문에?”

남편이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너에게 해줄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단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내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오해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더 싫은 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대체 우리 사이에 할 이야기가 뭐가 있단 말인가? 아버지는 끈질기게 굴었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장례식이 끝난 후 아버지는 몇 번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한동안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았다. 여름 내내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전화를 걸었다.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가을이 시작될 무렵의 어느 날 저녁, 남편과 내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고, 남편이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한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내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하는 건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돌아온 남편이 약간 붉어진 얼굴로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아주 직설적인 방식으로.

“당신 아버지, 원래 그렇게 뻔뻔하셨어?”

나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기억이 안 나. 잘 모르겠어.”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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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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